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해치는 생활

by Serendipity

정기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근무지에 발령받은 적이 있다. 집에서 직장까지 가는데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하루 왕복 2시간 20분. 고민 끝에 원룸을 하나 얻기로 했다. 출퇴근으로 인한 피로도, 지역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필요성, 업무 효율 등을 생각하니 출퇴근보다 방을 얻어서 지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다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경험은 동전의 양면처럼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자 다양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밥 먹기, 차 마시기, 술자리 함께하기 등과 같은 몇 가지 전형적인 방법이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전 직원 회식은 밥과 함께 술을 마시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 회식 자리에서도 앉아서 배를 불리고 여러 사람과 술잔을 주고받다 보면 본의 아니게 술이 흥건하게 취하게 된다. 이튿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 주량을 훨씬 넘기게 된다. 그런데 크고 작은 이러한 종류의 모임은 연속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달아 술자리가 이어지면 스스로 절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과 술의 유혹에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는 때가 많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를 확장하고 어울림의 기쁨을 얻은 대신, 내 몸에는 알코올과 기름진 음식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새로 맡게 된 업무 파악을 위해 신경도 써야 했다. 그래서 회식과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시간 외 근무(야근)로 이어졌다. 약 3개월간,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체중이 6kg 증가하여 몸은 비대해졌다. 가끔씩 뒤통수가 갑자기 당기는 기분 나쁜 증상도 찾아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혈관에 지방이 쌓이면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생길 수 있는 증상으로 계속 방치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면서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체중 감량을 권장하였다. 위기감과 함께 옛 기억이 떠올랐다. 30대 중반, 건강만큼 자신하며 일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조직의 전반적 운영을 위한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당시, 일에 대한 열정과 성취 지향성이 누구보다 불타올랐을 때다. 퇴근 시간이 빠른 날은 밤 10시, 심지어 12시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년 6개월간 거침없이 달리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대상포진이 찾아온 것이다. 대상포진은 배, 가슴, 옆구리, 등, 어깨 등과 같은 부위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 귀 안쪽에 자리 잡아 신경을 마비시켜 버렸다. 이로 인해, 얼굴 반쪽(오른쪽 부위)이 마비되어 입은 위로 올라가고 오른쪽 눈은 전혀 깜빡이지도 않았다. 의사는 최소 한 달 동안 편안하게 쉴 것을 권했지만, 나는 마스크를 쓴 채 계속 출근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회복을 위해 치료하고 안정을 취해야 할 판에 꾸역꾸역 출근하며 일부터 걱정했으니 참으로 우둔했음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구성원 누구도 휴식과 안정이 필요함을 권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기관장조차도.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건강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사실. 업무에 관한 지식과 역량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안, 건강을 잃게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변화를 줘야 했다. 회식과 야근 중심의 나의 생활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4개월째 접어든 순간, 원룸을 빼고 출퇴근을 하기로 다짐했다. 야근을 최소화하고 퇴근 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근무 시간 동안 최대한 몰입하여 일을 하고, 불가피하게 급한 일이 있을 때만 야근을 하기로 했다. 또한, 평일에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생활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주말에만 허하리라 생각했다. 이 모든 생활의 중심은 가족에 초점을 두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자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생활을 보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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