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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씨 Oct 26. 2024

이상한 나라의 서점

서점 퇴사기 #9


다시, 한번 더


휴식기 동안 기껏 다닌 곳이 서점, 도서전, 도서관 등등 책과 관련된 장소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서점직을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몇 달은 책과 상관없는 장소를 다녔어야 맞는 것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 D서점의 입사로 이어졌다.


D서점은 이전 직장에서 시장조사를 계획하며 만든 리스트에 있던 곳이었는데 일정이 변경되어 방문하지 않았었다. 독립서점의 형태가 아닌, 학습지류를 판매하는 동네서점으로  서점직을 처음 시작했던 A서점과 같은 형태의 서점이다.  뭔가 원류로 돌아가 전환점을 찾고 싶었던 걸까. 맨 처음 일을 배웠던 곳과 비슷한 성질의 장소에서 느릿함과 단순함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은 지역의 평범하고 오래된 개인서점이었다. 번화가에 있었지만 연식이 있어 보이는 이미지라 옛날 책방 같은 분위기였다. 어딘가로 면접을 보러 갈 때면 하루 이틀 전에 답사를 가서 분위기를 체크했는데 이곳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면접을 보고, 경력자를 원했던 사장님이 잘 보아주셔서, 일주일 뒤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면접 뒤에도 서점을 둘러보지 않았고 첫 출근일에 맞추어 나갔다. 은연중에. A서점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전체적인 서점의 구성을 보고 식겁한 것은 출근 당일부터였다.



뭐지, 왜 이렇게, 어라?


분류가 뒤섞여 있는, 소분류의 개념이 없어 보이는, 학습 서가 진열에 규칙성이 없어 보이는, 신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평대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서가명을 비롯한 각종 POP류가 낡다 못해 바래어 보이는, 기타 등등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뭐지?


그 정도 규모에 도서 위치가 전산 처리 되어 있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오래된 책방 같은 곳이었지만 결코 작은 면적은 아니었다. 독립서점이나 기타 작은 서점들은 도서 위치가 전산 처리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규모나 면적상 딱히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형급 이상 정도되는 서점이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도서위치를 전산 처리 하지 않아 검색으로 책 위치를 찾을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버리면, 그 서점에서 경력이 많은 직원을 제외하고, 신규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은 각 서가와 평대 진열이 눈에 익을 때까지는 어리바리하게 책을 찾아야 하는 상태가 된다. 책을 찾는 일에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손님을 맞을 때뿐 아니라 업무에 있어서도 비효율적이다.


도서 위치가 전산 처리 되어 있지 않아 대분류에 의한 서가명에만 의지하여 책을 찾으려면  각 위치별로 규칙성이 뚜렷해야 한다. D서점은 책 진열의 순서가 출판사명 가나다, 혹은 도서명 가나다순으로 구성된 서가는 그나마 파악이 쉬운 편이었으나, 지역 총판에서 들어오는 출판사별로 묶어 놓은 초, 중, 고 문제집 파트, 기준이 없는 수험서 파트, 장기 근무한 직원이 편한 대로 구성해 놓은 평대 쪽은 아무리 경력자라고 해도 초기에는 책 찾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소분류를 적용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예술 파트의 경우 각 파트에 속한 소분류들(예술> 미술> 교양일반, 실기미술> 수채화, 색연필화, 컬러링, 만화 등)이 구분 진열 되어 있지 않으면 손님들이나 신입이나 해당 파트에서 책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비슷한 경우의 취미, 경제, 인문, 수험서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찾기 위한 피로도가 높아지면 고객의 재방문 의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본인의 의지에 의해 책을 구경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목표로 한 책을 찾는 시간을 가능한 짧게 할 수 있도록 소분류 별 구분해서 구성/진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도서 재고만  알 수 있는 도서 검색 기능, 위치는 전산 등록되어 있지 않으며, 특색 없는 평대 진열, 눈에 띄어야 할 신간이나 베스트셀러가 보이지 않는 곳에 박혀있거나, 찾는 목적이 비교적 뚜렷한 취미류의 실용서, 취업 수험서, 음악 실용서(악기별), 성격이 많이 다른 소분류들(부동산/주식/금융재테크/마케팅/일반 경제 등)을 가지고 있는 경제서 등이 대분류에만 의존하여 죄다 섞여 있는 서가를 가진 D서점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이란.


마치 이상한 나라에 뚝 떨어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비단 책을 느리게 찾는 것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모음 진열이나 평대에서 기획 도서를 구성하려 해도 제한을 받아 책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가장 관심 있어하는 기획/큐레이션 진열이 기초적인 문제점들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점은 또 있었다. 인수인계, 신입 교육, 매장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경력직이라도 서점마다의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 배워야 하는 부분이 있다. 카운터 계산을 병행해야 하는 서점의 경우 카운터 업무 숙지, 서점에서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 교육, 서가별 진열의 규칙성에 대한 고지, 매장 외에 위치한 도서-주로 반품 예정, 장기 보관 도서-에 관한 설명 등등. 이 중에서 비교적 교육이 이루어진 부분은 카운터 업무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것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교육이나 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래된 직원, 나보다 직급이 높은 직원에게 또는 사장님에게 궁금한 것은 일일이 물어보아야 했다. 그나마 사장님은 성의껏 답변을 해주셨지만, 직급이 높은 직원은 질문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질문을 하면 관련하여 즉답을 해줄 수 있는 부분도 빙빙 돌려 대답하며 이리저리 떠보는 느낌을 받았다. 관련 답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현재 상황에 대한 합리화로 끝나기도 했다. 그런 뜻으로 질문한 것이 아닌데 왜 이러는 거지? 하는 느낌을 수십 번도 더 받게 만들었다.




내려놓기, 나를 위해서


시스템상 어이없을 정도로 실없는 부분의 연속 출현, 매출이 높은 문제집류 외 일반 도서에는 별 관심이 없고 전산 시스템에 취약한 사장님, 이상한 부분에서 각을 세우고 긴장을 유지하며 자신이 모든 것을 참고 일한다는 아우라를 매 시간 뿜어내는 그분(더불어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 비현실적으로 4가지가 없고 일인칭 낭만주의에 입각한 마음대로 도서 진열을 유지하려는 아르바이트님 등등, 이전 서점들에서는 볼 수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이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D서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빛바랜 분류표나 POP들을 전부 교체하고, 각 분류의 평대마다 모음 진열을 통하여 정돈된 모습으로 정리, 서가별로 마구 뒤섞여 있던 소분류들을 구분하여 정리, 산처럼 쌓아 놓기만 한 아동파트 도서들의 정리 & 그림책으로 소소한 큐레이션 진행, 영어 학습 서가 재진열 등등 기존 직원들이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정리하고 설명하는 일을 반복했다. 전산상 어려움이 많아 위치 등록에 무리가 있다는(라기보다는 인수처 직원이 전산 위치 등록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의견을 존중하여 시스템을 수정하기보다 최대한 쉽게 도서 정리를 해 나갔다.


그동안 진행을 못하거나 하지 않았던 부분이 수정, 변화되자 사장님도 좋아해 주셨다. 변화를 싫어하는 그분도 본인은 기존 진열이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손님들은 변화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실 것이라며 지원 가능한 부분은 지원해 주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별 도움이 안 되었지만 4차원적 대화를 할 때면 제법 말이 통할 때도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어느 서점을 다니던 새로 배우는 일들이 있었고, 경험을 나누며 일을 진행했다. D서점에서는 업무적으로 크게 배우거나 진행할만한 일은 없었지만 새로운 부딪힘을 통해서 나를 내려놓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참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고 적응하며 내가 배운 것을 그곳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대입하는 일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다시 퇴사를 떠올릴지는 알 수 없다. 짧게 일할수도 길게 일할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 가장 간단하지만 조금 잊고 있었던 관점을 되찾아 가는 중인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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