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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형서재 Jul 08. 2024

13년째 7급인데요.


 복직하고 3년째 진급에서 탈락했다. 이번엔 하겠지 기대하는 마음이 번번이 좌절됐다. 동기는 물론 후배도 나보다 먼저 진급했다. 이해가 됐다. 그래도 억울했다. 나는 육아휴직을 3년이나 스트레이트로 다녀왔다. 후회한 적 없고,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그래도 억울했다. 오랜 습관처럼 나에게서 이유를 찾았다. 왜, 뭐가 문제야? 뭐가 부족했지? 뭐를 잘못한 거지?



 작년 진급발표가 났던 날, 속상한 마음을 안고 금요기도회에 갔다. 혼자 있고 싶었다. 가족조차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진급제도 구조상 내가 빨리 진급하긴 어려웠을거라는 하나 마나 한 말을 했다. 설령 사실이더라도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울 자리를 찾으러 간 사람처럼 예배 시작 전부터 눈물을 쏟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우는 건 내가 바란 게 아니었다. 이게 그렇게 울 일이야? 세상 무너졌어? 내 이성적 자아는 당황했지만, 내 감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울기로 작정한 듯했다.



 복직 첫해에는 진급 발표날 멋모르고 있다가 사람들이 건네는 의례적인 위로에 당황했었다. ’괜찮아, 다음에는 될 거야. 밥 한번 먹자.‘ 괜찮았던 마음은, 여러 명의 복사 불여넣기 한 듯한 말에 흔들렸다. 사실은 괜찮지 않아야 하는 건가? 모른 척해주길 바랐지만, 내가 상대방이어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거다. 서로 눈치 보는 게 싫어서 그다음부턴 진급 발표날 휴가를 썼다. 1년, 2년, 3년. 계획한 건 아니지만, 매번 머리를 다듬었다. 지저분한 머리에서 진급 못 한 이유를 찾는 것처럼. 그래야 기분 전환이 된다고, 안 좋은 감정은 털어내자고 내 무의식이 시킨 것처럼.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창밖을 보고 내 생각이 어느 한 곳으로 모이지 않게 딴짓을 했다. 그래도 의식은 한 곳으로 모였다. 뭐가 문제지?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질문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진급을 못 했는지를 물을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네가 진짜 원하는 삶이야? 진급한 이후에는? 그다음에는 뭐가 있는데?' 내가 몇 년 동안 정말 원하는 게 진급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느낌이 왔다. 어쩌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거나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많았다. 내가 유난히 힘들어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진짜 중요한 건 어쩌면 내가 외면해 온 질문이 아닐까.



 처음에는 아니 이런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철없는 질문이 어딨어. 누가 들으면 웃겠네. 속으로 생각했다. 내 일에는 관심 없을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그랬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내가 원하는 삶은 뭐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은 뭘까. 이대로 10년, 20년이 흐르고, 60세 또는 65세에 정년퇴직하면 후회 없는 삶일까. 내가 그린 삶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진급하면 이런 질문은 없어질까.



 아닌 것 같았다. 그때부터 진급보다 더 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어떻게 찾아? 생각하기 싫은 마음, 그냥 지금도 나쁘지 않다는 마음, 하고 싶은 걸 찾겠다고 이제 와서 설치는 게 틀린 것 같은 마음, 마흔에 무슨.. 하는 마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마음. 갑자기 찾아온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내가 나를 설득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잘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관둘 것도 아니면서 이런 고민을 시작하는 내가 낯설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일상인데, 나는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게 뭘까. 계속 생각만 해봐야 답도 없었다. 나는 책을 들추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퇴사'를 검색했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나를 충동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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