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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Oct 22. 2024

나는 곧 문학이다.

카프카의 일기


Ich habe kein literarisches Interesse, sondern bestehe aus Literatur, ich bin nichts anderes und kann nichts anderes sein.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는 다른 것이 아니며,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펠리체에게 보내는 편지 1913년 8월 14일 


문학이 무엇이길래, 카프카가 자신을 문학이라고 표현했을까? 무엇하나 선을 그어 이렇다고 말하지 않는 모호하고 안개 낀 것 같은 그의 마음에서 유일하고도 강력하게 말한 것이 자신과 문학, 자신과 글쓰기의 관계다. 그의 실존적 불안으로 만들어진 통제적 집착이 이른 곳은 다행히도 사람이 아닌 문학, 글쓰기였다. 그의 초기 글쓰기는 매우 개인적이다. 일기가 대부분인데, 그 내용은 사실 매우 자기 연민에 빠진 글들이 많다. 그 속에서 아마 커다란 위안을 받으며  문학에 대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영혼을 정화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강도와 견디는 방식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볍게 여길수 있는 문제도 누군가에는 커다란 바위처럼 가슴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해소하는 방식 또한 다 다르다. 카프카는 매우 센서티브 한 영혼이다. 세상을 향한 미세한 촉수가 아주 작은 외부 반응에도 움찔했을 것 같다. 작가는 응당 삶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야, 그 마음의 결을 갈가리 찢어  다시 예쁘게 쓸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카프카의 삶 자체가 힘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문학을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수능 국어에 나오는 교과서적인 답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고매한 학자의 명언을 가져다 올 생각도 없다. 문학을 너무 어렵게 바라보지 말자는 이유에서다.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견해는 학자마다, 학파마다, 작가마다 그리고 개인 독자마다 다르다.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게 다 문학이다. 거창하게 특별한 형식에 따라 쓴 프레임이 아니라 어떤 방식이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주고 인간과 삶의 한 겹을 보여주면 그 작품과 글이 문학이라 생각한다. 


문학의 도구는 언어다. 우리는 모두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다.  종이와 연필, 아니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문학 또는 글쓰기야 말로 아마도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예술 분야 일 것이다. 미술은 온갖 그림 도구가 필요하고 화술을 따로 익혀야 하고 음악은 악기와 악기를 다루는 기법을 배워야 한다. 이외의 다른 예술도 비슷하게 당장 시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학의 글쓰기는 마음만 먹으면 쓰면 그만이다. 


문학은 활자로 그려내는 언어예술이다. 문자라는 도구를 활용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의 긴 문장으로 쓴다면 산문이고, 압축된 짧은 문장의 운율 어린 문장을 쓴다면 시다. 리듬 와 운문의 여분에 따라 결정된다. 마음 담긴 감성 어린 글이라면 서정문학, 이야기와 행동이 중심이면 서사 문학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일기를 자주 활용했다. 일기만큼 은밀한 게 없는 듯하다. 일기를 쓸 때 시간 순서대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감정을 많이 쏟아 내는 편이다. 오랜 사회생활로  페르소나 가면이 잘 벗겨지지 않아,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일기장만큼은 솔직하게 앞 뒤 구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쏟아낸다. 그래서  쓰는 순간의 감정이 일기의 전체 맥락과 감정을 좌우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날이었다 해도, 일기 쓰는 순간 안 좋은 감정을 담는다면 그날은 안 좋은 날로 기록이 된다. 일기는 전달과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일단은 표현부터 하고 보는 글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나만 보기에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집중이 된다. 그래서 나만 알아보면 충분한 글이다. 수정과 퇴고가 필요 없는 글이다. 그러다 보니 일기를 쓰다 보면 대부분 자기 연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감정의 선이 미묘하게 자기 연민으로 흐르게 되면 빠져나오지 못할 감정의 블랙홀에 발을 디디게 될 수도 있다. 일기장에는 별의별 이야기와 감정이 담겨 있다. 가끔 옛날 일기장을 펼쳐 보면, 왜 이런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사람에게 '살생부'랍시고 원망을 써놓은 글도 있다. 죽기 전에 정리할 제1호는 내 일기장들이다.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서 저 꼭대기의 착각과 망상까지. 숨기고 싶은 감정과 생각들..


카프카의 일기도 그렇다. 카프카도 이런 이유로 자신의 일기장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악악(?) 하게도 넉살 좋은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일기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감탄한다. 무수한 자기 연민의 문장들이라도, 그 아름답고도 심난한 한 영혼의 문장들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표현에 주력했기에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이런 감정에 빠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려 했다면 다른 구성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카프카의 내밀하고 촘촘한 감정이 풀어지고 벗겨졌다. TV나 소셜 미디어 토크쇼에 나와 ' 그 문장을 썼을 때는 이러저러한 생각고 감정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이러저러해요.'라는 카프카 자신의 설명이 있으면 좋을 법한 내용이 무수하다. 하지만 그의 일기를 읽다 보면,   '몰래 훔쳐보는' 듯한 긴장감이 생긴다. 공공연하게 문학이라고 출판되었는데도, 친구들과 함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데도 관음증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갑자기 죽고 나서 내 가족이 내 일기장을 보게 되면... 어우, 그 생각 만으로도 당장 불태워 버리고 싶은데. 


카프카가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 쓰기 전에 무수하게 일기를 쓰고 그 속에서 필력과 구성력을 키웠을 것 같다. 일기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니까. 아마 누군가가 자신의 일기를 볼 것이라 예상하고 보란 듯이 썼을까? 아니면 진짜로 일기도 이토록 정성껏 문학 작품처럼 썼던 것일까?  이 정도면 천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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