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못 쉬고 죽을 것 같으면 공황장애일까
공황을 경험한 뒤, 바로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진료를 봤다.
(참고로 정신건강의학과는 진료가 주로 예약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일 초진 진료가 정말 빡세다. 근처 4-5개의 병원에 초진가능한지를 문의해야 했다.)
공황의 여파로 상태가 꽤 안 좋았다. 의사 선생님은 현재 하는 일, 건강 상태, 이전 병력 여부 등 간단한 인적 정보와 함께 경험한 공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하셨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당분간 일을 쉬는 게 좋겠다고 하시면서 약을 처방해 주셨다(참고로 한번 더. 정신건강의학과는 약을 약국이 아니라 병원 내에서 처방받는 경우가 많다.)
내 일의 특성상 사람들과 많이 대면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대인관계 상황이 공황의 촉발요인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었다.
공황장애는 어떻게 진단되는 걸까.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방송에서 하차하는 경우가 많아, 공황장애는 ‘연예인들의 병’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공황장애는 올 수 있다.
당연히 의사와의 면담을 통해 진단을 받기는 하지만, 그냥 숨을 못 쉬고 죽을 것 같으면 공황장애인 걸까?
나의 경우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에는 "불안 NOS(Not Otherwise Specifed)", 즉 상세불명의 불안증상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난 뒤에는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안)"로 진단을 받았다. 공황장애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의 진단기준
A. 반복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공황발작이 있다. 공황발작은 극심한 공포와 고통이 갑작스럽게 발생하여 수분 이내에 최고조에 이르러야 하며, 그 시간 동안 다음 중 4가지 이상의 증상이 나타난다.
•주의점: 갑작스러운 증상의 발생은 차분한 상태나 불안한 상태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다.
① 가슴 두근거림 또는 심장 박동 수의 증가
② 발한
③ 몸이 떨리거나 후들거림
④ 숨이 가쁘거나 답답한 느낌
⑤ 질식할 것 같은 느낌
⑥ 흉통 또는 가슴 불편감
⑦ 메스꺼움 또는 복부 불편감
⑧ 어지럽거나 불안정하거나 멍한 느낌이 들거나 쓰러질 것 같음
⑨ 춥거나 화끈거리는 느낌
⑩ 감각 이상 (감각이 둔해지거나 따끔거리는 느낌)
⑪ 비현실감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 혹은 이인증 (나에게서 분리된 느낌)
⑫ 스스로 통제할 수 없거나 미칠 것 같은 두려움
⑬ 죽을 것 같은 공포
•주의점: 문화 특이적 증상(예, 이명, 목의 따끔거림, 두통, 통제할 수 없는 소리 지름이나 울음)도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증상들은 위에서 진단에 필요한 4가지 증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B. 적어도 1회 이상의 발작 이후에 1개월 이상 다음 중 한 가지 이상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① 추가적인 공황발작이나 그에 대한 결과 (예. 통제를 잃음, 심장발작을 일으킴, 미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걱정
② 발작과 관련된 행동으로 현저하게 부적응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예. 공황발작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운동이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피하는 것 등).
C. 장애는 물질(예. 남용 약물이나 치료 약물)의 생리적 효과나 다른 의학적 상태 (예. 갑상선 기능 항진증, 심폐 질환)로 인한 것이 아니다.
D. 장애가 다른 정신 질환으로 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예. 사회불안장애에서처럼 공포스러운 사회적 상황에서만 발작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특정 공포증에서처럼 공포 대상이나 상황에서만 나타나서는 안 된다. 강박장애에서처럼 강박사고에 의해 나타나서는 안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처럼 외상성 사건에 대한 기억에만 관련되어서는 안 된다. 분리불안장애에서처럼 애착 대상과의 분리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 번역 자료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내가 해당되는 증상들에 볼드 표시를 해봤다. 진단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공황보다는 ‘공황 발작(panic attack)'이 더 정확한 명칭이다.
'공황이 오면 숨을 못 쉬면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는 게 보통의 인식이지만, 그건 하나의 조건이다. 나의 경우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은 없었다. 직업 특성상 정신건강 관련 정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대신 공황발작이 오면 숨이 가빠지고 헐떡거려야 숨을 겨우 쉴 수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보자. 대략 8~10초가 걸린다. 하지만 공황발작이 올 때는 그걸 1초마다 하게 된다.
손발이 너무 차갑고 계속 떨려서 이불을 덮고 수면양말을 신었는데도 계속 덜덜 떨었다. 호흡을 잘하려고 해도 내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도저히 주체가 안되고 너무 괴로워서 울면서 소리를 질렀는데, 그 괴성이 정말 내 목소리인가 싶어 소름이 끼쳤다.
어떤 날은 집에 가야 하는데 갑자기 공황발작이 올 것 같은 느낌(전조증상)이 오면서 온몸에 힘이 풀리고 주저앉았다. 그날은 지인의 부축을 받아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공황이 올 것 같은 모든 상황을 피하는 회피행동들도 나타난다. 안다.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공황을 다시 경험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게 느껴진다. 한번 공황발작이 오면 하루 이틀 정도는 앓듯이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데 하루는 이렇게 집에서만 누워있으면 몸에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러닝을 했다가 숨이 흐트러지면서 공황이 올 것 같아서 멈춰야 했다. 이전처럼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도 없었다.
이런 공황발작의 주요 증상들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첫 진료를 받았을 때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내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다시는 공황을 경험하기 싫어. 일도 힘들었는데 이 참에 좀 쉬면서 마음을 돌보는 게 낫지. 일하다가 또 공황 오는 걸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리고 ‘진짜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할까? 그냥 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냐? 며칠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간단히 말해서 이 병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 병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웠다.
조금 쉬면서 고민해 보자고 생각하고 며칠 병가를 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휴직을 신청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공황발작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