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자살과 매너리즘

걷기의 시작

by Serendipity

인터넷을 하다 흥미로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늑대의 자살과 매너리즘」. 마우스로 클릭하는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늑대가 자살을 한다고? 그리고 매너리즘은 왜 함께 붙어 있는 걸까?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용을 확인하였다. 에스키모인이 알래스카 늑대를 사냥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짐승의 피가 묻은 날카로운 칼을 들판에 꽂아두기만 하면 늑대를 사냥한다는 것이다. 냄새를 맡은 굶주린 늑대는 칼이 꽂힌 곳으로 다가와서 피가 묻은 날카로운 칼을 햝는다. 자신의 혀가 칼에 베이면서 피는 계속 나오고,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 채 늑대는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매너리즘을 늑대의 자살에 비유하고 있었다. 틀에 박힌 일상의 변화 없는 삶에 충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글이었다.

성취하고자 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감에 빠졌던 시기에 이 글을 접했다. 좌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의욕 저하로 이어져 무기력을 낳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기력은 내 자신이 만든 결과였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노력이 실패로 끝나자 자신감이 떨어지고 내가 가진 역량 부족을 탓하며 심리적 위축 상태에 빠진 것이다. 실패라는 외적 조건과 상처받은 자존감의 내적 조건이 결합되면서 ‘무기력’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모시게 된 것이다. 무기력에 빠지면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멍하게 넋을 잃고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평소 같으면 함박웃음 지을 상황도 썩 유쾌하지 않다. 입맛도 없고 나태해진다. 일시적인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에 의존하기도 한다. 무기력의 늪에 장시간 머물수록 헤어나기 힘들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혹시 내가 알래스카 늑대는 아닐까? 내 자신이 만든 덫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인식조차 못하고 계속 허우적대는 것은 아닐까?

변화가 필요했다. 다소 무기력해진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변화. 그래서 걷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간편한 복장으로 밖에 나와 걷기 시작했다. 특별히 정해둔 목적지 없이 가고 싶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자주 걷던 익숙한 길, 그리고 걸어본 적 없는 낯선 길도 걸었다. 최근 조성된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동네의 변화된 모습도 감지하였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신기하게도 기분이 나아졌다. 얼었던 마음이 천천히 녹는 듯한 느낌. 움츠렸던 몸도 펴지는 것 같았다. 예전의 경험이 떠올랐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복잡할 때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이 기분 전환에 효과적이었다는 기억. 몸이 피곤할 때 가벼운 운동이 오히려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함 그 자체였다. 샤워가 이렇게 시원한 줄 몰랐다. 기분 좋은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았다. 그리고 마무리를 위해 전신 거울과 마주했다. 알몸. 평소 자세히 보지 못했던 나의 알몸이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이 순간 이토록 초라한 알몸이 눈에 띄었는가? 어쩌면 초라함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월의 흐름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인가? 나의 알몸은 볼품이 없었다. 탄력 잃은 피부는 중력의 영향으로 늘어졌고, 가느다란 목에 붙은 커다란 몸통은 부자연스러웠다. 늘어진 뱃살로 허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고,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눈은 생기조차 없어 보였다.

애써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며 책상에 앉았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옮겨 보았다. 복잡한 마음을 글로 쏟아내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결론은 모든 문제는 나의 내부에서 기인한다는 것. 내 모습은 나 자신이 만들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존재도 결국 나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누구도 나를 규정하거나 조종하지 못한다. 이토록 초라한 상태로 만들었다면 그 책임도 나에게 있는 것이다. 이제 나의 모습을 스스로 책임질 나이가 되었다. 다짐했다. 바람 빠진 풍선에 공기를 주입하고 생기 잃은 잎에 양분을 공급하기로. 세상에 불고 있는 크고 작은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강한 뿌리를 내리기로.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한 가지 정했다. 퇴근 후 매일 만보 걷기. 스스로 약속했다. 욕심을 앞세우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 걸어보기로. 알래스카 늑대처럼 뻔한 덫에 걸려 허우적대지 않도록. 인생은 내가 개척하는 것이다. 이날의 다짐이 나를 달리기의 세계로 이끈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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