쪽빛으로 물든 하늘이 유난히 창백해 보이던 저녁.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끝에서도 끝에 선 거라고 나를 다그치며 걸었다.
낭떠러지를 향해 걷는 심정이었다.
스치는 풍경이나 아무 의미 없는 모든 것들마저도 내 가슴에 구덩이를 팠다.
빛이 들어갈 틈조차 없는 어두운 터널이 만들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걷고 또 걸어도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마음 어딘가에 한 번도 건드려보지 않았던 구석을 직시하고, 서늘해짐을 느끼고,
그곳에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새기는 기분이었다.
심연에 닿아있는 공포가 나의 불쾌감을 조명처럼 껐다 켰다 반복했다.
정말이지, 새로운 감정이었다. 눈물이 쏟아질 만큼 슬프거나 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이런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은 든다.
하지만 어느덧 자리 잡은 어둠은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통행이 금지된 터널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