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퇴사기 #7
개인적으로 바빴던 일이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수습되었다. 부모님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굳이 종일 돌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C-1 서점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모처럼 찾아온 빈 시간이었기 때문에 멀리했던 취미 활동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더불어 그동안 일했던 서점들에 놀러 가서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듣고, 변화된 공간을 보는 재미를 누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누리기 위해 찾아간 것이라 재취업 의사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잡혀 들어(?) 간 곳은 B서점이었다. 사수였던 분이 제의를 해주셨고, 다른 서점에 다니는 중에도 몇 차례 있었던 제의를 거절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려서이기도 했지만, B서점 내에서 조금이나마 변화되고 있는 시스템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것이 결정을 내리는데 한몫했다. 도서 입고량이 줄었고, 나의 퇴사 후 부임한 점장님에 의해 지점이 좀 더 정돈된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였다. 도서 입고량이 줄어든 주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큰 폭의 매출 하락이었으나, 필요 이상의 입고량과 그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한 파악과 분석이 그보다 먼저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했다. 변화되고 있는 서점에서 다시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놓지 못한 책과 서점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재입사 후 그동안 B서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몰아 듣다 보니 인생은 타이밍으로 엮어나가는 밧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기가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B서점으로의 재입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담당이 된 문학 파트는 B서점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보통 다른 서점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공간 구성이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그만큼 쉽게 많이 찾는 분류이다. 담당자가 바뀌면 구성이 변하는 경우도 많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기본틀은 되도록 유지하되 소소한 구성과 평대는 거의 다 변화를 주었다.
B서점의 문학 파트는 소설과 에세이류로 구성되어 있다. 에세이 쪽은 주제별로 나누어 서가를 재구성했고, 평대는 몇 개월에 걸쳐 큐레이션 비율을 70% 이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신간과 베스트의 진열은 대형서점의 특성상 모음진열로 유지했으며 시즌별 이슈, 문학상 부분은 고정시킨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주었다.
기획 큐레이션은 설명이 많이 없는 디자인 위주의 POP로 안내했고(디자인 팀이 따로 없어 직접 해야 했다. 그럭저럭 무난하게 작업했다고 생각한다.) 1-2달에 한 번씩 교체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광고도서의 경우 별도의 자리가 있었으므로 POP만 신경 쓰면 되었다. 책을 주기적으로 이동시키는 일이 많았기에 정리/진열 등의 기본 업무가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문학 파트 도서들로 진행하는 큐레이션은 주제나 방향성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를 주기가 용이하여 움직이는 재미가 있어 즐거웠다.
문학 파트뿐 아니라 다른 파트와의 협업 진열도 진행했다. C서점과는 달리 B서점은 광고 도서의 모음 진열을 제외하면 파트별로 책을 섞어 큐레이션 하는 일이 드물었던 것이 아쉬워 컨펌을 받아 진행을 했고 평대 유지가 관건이었는데, 예전에는 짧은 주기로 불안정하게 진행되었을 확률이 컸던 기획들이 B서점의 시스템이 변경되며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되어 서점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주변 지역에 경쟁사가 들어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다른 파트 담당자들에게 큐레이션이나 진열 변경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도 했다. 독립서점처럼 본격적으로는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여건상 힘들지만, 큐레이션 체계가 빈약한 경쟁사를 상대하는 전략 중 하나로 진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었는데 동의하는 파트 담당자들과는 주기적으로 협업 진열을 하거나 파트별 진열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변경하거나 새로 적용시킬 것이 많으면 신이 나는 성향이라 재미있게 했다. 큐레이션별 고객들의 반응을 보는 것은 늘 뿌듯한 일이었다. 고객들이 보고 재미있어하거나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을 보고 있을 때는 두근두근 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두근두근 할 때가 있다. 속칭 진상의 등장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서점도 진상이 있느냐, 있다 해도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인데 정도가 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상상불가 고난도의 진상님들은 어디에나 있고 서점도 마찬가지이다. 주로 책을 대하는 부분에서, 한마디로, 보고 있자면 끓어오른다.
B서점에서의 마지막 진상, 그 사람으로 인하여 퇴사를 생각한 것은 맞다. 이전 같으면 운수 안 좋은 날 정도로 여기고 그냥 지나가도 될 일이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그 사람이 동행한 이의 사진을 찍기 위해 책이 진열되어 있는 평대 위에 몸을 반쯤 기울인 것을 본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나의 업무대는 그 행동이 너무나도 잘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팔꿈치로 평대 위에 진열된 책을 눌러가며 자리를 잡고 책이 밀리도록 몸을 기울인 채 동행인의 사진을 찍어댔다. 잘 진열되어 있던 책들이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모서리 부근에 있던 책 5-6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이 지나가다 책을 떨어뜨리는 일은 서점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당황해하며 본인들이 집어 올려놓거나 주변에 있는 직원이 와서 처리한다. 책이 우르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던 곳에서도 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본 것인지 못 본 것인지 그 사람은 동행인의 사진만 계속 찍어댔다. 혹시나, 정말 책이 떨어진 것을 인지 못한 상태여서, 직원이 가서 책을 주우면 많이 민망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떨어진 책을 줍기 시작하자 그제야 돌아보며 책이 떨어졌냐고 했다.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본인이 줍겠다고 했다.(내가 다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한 뒤, 책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는데 못 들으셨나 봐요,라고 이야기했다. 날이 선 말투가 아니라 당신이 뭔가에 집중해 있어서 못 들었나 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류의 말투였다. 그래도 그 사람이 책을 팔꿈치로 누르고 몸으로 밀어 흐트러진 평대 상태를 만든 것에는 주의를 줄 필요가 있겠다 싶어 팔꿈치로 누르면 책에 누름 자국이 생기니 주의를 부탁드린다고 이야기하며 업무대로 돌아왔다.
그 사람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기는 했으나 알았다는 대답도 들었으므로 자리로 돌아와 다른 일 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동행인과 함께 업무대 근처로 오더니 느닷없이, 사과하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책 떨어뜨린 것도 몰랐고, 본인이 줍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주웠으면서, 손님한테 감히 잔소리까지 했다,는 것이 요약이었다. 쇼핑몰 내 입점이었으므로 클레임을 걸겠다고도 했다. 그다음의 일은 아래와 같다.
--책을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주의를 준 것뿐이고 사과를 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나와
--손님에게 버릇없다, 클레임 걸겠다, 무릎 꿇고 사과해라, 여기 최고 책임자 불러와라, 를 시전 한, 그 사람과의 대치 속에
--사무실로 안내된 후에도 계속 무릎 꿇고 사과하라, 사과하지 않으면 그냥 안 넘어간다 등등을 으르렁대는 그들의 말에,
--사수였던 분이 고개 숙여 눈물의 사과를 하고,
--상사가 고개 숙여 울면서 사과하는 것을 본 내가 이를 악물고 허리 숙여 같이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사실, 서점일 하면서 더한 진상도 많았다. 위협을 느껴 경찰을 부른 적도 있다. 서점뿐만 아니라 판매/영업장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진상이다. 가끔 그 일을 다시 생각했을 때, 좀 더 유연하게 처리하는 것이 맞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게 정답이겠지만, 나 스스로는, 당시로 돌아가도 처음부터 사과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엄한데 똥고집일 수도 있다. 내가 해 놓은 진열을 망가뜨리는 것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다.
어느 곳이던, 어떤 물건을 내 돈을 주고 구입하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다는 점을 간과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
서점도 마찬가지여서, 책을 사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험하게 다루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기가 있는 음료컵, 기름진 음식류, 떠먹는 아이스크림 컵 등을 책 위에 놓아두거나, 비닐로 싸인 책을 직원의 동의도 없이 찢거나, 샘플책을 증정책으로 오인하거나, 책을 망가질 정도로 험하게 보거나, 내용을 사진 찍다 걸려 주의를 받고 되려 화를 내는 등, 아주 가지각색이다. 서점에 오는 사람들이 다 책을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은 판타지에 가깝다.
진작에 알고 있는 문제점들인데 한바탕 푸닥거리가 지나가며 내 머릿속도 헤집어 놓은 모양이었다. 조금이라도 책을 함부로 하는 손님들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일일이 주의를 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안다. 정말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책을 대하는 손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은 대개 알려드리면 곧 행동을 수정하거나 사과를 한다. 이상한 자존심, 혹은 다른 것에 이미 화가 나 있던 사람들의 한 바탕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타깃이 되면 앞 선 경우와 같은 사달이 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책들이, 판매자보다 더 아껴줄 사람을 만나야 하는 책들이 험하게 다루어지는 꼴에 화가 났다. 긴 세월 동안 쌓이고 쌓였던 것이 안에서 터진 것이다. 그때그때 풀 수 없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B서점의 진상 건을 계기로 솟아올랐다. 그 상태로는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져 다른 일반 손님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 같았고, 이윽고, 서점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것이다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퇴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했던 다른 서점보다 유난히 진상 손님들이 많아 진상천국으로 장난 삼아 부르던 그곳에서, 최소한의 우아함을 누릴 권리조차 잃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B서점에서의 두 번째 퇴사는 그날 이후 약 한 달 뒤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