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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29. 2024

슬픔이여 안녕. 어서 와, 슬픔!

눈부신 한여름의 사랑- 슬픔 주의!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이 겹쳐져 생각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둘 다 파리와 이탈리아의 여름에  햇빛 속에서 일어나는 슬픈 사랑 이야기라서 소설을 읽고 바로 영화가 떠올랐다.     

<슬픔이여 안녕>은 17세 딸 세실과 그녀의 아빠의 애인 엘자가 나오고, 아빠의 새로운 여인 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안은 죽은 세실의 엄마의 친구이다. 안이 고급진 원두커피 같은 여자라고 한다면 엘자는 콜라같이  마시기에 달콤하고  톡톡 쏘는 생기발랄한 여자다. 세실의 아빠는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끝내는 커피를 엎지르고 만다.      

안이라는 여자가 잘살고 있는 부녀와 엘자 사이에 갑자기 끼어 들어와 여러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놨지만 나는 안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인 거 같다. 친딸처럼 세실을 챙기고 남자친구 만나는 걸 간섭하고(밖에서 문까지 잠근다!) 그 나이는 공부할 나이라고 걱정을 해주지만 사랑에 빠져있던 세실은 안을 밀어낼 궁리만 짜고 있다. 세실이 세상 철없게 느껴졌다.  


세실은 아빠의 사랑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지고 놀았다. 세실의 덫에 걸려든 아빠는 뒤늦은 후회로 안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지만, 안은 자신이 한낮 스쳐 지나가는 여자라는 사실에 비참함을 느끼고 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실은 소녀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듯한 결말로 소설이 끝난다. 안을 떠올리지만 이제 슬프지 않다. 밝게만 살아오던 세실이 안을 만나고 안의 죽음으로 인해서 슬픔을 알아버린 이야기.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 - 헤어질 때 하는 안녕이 아니라 만났을 때의 인사 <안녕 Bonjour 봉주르>다. 우리도 가까운 사람이 떠나고 나면 처음에는 그 사람의 이름을 감히 입 밖에 내지도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그의 이름을 덤덤하게 부르며, “안녕. 잘 지내고 있니.”라는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제목은 -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으로 내가 불리게 된다면…. 헤어지고 난 후 그 사람의 이름이 이따금 들릴 때마다 한때 우리의 추억이 떠올라 괴로울 것 같지만... 그 고통 안에는 사랑의 기쁨도 섞여 있다.

영화의 끝에서 엘리오가 전화를 받고 계속 우는 장면으로 끝이 나서 한동안 먹먹했다. 동성애를 싫어하는 나로선 콜바네임을 보는 내내 불편했지만 두 남자의 사랑은 오직 사랑이었다. 잊은 줄 알았던 이름-올리버가 약혼한다는 전화를 받고 하염없이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흘리는데 이성애면 어떻고, 동성애면 어떠하리.

사랑이잖아.      


극심한 열병 같은 사랑은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두 주인공 모두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가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 해보고 싶다는 머릿속 소설을 젊었을 때 많이 써봤다.


왜 사람은 사랑이 슬픔으로 끝나야 그 참된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일까. 이 사랑 저 슬픔 다 겪어본 나로서는  <슬픔이여 안녕 책 123쪽> -

사랑이란 간단한 행위라는 말을 믿는다.

어제도 슬펐고, 오늘도 매우 슬펐고, 내일도 모레도 그 이후도 슬플 날 많겠지만 사랑으로 슬픔을 겪을 나이는 지나가서 다행이다.


<잘 가, 슬픔아!>가 아닌 <어서 와. 슬픔!>이라고 해야 하는 소설을 두 번째 읽었다.

사랑은 언제나 옳고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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