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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May 19. 2021

허리디스크가 내 귀에 속삭인 것

까만 밤에 느낀 절망



종이에 살짝 베인 것에도 호들갑을 떠는 내가 애는 어떻게 낳을까 싶었었다. 그러나 체질이었던 건지, 무통 주사의 은공이었는지, 진통을 제법 잘 견디고 순산했다. 그 후 남편은 나를 이렇게 정의했다. ‘작은 고통은 못 참는데 큰 고통에는 의연한 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저런 농을 칠 수 있었던 것은, ‘출산’이 시퀀스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련의 흐름과 단계가 있고, 어쨌든 끝이 있는 고통.


그에 비해 '질병'이 주는 고통은 마구잡이였다. 예측되지 않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출산의 진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당연히 틈을 주지 않고 다급히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생살을 찢는 고통’이 허리 쪽으로부터 느껴졌다(관용어구인 줄로만 알았건만!). 인류가 사족보행에서 벗어나 허리를 똑바로 세우는 것이 문명의 시초가 되었다는데. “기왕 진화하실 거면 허리를 조금 더 튼튼하게 맨들어 주시지 그랬어요… 조상님.” 불특정 조상들에게까지 화가 번질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 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봉지를 틀어쥐고 어기적대며 누워있는 것뿐이었다. 일어설 수도 누울 수도 없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다가, 움직일 때는 납작 엎드려 두 팔과 두 다리를 한 짝씩 옮기며 반인반수처럼 다녔다. 그 모습을 보일 이들이 집 안에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남편과는 주말 부부였고 아이는 며칠째 시댁에 맡겨져 있었다. 숨마저 가만가만 쉬며 최대한 통증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토요일 밤, 이제는 허리가 찢어지다 못해 떨어져 나가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을 붙들고 절규했다. "구... 구급차아아아!!!!" 작고 크고 간에 아픈 건 참으면 안 되는 거였다.

 





정형외과 입원실에는 중력이 누르는 자신의 무게를 떠받치기 버거웠던 많은 이들이 온갖 병명을 달고 모여 있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인류의 조상도 이런 진화의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진단명은 추간판탈출증. 수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수술하기엔 나이가 아깝다는 어쩐지 비의학적인 이유에서였다. 고통에도 순위가 있다면, 오히려 내 고통은 입원실에서 상위권이었다. 아침밥이 나오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에만 30분이 걸려 뭇사람들은 나를 잠에 취한 게으른 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통증이 극에 달하면 머리맡의 벨을 눌러 마약성 진통제를 호소했다. 차가운 수액이 혈관을 따라 자르르 퍼지면 안심이 됐다.


입원한 지 3일째. 잠이 오지 않아 깜깜한 창 밖을 바라보는데 내 귀에 속삭임이 들렸다. "네 커리어는 이제 끝났어." 울컥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나보고 이제 끝났다구? 세상에 대고 악을 쓰고 싶었다. 목소리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생각해 봐. 이 허리로 뭘 할 수 있겠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밖을 보았다. 그래, 까만 밤. 이게 내 미래일지도 몰라. 육체에 집중되었던 고통이 정신의 영역으로 전이된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퇴원을 했다. 병원은 멋쩍고 나는 맥 빠지는 퇴원이었다. 여전히 통증은 심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는데, 이래서야 눕는 공간만 바뀐 셈이었다. 멍청하게 티비만 보았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증발하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질병이 삶의 시계추를 재미 삼아 건드리는 듯했다. 경계선을 기준으로 어느 한쪽으로 가면 살겠다가도, 다른 한쪽으로 가면 죽을 것 같았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나를 조금씩 살려낸 건 '사람들'이었다. 인정 많은 시어머니는 아기 보느라 당신 얼굴 샛노래지는 것도 모르고 내가 짠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아이는 지 나이답게 구는 매력으로 나를 홀렸다. 남편은 세상의 중심이 나인 양 배려에 배려를 거듭해주었다. 각자 몫의 진심들이 나를 움직였다.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래 힘내야지, 하게 되는 것이었다.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발짝 떼는 게 눈물이 다 고이도록 힘겨웠지만 정말 나이 때문인지 뭔지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그리고 하나 더 고백하건대, '맥주'마저 자기 몫을 했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나는 보았다. 주(酒)류 냉장고 안에 각종 세계 맥주들이 총천연색의 매끈한 몸으로 서 있는 것을. 맥주를 몇 달씩이나 마시지 못한 내게 그 찬란함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약을 그만 먹어도 되는 날을 어서 앞당기고 싶었다.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는 옆에서 목젖이 다 울리도록 맥주를 들이켜야지. 자, 걷자, 하는 것이었다. 때로 본능은 참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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