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글쓰기
“자네는 자네의 불행 중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
넉살 좋은 카프카의 절친,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카프카 자신조차도 자신의 생과 존재의 불행이 글쓰기의 원동력이라며 동의했다.
인간을 행동으로 이끄는 마음은 크게 두 가지다. 두려움과 사랑. 이 커다란 두 줄기에서 온갖 감정과 생각과 느낌이 나온다. 아주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 같지만 행동의 원인, 그 동기를 찾아 들어가 보면 이 두 가지로 귀결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두려움과 불안에서 시작되고 긍정적인 감정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올바른 종교는 '두려워 말라' 대신 '사랑하라'를 강조한다. 하지만 사이비는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한다. 이걸 좁게는 내 주변 관계와 내 마음에 대입해서 적용해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 어쩔 수 없이 방어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도 있다. 긍정과 부정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수동적이고 방어적이고 통제적인 행동을 만들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적극적이고 수용적이며 유연한 행동을 만든다. 누군가는 '돈'이면 다 된다는 주장도 한다. 그렇다면 왜 돈이 필요한가? 어디에 쓰려고? 마음의 한 겹만 들춰 보면 돈이 필요한 마음이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는지 사랑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인간 행동을 이렇게 두 가지로 딱 잘라 절대 나눌 수는 없다. 이 두 가지가 배합이 되어 행동이 나온다. 단지 어떤 동기가 더 많은지 그 비율의 문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인간은 불완전하며 불안한 존재다. 불안하다는 것은 현재 지금 나의 상태에 꽉 채워지지 않아 흔들린다는 뜻이다. 물통에 물을 꽉 채우면 잘 흔들리지 않지만, 반 정도 채워진 물통을 흔들면 꼭지와 바닥을 미친 듯이 오고 간다. 이런 빈틈이 없는 인간이 없고, 우리는 이 빈틈을 결핍이라고 한다. 결핍 없는 인간 없다. 완전한 존재는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신' 뿐이다.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신이라는 완벽하게 전지 전능한 존재를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결핍을 진정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불쌍해진다. 이게 심해지면 자기 연민에 빠지고 더 심해지면 피해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결핍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앞으로 삶의 결과 색을 결정하는 매우 존재론적인 문제다. 여기에서 거의 모든 사고와 행동이 출발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예민하게 결핍을 느끼고, 누군가는 무난하게 넘어가기도 한다. 문제를 문제로 봐야 문제인 거고, 결핍을 결핍으로 봐야 결핍인 것이다.
카프카는 유독 자신의 결핍과 상처에 집착하는 성향이 짙었다. 이런 성향이 너무 심해져 자살 충동에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자살하면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자살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카프카는 불안을 바탕으로 하는 회피적인 성향이면서도 불안을 견디는 힘이 약해 당장 해결점을 찾으려 극단적인 생각에 자주 빠져 들었다.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 중의 하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 많은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그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지 않았다. 무엇을 결정하는데 늘 방황했고, 경계선상에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늘 생각이 많고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가는 생각의 습관에 괴로워했지만, 그 고리를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카프카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칼 대신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것만이 자신의 출구 없는 세상에 출구를 만드는 것이라 믿었다. 그의 글쓰기 목표는 매우 뚜렷했다. 안개처럼 모호한 마음과 생각을 하나씩 활자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 속에는 유독 개인적인 서사라 생각되는 내용이 많다. 자신이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모든 소설이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묻어나는 건 자연스럽지만 유독 카프카의 작품은 일기나 비유들이 그의 삶에서 많이 나왔다. 이런 이유로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독자도 있다. 그의 문학은 서사 중심이 아니라 그의 매우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나열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매우 함축적이고 비유와 은유가 많기 때문에 '문자기호'만을 읽는다면 빨릴 수 있겠지만, 작품의 맥락게 숨겨진 뜻을 이해하려면 제법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카프카의 문학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함축과 비유가 참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기 경험의 안경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인다. 『변신』이 짧은 단편만 해도 얼마나 많은 논문과 패러디와 아류작을 만들었는지 상상 불가다. 이 작품에서 누군가는 가족의 의미를,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누군가는 인간 존재의 소외를, 누군가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꼬집는다.
카프카가 변신을 쓴 당시와 지금은 살아가는 모습과 양상이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가 『변신』을 읽고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이유는 백여 년의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주인공에서 우리의 지금 모습을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작품 속 상황에 몰입하해서 거의 병적인 집착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파헤친다. 특정 상황에 놓인 주인공인데 그걸 보는 우리는 보편적인 갈등과 고민을 찾아낸다. 카프카 이전의 문예 사조는 주인공이 사회와 얽히는 서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었는데, 카프카는 여기에 더해 주인공이 하나의 사건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심리를 묘사하는데, 이것을 카프카가 현대 문학의 시조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