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joy to be hidden, and disaster not to be found.”
— Playing and Reality (1971)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부모 자녀 간의 애착관계를 연구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이는 숨바꼭질을 즐기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원한다.” 영원히 숨고 싶은 아이는 없다. 누군가 빙그레 웃으며 자기를 발견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날이 있었다. 상담시간에 어쩌다가 지금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직업이 변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이 직업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의 나를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금의 직업 말고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부끄럽지만 14살의 나는 가수가 하고 싶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하도 불러댔더니 집 담벼락 너머로 어떤 아저씨가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도 있다. (가수를 안 한 게 나았던 선택인가 싶기도 하다.) 실용음악학원에서 무료 보컬레슨을 한다길래 2시간 걸려 상경해서 레슨을 받았던 기억도, 마이크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내 노래를 녹음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던 기억도 연이어 떠올랐다.
재능과 상관없이(?) 노래 부르는 걸 너무 좋아했지만, 나는 가수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외려 접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 가수‘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사치로 느껴졌다. 그때는 꽤 부유했던 우리 집이 아빠의 사업으로 갑작스럽게 폭삭 망해가고 있었고, 집이며 자동차며 차압을 당하는 통에 우리는 3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상가주택 2층으로 이사를 간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니던 학원도 다 끊는 마당에 실용음악학원에 보내달라고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열정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할 말은 없다. 그런 걸 다 극복할 만큼의 가수에 대한 열정이 내게는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
근데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뭔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자기의 꿈을 섣불리 포기하는 중학생 아이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 아이가 지금 나에게 찾아와서 그런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줬을 텐데.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일단 할 수 있는 한에서 레슨을 받아보고, 오디션 보는 건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한번 해보자.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노래를 즐기고 좋아했던 그 아이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점점 숨겨졌다.
학업을 충실히 하고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아이. 빚을 지고 잠적한 남편대신 모든 짐을 떠안아야 했던 엄마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힘이 되는 아이. 그 뒤에 숨겨져 있었다.
사실 이 아이가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이 아이는 막막한 내 좋음보다 확실한 남의 좋음을 선택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안심하는지, 도움을 얻는지, 힘을 얻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고, 확실한 진로를 갖고 학업에 열중하고, 다른 친구들을 잘 배려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행동거지들을 익숙하게 수행했다. 엄마의 안심, 선생님들의 인정, 많은 친구들, 그로 인한 성취감과 뿌듯함을 나에게 주었다. 이렇게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점점 거대하게 자라난 내 청소년기의 자아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상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뒤쳐지거나 머무르면 사람들이 너를 걱정해. 항상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해줘야 해. 안 그러면 네 옆에 있기 싫어할 거야.”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남을 위해서 하고, 내 한계이상으로 애썼다. 공황장애가 오고 나서야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날 상담 시간에 거대한 아이 뒤에 숨겨져 있던 다른 아이를 발견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좀 해보고 싶다고, 그냥 좀 좋아하는 거 하면서 헤매고 싶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힘들다고, 거절하고 싶다고, 도망치고 숨고 싶다고, 그냥 한가롭게 햇볕이나 맞으며 쉬고 싶다고 조그맣게 외치는 그 아이를. 늘 발견되고 싶어 했던 그 아이를. 나에게 공황장애는 그 아이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인생은 그 아이를 발견하고 나서 많이 달라졌다. 휴직하는 시간 동안 내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에 연기레슨을 받았고, 뮤지컬 공연에 배우로 참여했다. 혼자 연습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를 불렀다.
위클리 플래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신에 내가 하고 싶은 것 2-3가지만 포스트잇에 썼다.
종종 책을 읽고 글을 썼고, 소득이 없어도 그냥 꾸준히 인터넷에 올렸다.
누군가 이러저러한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바로 ’네‘라고 대답하지 않고 ’ 생각해 볼게요 ‘라고 답신했다. ‘그것까지는 못할 것 같아요. 대신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나는 좀 놀랐다.)
왜 그 아이를 반기지 않았을까 후회될 만큼, 삶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굴러갔다.
누구나 발견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가 발견해 주기에는 너무 훌쩍 커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놀라운 계기로 그 아이를 만났다면, 나는 그게 큰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몰랐던, 근데 나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어떤 것이 그 아이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찾아주길 기다렸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그 손을 잡고 볕으로 나오면, 아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조금은 더 가볍고 따스한 세상이.
(우려되어 남기자면, 제가 늘 남을 위해서 살았다거나 공황장애를 겪게 된 게 가정환경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상당히 많은 도움과 선의들을 받으면서 살아왔어요. 그냥 더 나은 게 뭔지 몰랐던 아이가 섣불리 내렸던 결정들을 돌아보면서 연민하고, 이제라도 더 나은 결정이 뭘까, 그 결정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게 더 좋을지 숙고해보고 싶은 상태랍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