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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팀파니

by 한가지

병휴직을 내고 좀 쉬면서 공황장애 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간단한 면담 후 약을 복용했고, 한 번은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은 집에서 간단히 음식을 해 먹거나,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가볍게 산책도 하고, 유튜브나 영화도 보고, 새로운 게임도 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전에 비해 몸이 뭔가 예민해지기는 했지만, 공황발작을 제외하고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스스로도 ‘나 괜찮아진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만한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시간도 많아졌으니 일과 병행해 왔던 대학원 준비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하고 바빠서 못 만났던 친구들도 좀 만나고, 평소에 못 썼던 글도 좀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이게 내 일상을 채우는 방식이었다. 나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고 인내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루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고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공황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야심 차게 노트북과 책을 들고 스터디카페에 가서 앉았다. 지금껏 해온 것도 있었고 입시 준비는 꽤 자신 있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니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전혀 집중이 안 됐다. 공부한다는 게 재밌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느꼈다. ‘내 몸이 확실히 달라졌구나.’ 오랜만에 친구와 만났는데 으레 하는 그 친구의 고민거리와 걱정들을 듣고 있자니 귀를 막고 싶었다. 그 친구의 고민이 심각한 고민거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평소의 나와는 너무 달랐다.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칭찬은 ‘고민을 잘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때 한번 더 확신했다. 정말 뭔가가 달라졌다. 지금까지 쉽게 해 오던 건 어려워졌고, 참고 뭔가를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나는 시간을 꽉꽉 채워서 쓰는 사람이었다. 성실한 삶을 선호했다. 물론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나는 바쁘게 산다고 이야기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빈 시간이 없게 살았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에 다니는 4년 내내 계속 알바를 하면서 공부했고, 휴학을 했을 때는 틈틈이 인턴과 알바를 병행했고, 졸업을 하자마자 알바로 모아놓은 돈으로 취업준비를 했다. 취업 준비를 하고 나서는 내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늘 목표를 세우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은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더 이상 목표를 세우고 돌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건 뭐랄까. 소설 <천 개의 파랑>에서는 연골이 망가져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안락사를 기다리는 말 ‘투데이’가 나온다. 그 말이 된 느낌이었다. 다시는 스타트라인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트랙 위를 가볍게 달리는 그 경쾌함을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태는 처음이라 정신이 멍했다.

유튜브 캡쳐: [긴급] 중요한 공연 중 팀파니가 찢어졌습니다(kbs교향악단)

그래서 상담선생님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라고 물어봤을 때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찢어진 팀파니 같아요.” 유튜브 알고리즘이 무심코 띄워준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힘차게 연주하고 있던 연주자의 팀파니가 쭉, 갈라져 찢어져버렸던 장면. 영상의 요지는 기지를 발휘해 공연을 잘 끝낸 연주자의 실력이었지만, 그저 찢어진 팀파니만 오버랩되었다. 지금 내 상태를 그만큼 잘 표현하고 있는 게 없었기에.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왜 그렇게까지 느껴질까요?” 상담선생님의 질문에 나도 한번 생각해 봤다. 잠시 떨어져서 바라보면, 몸이 아파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볼 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더 이상 노력할 수 없고, 뭔가를 성취할 수 없고, 달려 나갈 수 없는 나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졌다.

상담선생님도 의사 선생님도, 공황은 몸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해왔던 방식, 일을 할 때 내가 해왔던 방식은 내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내 몸과 마음에 감당할 수 없는 짐들을 쌓아놓고 있었다. 나도 언뜻 알고는 있었지만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걸 이루고 싶다는 마음에 못 본체 했다. 내 몸과 마음의 채무는 쌓여갔고, 결국 빨간 차압딱지가 붙은 것이다. 공황장애 치료를 받으면서 ‘망가진 나’가 아닌 ‘망가짐을 느끼는 나’를 좀 더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끝났다고 생각말자고. 내 삶에 너무 쉽게 마침표를 찍지 말고, 잠시 쉼표를 찍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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