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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Dec 23. 2018

별 일 없이 무탈합니다.

영국. 87일 세계일주 #2

   햇살을 도려내는 빗줄기 사이사이, 런던 사람들은 작은 우산 하나 없이 잘도 걸어 다니네요. 이거 정말 들고 있는 우산을 펼치고 싶은데, 저만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그냥 맞고 걸어 다녔습니다.


   런던은 특별한 관광지를 찾아다니기보단, 도시 자체를 관광지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발을 두는 곳마다 대리석으로 쌓인 유럽풍의 건물과, 이질적인 철제 유리빌딩은 애매하게 잘 어우러지거든요.


   와보니까 신기한 건, 겨울의 유럽은 해가 아주 빨리 진다는 거예요. 런던을 창창하게 비추던 햇빛은 4시가 넘어가면서 그늘을 지우더니 이내 빠르게 저녁으로 바뀌어요. 비가 오려는 건지, 해가 지려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그 4시 즈음은, 이 곳에 들른 여행객들에겐 익숙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빨리 지는 해는 런던의 야경을 오랫동안 만들어줘요. 템즈강을 따라 늘어진 크리스마스 전구들과 야시장은, 이 계절에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축제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즐비한 야시장을 따라가다 보면 시선이 꼭 멈추는 곳이 있죠. 타워브리지.

언젠가 한국에서 머리를 자르기 전에 기다리면서 봤던 잡지 있잖아요. 세련된 모델이 선글라스를 끼고, 노란빛이 선명한 정장을 입고 이곳에서 화보를 찍었는데. 브랜드는 버버리던가?


   잡지에서 보던 타워브리지는 선명한 파란 하늘 아래 은근한 중세풍의 다리였죠.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의 타워브리지는 다소 다르네요. 수많은 색의 전구들이 군데군데 잘 어우러져서, 충분히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아요.


   밟는 곳 하나하나 온전히 담다보니, 런던뿐 아니라 다른 영국도 보고싶더라고요.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영국의 땅 끝 브라이튼에는 석회암 질의 기다란 해안절벽이 있습니다. 강한 바람에 의해 조금씩 무너지며 새하얗게 깎아지는 이 절벽을 세븐 시스터즈라고 부른다네요. 언덕이 7개라서 그렇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얼핏 봐도 10개는 넘어 보이던데. 그나저나 여기는 조심해야 됩니다. 60m 높이의 아름다운 절경을 담으려면,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떨어지면 세계일주가 여기서 끝나니까. 조심합시다.


   이제 영국을 얼추 담았겠다. 세계일주의 시작을 함께한 이곳에 대한 짧은 소감을 말해볼게요.


   유럽은 낭만이 즐비한 곳 이잖아요. 그리고 그만큼 위험한 일들도 도사리고 있고요. 소매치기라던가 절도 같은 거요. 그런데요. 영국은 정말 별 일 없었어요.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잘 간직하고 있네요. 양보가 몸에 배어 있어요.

   신사들의 향수보다, 몸에 더 짙게 배어 있는 매너가 이 나라가 가진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떠나는 날마저도 비가 오네요. 여전히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걸어 다닙니다. 우산 같은 거 없이.

저는 우산이 있으니, 우산을 펼쳐들고 파리로 향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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