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가 공황을 겪게 되었을까? 남들도 무수히, 나 또한 여러 번 물어왔던 질문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먼저 답을 찾게 되었던 곳은 아무래도 공황발작이 처음 발생했던 내 직장이었다. 그중에서도 하나는 일하는 환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교육 분야 중에서도 특정한 영역의 전문가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담당 업무가 다른 사람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부서가 바뀐 뒤로는 누구도 내 업무를 정확히 모르는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가 아닌 혼자 일하게 되었다. 동기들 중에는 그런 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애초에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힘을 얻는 타입이라 좀처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도 내 업무를 잘 모르니 갑자기 업무량이 늘어나는 상태에서 업무고민은 많아지는데, 내 고민을 누구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들어주거나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소외감도 들었다.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지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 다른 사람들과 밥도 먹고, 대화도 하고, 여행도 갔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업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건 나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그게 일하는 환경에 있어서 내가 느끼는 문제였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50가지의 일이 있고 중요도를 1~100점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면, 모든 일이 다 100점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빨리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하면서 중요한 일도 있고, 시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도, 당장 하진 않아도 되지만 중요한 일도, 당장 안 해도 되고 중요하지도 않은데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일을 마치 100점 정도의 중요도를 가진 일을 하듯이 정확하고 실수 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서도 여러 번 검토하고 결재를 올렸다. 그냥 형식상으로 해도 되는 프로그램인데도 내가 꽂히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했다. 작은 실수쯤 일어나도 큰 상관없는 경우에도, 스스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 완벽하게 해결하려고 했다. 누가 보면 꼼꼼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뿐인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할 것 같다. 때문에 여러 번 동료나 상사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일에 있어서 나의 이런 태도들을 찬찬히 뜯어보니 이런 생각들이 있었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항상 상대방이 만족할만하게 완벽하게 해결해야 해.” ”평소에 잘하더라도 한 번 잘못하면 그걸로 전문가로서의 내 능력이 입증되는 거야.” ”항상 모든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해.” 일 뿐만이 아니라 내 삶에서도 그랬다. ”항상 가족이 원하는 바를 100%로 만족시켜줘야 해. 가족 좋다는 게 뭐야. “ ”상대방이 힘든 얘기를 하면 항상 공감하는 태도로 들어줘야 해. 안 그러면 상처받을 거야. “ ”대학원에 가지 않으면 전문가로서 실패한 인생이야. “ 그러니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고, 늘 내 한계 이상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결국 내 공황은 어떤 면에서 나의 이런 생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심리학에서 ‘인지적 왜곡‘, ’ 인지적 오류‘라고 한다. 어떤 상황을 받아들일 때 현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비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경우 보통 말하는 흑백논리, 즉 이분법적 사고가 강했다. all or nothing의 사고방식이라고도 한다. 0 아니면 100, 성공 아니면 실패,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이분법적 사고를 자주 하는 사람의 경우 ’ 절대‘ ’항상‘ ‘좋다’ ‘나쁘다’ ‘완전히’ 등의 용어를 자주 쓴다.
이런 걸 깨닫고 나니, 내가 일하면서 했던 생각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될까? 나는 전문가의 역할에 있기는 하지만 일한 지 5년도 안된 신생(?) 전문가다. 실수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항상 상대방이 만족할만하게 해결해야 할까? 상대방이 만족하는 것이 늘 가장 좋은 건 아닐 수 있다. 완벽한 해결이 가능할까? 세상에 100%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어디 있을까. 내가 실수하면 그걸로 내 능력이 입증되는 걸까? 나는 어떨 때는 100점 정도로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어떨 때는 6-70점은 하지만, 그래도 평균 80 정도는 하는 사람인 것이다. 항상 모든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까? 물론 그러면 좋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에너지를 분배해야 장기적으로 볼 때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분법적 사고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브런치북을 쓰는 것에 있어서 아주 꼼꼼하게 완벽하게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구상을 해놓고도 2개월 동안 시작을 미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매주 꾸준히 쓸 필요도 없잖아? 어떤 사람들은 그냥 써놓고 한 달에 한 번씩 쓸 때도 있던데? 그냥 일단 써봐.”라고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매주 쓸 때마다 ’ 정말 형편없다 ‘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발행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창의성은 아이디어의 질이 아닌 양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아주 정확하게 해야 하는 일도 있는 반면, 그냥 많이 해보면 되는 일도 있는 것 아닌가. 꼭 많은 사람들이 봐주지 않더라도, 나의 투병기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공황장애 치료를 받으면서 all or nothing의 사고방식을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했다. 일과 관계, 내 삶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도 훨씬 여유가 생겼다. 물론 너무 습관적으로 해왔던 사고방식이라 불쑥불쑥 고개를 나밀지만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인생은 all도 아니고 nothing도 아닌 그 사이에서 자기만의 something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흑도 백도 아닌 어중간한 회색지대.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고, 작고 큰 성취와 실패가 난무하는 일상에서 어떻게든 굴러가고 빚어져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점점 내 공황을 이해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