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안부만 간단히 물을 때도 있고, 딸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푸느라
10~20분씩 통화가 길어질 때도 있다. 엄마는 내 이야기엔 시큰둥해도 손녀딸 이야기엔 까르르 폭탄이 터진 듯 깔깔 웃는다. 애가 학교는 잘 다니는지, 별일은 없는지 빠지지 않고 묻는다. 어쩌다 하루 전화를 건너뛰면 ‘어제 5시 반인데 왜 전화가 없나 했다'며 은근히 기다린 티를 낸다. 나도 그게 싫지만은 않다. 의무감보다는 습관처럼 통화버튼을 누른다. 이런 얘길 하면 누군가는 모녀 사이가 꽤나 좋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사연 없는 집이 있나. 우리도 늘 좋기만 하진 않았다. 아이를 낳은 후였다. 남들은 아기 낳으면 엄마한테 고맙고, 애틋하다는데 나는 이상했다. 엄마가 나한테 했던 잘못이 수시로 떠올랐다. 무수히 잘해준 날들이 있는데도 그걸로 퉁쳐지지가 않았다. 산후 조리할 때도, 내가 아쉬울 때도 제일 먼저 찾는 건 엄마면서 고마움은커녕 서운함이 먼저 떠오르다니. 내가 엄마라도 서운할 것 같은데, 내 감정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건 내 지나친 책임감에서 오는 분노일지도 몰랐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인간을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은 꽤 무거웠다. 두려웠다. 엄마로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 할수록 내 엄마가 나에게 했던 잘못이 툭툭 건드려졌다. 육아서를 읽으면 아이한테 하지 마세요 하는 행동 중 상당수는 내가 종종 당했던 행동이었다. '엄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해결되지 못하고 묻힌 상처가 이렇게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이한테 못되게 군 날이면, 엄마가 더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나한테 한 그대로 내 딸한테 하는 거야. 내가 못 배운 걸 어떻게 애한테 해줘, 그런 식의 원망.
용기 내 이야기한다고 해도 부모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말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내면은 탄탄해집니다. 그로 인해 나를 마주 대할 용기를 내고 나와 화해할 힘을 얻게 돼요.
- 오은영 채널예스 인터뷰 중에서, 2019. 3. 28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내 감정을 무시하고 지나가면, 언젠가 또 나타날 것 같았다. 그때 가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세 살일 무렵, 친정에 일주일 정도 머물게 됐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어느 하루, 나는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이 차가워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런 순간이 오면 말해야지 생각했던 많은 말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자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엄마 나 할 말 있어"
맥락도 없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