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썼네.” ‘그렇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동시에 절대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할 지난 일주일간의 내 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걸으며 핸드폰으로 논문 읽다 제대로 자빠질 뻔했었지. 글이 잘 풀리지 않아 괜히 남편한테 건 시비가 싸움으로 번졌고. 한 손으로 유축하면서동시에 한 손은 노트북을 붙들고 있던 건 또 어떻고… 숙제 하나에 이렇게 혼신을 쏟아부을 일인가. 그래도 이거면 되었다. 충분히 보상받았다. 교수님의 저 한 마디로.
출산 후 100일, 제 자리로 돌아온 감각이 만족스러웠다. 지난 10년 간 나는 ‘연구하는 인간’이었다('호모 아카데미쿠스' 정도로 부르면 어떨까). 명절과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각종 휴일들은 모조리 연구를 위해 반납되었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여행 한 번은커녕하늘 한번 쳐다볼 줄을 몰랐다. 공부와 연구 외의 모든 것들은 죄악시되었다. 그런데… 그런 호모 아카데미쿠스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무려 1년 동안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등한시한 것이다. 작고 귀엽고 연약한 것에 정신을 빼앗길 뻔한 호모 아카데미쿠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복학을 했다.
연구의 세계에서 태교와, 출산과, 모유 수유의 시간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의미 없는 파편처럼 흩날려 간 나의 시간이여!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누구를, 그리고 왜 따라잡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맹렬히 직진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날부터 나는 가만히 앉은자리에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숨찬 세월을 보냈다.
“잠깐, 아이는 누가 돌봐요?” 이쯤에서 누가 묻는다면, 어딘가에서 ‘3인 돌봄 릴레이’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출전자는 나, 돌봄 이모님, 그리고 시어머니. 남편은 깍두기 출전. 물론 이 깍두기에게는 분명한 사유가 있었다… 부글.
연구가 ‘내적’ 달리기라면, 육아는 말 그대로 그냥 ‘달리기’였다. 나는 늘 달렸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은 바싹 마른 채. 집 앞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아이 수유 시간에 맞춰 두 시간마다 내달렸다. 5분만 더 주어지면 보던 논문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수유의 세계는 그렇게 온정적이지 않았다. ‘재우기’는 또 얼마나 냉정한 세계였는지! 아이는 무려 백일 무렵에 9 킬로그램을 돌파했다. 게다가 전문 용어로 ‘손을 타’고 ‘등 센서’를 장착한 아이었다. 이 ‘우량한 등 센서(이렇게 불러서 미안…)’는 한 시간 내내 팔로 안아 어르고 달래야 겨우 잠들었다. 그러나 ‘소머즈 귀’이기까지 한 아이는 또다시 냉장고 고무패킹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울었다. 부엌에 앉아 논문을 읽던 나 역시 벌떡 일어나 아이에게로 달렸다.
나는 그때, 내가 박사 과정과 육아를 양손의 떡처럼 쥐고 잘 주무르는 줄 알았다. 비록 미지의 영역인 ‘육아’가 추가되긴 했지만, 두 차원이 비교적 조화롭게 굴러가고 있다고. 나의 한계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숨차게 전력 질주하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 질주할 수 있는 동력은 온전히 타인에게서만 왔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을 통해서만 존재했다. 내 성과가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마치 마법처럼. 성취감이라는 파티는 짧았지만 매우 강렬했다. 그래서 점점 더 인정받는 것에 중독되어 갔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그러니 더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며 나를 채근했다. 더 해… 조금 덜 자면 되지… 완벽하게 해야지…
매일 빨간 눈으로 논문 주제를 고민했다. ‘곧 돌봄 이모님이 퇴근하실 시간이야!’ 이 말 한마디에 시들시들 죽어가던 내 안의 호모 아카데미쿠스가 끝도 없이 부활했다. 매달리다 보니 지도교수에게 논문 주제를 컨펌받고 프로포절을 준비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기적이었다. 동시에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인풋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웃풋을 얼기설기 뽑아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완전히 뒤엎는 일이 반복되었다. 새벽녘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엉망진창인 연구 모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시 벌떡 일어나 부엌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켜기도 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10시간을 내리 앉아 있던 날, 기어코 프로포절 최종본을 완성했다.
오늘 너무 달리면 내일 못 일어나. 나는 단거리 주자가 아니라 장거리 주자야. 1년 달리고 말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달리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해. 게으름을 피우겠다는 게 아니야. 꾸준함의 힘을 믿어보겠다는 거야.
-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오늘 너무 달리면 내일 못 일어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프로포절 발표는 혹평을 받았고, 다음 날, 몸과 마음이 동시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타인의 인정 위에 쌓아 올린 나의 자존감은 그렇게도 연약한 것이었다. 그리고 1년간의 숨찬 달리기를 버텨냈던 몸 역시 그 위로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