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무직 종사자다. 하루 8시간.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오전 세 시간의 공식적인 업무를 마치면 점심을 먹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소화도 되지 않은 상태로 가만히 앉아 업무를 봐야 하니 속이 편할 리가 없다. 사무실은 공적 공간이라 가스 배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업무에 몰입하다 보면 두세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보통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회식, 야근, 그리고 퇴근. 그러나 퇴근하여 바로 집으로 향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다시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긴장된 하루를 마감했다는 자기 위안을 술로 달래기도 한다. 그러면서 평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운다. 회식의 여러 가지 장점도 있다. 업무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공식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비공식적인 친분을 두텁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회식은 적당한 수준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때,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직 건강성을 키우며 생산성을 높인다. 그러나 문제는 회식 자리 또한 앉아서 보낸다는 것이다. 8시간 동안 일하며 앉아 있다가 회식 자리에서도 움직임이 없는 시간은 계속 이어진다. 과음할 경우에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다음날이 문제다. 깨질 듯이 아픈 머리와 요동치는 위장 때문에 몸 상태가 좋을 리가 없다.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업무 능률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하루 종일 앉아 업무를 봐야 하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몸은 간절한 휴식은 원한다. 문제는 이런 생활이 반복될 때다. 일하기 위해 앉아 있고, 회식 자리에서 앉아 있고, 피로해서 앉거나 눕고. 도대체 언제 움직인단 말인가?
공식적인 차원의 회식만이 아니다.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적인 회식도 존재한다. 때로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는 만남을 갖고, 기회를 만들어 더욱 두터운 친분을 쌓고, 업무의 연속으로 간주되는 만남이 이루어지는 상황. 이처럼 우리는 회식을 갖는 이유도 다양하다. 그러나 적절한 조절 없이 온갖 종류의 회식을 허하다 보면 몸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자기 주도적 삶이 아닌 타율적인 삶에 매몰될지도 모른다. 몸이 비대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건강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후회할지 모른다. 결국, 앉은뱅이 토착민으로 전락하는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야근도 앉은뱅이 생활의 연속이다. 야근이 있는 날은 대체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배달 음식을 먹거나 밖에 나가더라도 가까운 식당을 이용한다. 저녁을 먹은 후에도 계속 앉아서 일을 본다. 밀려오는 잠을 물리치고 약해지는 집중력을 붙잡아두기 위해 커피도 마신다. 일절 움직임이 없으니 먹은 것을 소화하기가 여전히 힘들다. 결국, 잠자리에 들 시간이 임박해서야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차가 주차된 공간까지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것도 잠시뿐. 운전대를 잡는 순간, 다시 앉는다. 집에 도착해서는 특별한 일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다음날 다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잠을 청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된다. 빨리 일어나 직장으로 향하라고 재촉하는 시계 알람이 야속할 뿐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다시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하고, 지난밤 지나왔던 똑같은 길을 밟는다. 다시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앉아서 보내는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이런 생활의 반복은 조직에는 커다란 공적으로 기여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내가 없는 삶,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과로사로 삶을 허망하게 마감할지도 모른다. 과중한 업무로 삶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개인의 삶보다는 조직에 헌신하는 불균형이 낳은 결과다. 개인적 차원의 조절과 관리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문화를 개선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의 정비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퇴근이 앉은뱅이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퇴근해서도 소파에 앉아 리모컨만 들고 있다면, 방에 드러누워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면, 좋아하는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면 알래스카 늑대와 다르지 않다. 신체 움직임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한 자신에게 움직임을 선사해야 한다. 다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리가 가진 본래의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인간에게 두 다리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리의 움직임이 삶의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기 덩어리인 바람의 움직임이 전기를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다리를 움직여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달릴 때 심장 뛰는 속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것이 그 증거다.
점점 마비되는 다리를 깨울 필요가 있다. 잠시나마 다리가 기능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간이 없더라도 시간을 내는 의지. 그 시간은 하루 대부분을 앉아서만 보낸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순간이 되고, 하루 업무로 몸과 정신이 소진된 당신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일을 마친 후, 매일 조금씩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매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면 이틀에 한 번도 좋다. 만약 이틀에 한 번조차 어렵다면 주말을 활용하면 된다. 일주일 동안 앉아만 있었던 당신을 위한 특별한 선물. 그 선물은 바로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다. 심장을 밝히는 에너지. 그 에너지의 생성은 다리의 움직임으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