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숨이 잘 안 쉬어져요.”
깔끔하고 아늑한 진료실과 푹신한 의자. 5월의 쨍쨍한 햇빛과 선선한 날씨. 여러 모로 지금 내 상태와는 상반된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끼며 의사 선생님에게 불쑥 그렇게 말했던 날이 떠오른다. 이어서 진료를 마치고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던 것도.
”죄송합니다. 출근을 못 할 것 같아요. “
평온했던 일상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처럼 끼익 하고 멈추는 것 같았다. 혹은 고장 난 엘리베이터처럼 한 없이 지하로 추락하는 것 같은 하강감, 그래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와버린 것 같이 낯선 감각이 나를 뒤덮는 듯했다. 그건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했던 날에 찾아왔다.
직장인 5년 차, 교육 관련 분야에서 일하면서 으레 그렇듯이 어렵고 까다로운 상황들을 여럿 만났다. 하지만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어느 정도의 성취감도 있었고 존경할만한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쌓기 위해 대학원 진학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은 지 1년이 지나는 시점이었고, 여전히 버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아침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직장에 출근하고, 빽빽한 스케줄을 하나하나 마무리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머지않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의 날.
떠올려보면 마지막 일정은 난도가 높았던 것 같다. 여러 번 만났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계속 쓸데없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오늘은 반드시 해결하리라 다짐하고 들어간 미팅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래서 당황했다. 평소처럼 미팅이 길어지면서 ’아, 답답하네.‘라고 생각하던 차에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몰려왔다. 평소의 답답함이 아니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종류였다. 정확히 말하면 몸의 문제였다. 실제로 가슴이 조이고, 숨을 편하게 들이쉬고 내쉬기가 어려웠다. 다리가 빳빳해지고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을 가만히 둘 수가 없어 책상 아래에서 오므렸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이러다가 쓰러지겠다 싶어 미팅을 급히 마무리하고 돌려보냈다.
평소보다 좀 무리했나 싶어 짐을 얼른 챙겨 나가려고 하는데 순간, ‘내가 가위에 눌렸나?’ 싶었다. 내 발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 등 뒤로 다가와 거칠게 주사기를 꽂고 모든 체액을 쭉 빨아 당긴 것처럼,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호흡이 가빠 오면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바다에서 육지로 방금 올라와 숨을 어떻게 쉬는지 모르는 물고기처럼 헐떡거렸다. 그렇게 공황이 찾아왔다.
“왜?” 그날 이후로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 그리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왜 하필 나일까? 그냥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게 아닐까? 내 건강이 그렇게 안 좋았나?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일을 하고 때로는 여행도 가고, 카톡프사를 보면 ‘아, 쟤 잘 살고 있네’ 할 정도의 사람.
위기와 평온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일상을 차곡차곡 메워가던 나에게, 공황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내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나름대로 잘 굴러가는 것 같았던 내 인생도 함께 정지했다.
왜? 공황이 찾아온 후 지난 1년 안 되는 시간 동안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답을 써 내려갔다. 그 이야기를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