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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Feb 26. 2024

깊은 바다는 파도에 일렁이지 않는다

침잠의 시간

몹시도 조심스럽게 강변도로를 달린다. 

토요일 오전 통행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제한 속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달렸겠지만 

오늘은 주변의 자동차를 살피면서 속도의 감속 없이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백미러로 뒤좌석에 앉아 계신 아빠를 계속 확인한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이 또한 너무 빨랐나? 

엑셀에 발을 떼고 속도가 완만하게 줄어들게 했다. 

아빠의 감은 눈에 힘이 빠지면서 

직각으로 세워졌던 당신의 어깨도 완만하게 내려앉는다. 



오빠와 나의 공모는 성공적이었다. 

아빠는 내 차에 순순히 올라탔다. 

한눈에 봐도 너무 아파 보인다. 

숨어 있던 멍이 얼굴과 온몸 곳곳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앉았다 일었나다 하는 행동과 

누웠다 일어나는 행동이 가히 5분도 넘게 걸리는 것 같았다. 


섬지방에서 형제들 몰래 야반도주하여 서울에서 성공했다는 

자수성가의 아이콘 대접을 받는 인물. 

살면서 이런 사고 한번 없이 80 넘게 건강하게 지내오신 분. 

지금의 상황과 사태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오직 과거의 영광과 사고 직전까지 누렸던 일상의 편안함만을 고수하려는 사람. 


당신은 자신의 초라함과 나약함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겠지만 

한평생 자신의 뜻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당신이 생의 명대로 따라야 하는 게 아닐지, 감히 말하자면....


그런 냉정과 중립과 객관의 자세로 아빠를 대했다. 

딸이라기보다는 병원 동반 서비스를 해주는 타인처럼 

개인적인 질문도, 감정해소를 위한 물음도 없이 

운전만 묵묵히 했다. 


일련의 검사와 상담과 내담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입원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입원실로 올라가면 더는 면회가 되지 않기에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빠는 

마치 어린이집 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벽을 보고 서서 나에게 등을 보였다. 

그러다 고개 돌려 뒤를 힐끔 보더니 '가기 싫다' 하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 아빠는 뒷걸음쳐서 

엘리베이터 문에서 멀리 떨어진다. 


일진이 왕따 학생을 집게손가락 까딱거리며 부르듯 하신다.

아빠 모자 밑으로 아랫입술을 꽉 깨문 것도 보인다. 

그러더니 마치 뒷골목에서 은밀한 거래를 하는 사람처럼 

푹 쓴 모자를 손가락 하나로 살짝 올리고는 

분노의 눈빛으로 나를 째려본다. 

'너, 약속이 틀리잖아' 


어린 시절, 이 눈빛에 얼마나 많이 겁먹고 죄책감을 느끼며 

상처받고 주눅 들었는지....

하지만 그 눈빛이 지금은 오히려 반가웠다. 

'아빠 눈빛 살아 있네' 하면서 오히려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빠의 이런 눈빛과 말투, 더는 통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약속과는 별개로 전문가의 권위를 내세워 

입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한다. 

그런데도 나와 통원으로 딜을 하자는 사람. 

택시 타고 병원을 다니겠다는 고집. 

아빠의 삼시 세끼와 일상을 누가 옆에서 간호할 수 있는지 

그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 

오직 자신의 자유가 박탈된다는 억울함만 강조하는 철부지 어린아이. 

아빠의 존엄을 지켜 드리고 싶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 우선되어야 하는 게 있다. 건강이다. 

이거 하나만 생각하자. 


속에서는 입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아빠를 개인적으로 비난하고 싶은 마음,

온갖 감정적인 판단과 비난과 원망이 올라왔지만 

말을 최대한 아꼈다.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의사 선생님한테 다시 한번 물어볼까?' 

전문가의 권위를 방패 삼아 아빠를 슬금슬금 엘리베이터 앞으로 몰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인간은 닫힌 문은 열고 싶어 하고 열린 문으로는 들어가고 싶어 한다. 

아빠는 자동 반사적으로 열린 문으로 발을 들였고 

엘리베이터에 탔다고 인식한 순간 문이 스르륵 닫혔다. 

그 순간 아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치료 잘해, 의사 선생님 말 잘 듣고' 

아빠의 황당하고 억울하고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론 아빠 면회는 가능하다. 병실 출입만 불가능할 뿐 

병원에서는 1층 2층 9층에 휴게실을 마련해서 마스크 쓰고 방문이 가능하다. 

오후에 입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세심하게 준비해서 다시 아빠를 찾아갔다. 

온갖 불만과 불평과 짜증을 들을 각오로, 듣고 흘려버리자는 마음을 먹고 갔다. 


아빠는 의외로 밝게 웃고 있었다. 

게다가 입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 잘했다면서 칭찬까지 해주셨다. 

분명 병원을 돌아보고 병원 시설을 체크하고 점심밥을 드셔보셨을 테지. 

병원이 아빠 마음에 들었던 거다. 병원은 쾌적하고 따듯했고 간호사님들도 모두 친절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쟁 같은 응급실과는 너무나 다르다. 

간호사님들은 아빠가 벌써 엄마를 이리로 데려와 재활 치료 약속(?)까지 했다고 하니 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아빠는 그 짧은 시간 벌써 옆침대 이웃과 통성명을 하고 

형 아우 하면서 서로의 반평생 인생을 교환한 듯 보였다. 

방향 없이 밀고 들어오는 무작정한 친밀감이 나에게는 오히려 반감으로 작용하는데 

아빠와 같은 연배의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는 아빠와 죽이 잘 맞는지 

병원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코치를 해주면서 아빠를 편하게 해 주었다고 했다.


물품을 전달하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아빠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슬리퍼로 갈아 드렸다. 

신발을 슬그머니 내 가방에 숨겨두고 집으로 가져왔다. 

외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니 신발도 필요 없다는 판단이었다. 

갈비뼈에 금이 가지는 않았지만 흉부에 강한 압박을 받았기에 

그리고 선천적으로 폐와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와 폐렴이 걱정되었던 터였다. 

비와 안개와 눈으로 습하고 우중충한 2월의 날씨는 최악이다. 


1주일만 입원하겠다고 내게 무슨 큰 선물이라도 특 던져주듯 하는 아빠.

병원에서는 2주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1주일 지나면  어떤 말이라도 또 지어내야 한다. 

작가 딸내미는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이러려고 작가 되었나.... 

입원시키려는 자와 입원을 거부하려는 자의 밀당은 결국 입원으로 끝나며 

아빠의 '슬기로운 병원생활'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미쳐 하지 못한 집 청소를 마무리하려 했다. 

청소기와 물걸레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고 

뭘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는데 싱크대에는 물 잔과 식기가 가득했고 

세탁기에는 탈수가 끝난 젖은 빨래가 그대로 있었다. 

막상 별거 아닌데 꼬여 버린 일상이 버겁게 느껴졌다. 

커피를 한 잔 벌컥 마시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소가 거의 끝나갈 즈음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꼬인 일상이 조금 느슨하게 풀어질 듯하더니 

무너져 내린다. 그저 볼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런 게 운명이고 사고이고 신의 장난일까... 

아빠의 입원 소식에 모두 다행이라고 칭찬과 응원과 격려로 

형제자매를 안심시켰던 내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내 노력이 아무것이 아닌 것이 되더라도 

엄마 병원에서 온 전화가 실수나 오진이나 뭐 그런... 

드라마에서 자주 써먹은 그런 장면이기를 바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이 상황에서 

뭐라도... 아니 뭘 할 수 있는 걸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바닷물로 침잠하고 싶다. 

그러면 내 마음도 함께 고요해지지 않을까.......... 

깊은 바다는 일렁이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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