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퇴사기 #8
책과 서점이 좋았고, 관련해서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도서 구매 시 직원 할인(서점 재량에 따라 틀리지만 도서 정가제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외 기본 복지에서 많은 혜택을 바라지도 않았고, 책을 직접 다뤄 보는 재미라던가, 손님들이 못 찾고 있는 책을 찾아 주는 재미는 서점에서 일하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일에 대한 흥미도는 안 넘치면 다행이었고 적성이나 성격을 고려해도 잘 맞는 분야였다.
그런데 나는 왜 한 곳에 정착을 못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있는가.
물론 퇴사 시마다 이유는 있었다. 일하기 싫어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낸 퇴사도 아니었고, 배우고 싶은 분야가 특화된 곳을 찾아 배우기 위해, 자연재해로, 집안 문제로, 진상으로 인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등등, 명확했다.
하지만 재입사한 B서점에서의 퇴사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핑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변덕으로, 끈기 부족으로, 뭐 그런 것들 아니었을까. 한 곳에 있으면서 가능한 일이 정말로 아니었던 건가. 남들은 진득하니 오래 머물면서 일하는데, 나는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왜 그랬을까. 그런 과정에서 오는 피로감 누적이 원인은 아니었을까. 이 상태로 다른 서점으로 간다 한들, 이전처럼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까. 적당히 맞추면서 일하는 힘이 나에게는 없는 걸까. 한번 생각이 옆 길로 들어서자 원래 가던 길로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그동안 했던 일에 대한 후회라기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핑곗거리를 만드는 작업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예 직종 변경을 해버리면 어떨까, 서점은 손님으로만 가는 것이 낫겠다, 그러기엔 그동안 한 것이 아까운데, 그냥 서점을 열어버릴까, 아니야 내 장사면 더 참으면서 할 것이 많은데.
어이없고 웃픈 것은, 이런 생각들을 퇴사 후 다른 서점 구경을 다니며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익명의 손님으로 간 마당에, 흐트러진 책을 바로 잡으면서, 서가에 쓰러져 있는 책들이 있으면 세워 주면서, 만화책을 보고 싶어 비닐에 손가락으로 구명을 뚫고 있는 꼬마에게 살짝 주의를 주는 오지랖을 부리면서, 도서 큐레이션이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면 눈을 떼지도 못하고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재입사한 B서점에서의 퇴사 후 가지게 된 두 달 반정도의 자유시간은, 뇌 속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직업정신과 미련, 자책, 무력감이 범벅이 되어 돌아다닌 휴식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