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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광섭 Jan 05. 2019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파리 에펠탑.  3개월 세계일주#3

   

   우리는 3시 30분 즈음 에펠탑 앞에서 만났습니다. 가벼운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K는 말했습니다.


“해 지려면 30분밖에 안 남았어요. 저희 빨리 사진 찍어야 돼요. 일단 저쪽 공원에 가서 찍고 건너편 사이요궁으로 가서 찍어요.”


   제가 파리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맑은 날이었습니다. 구름 사이사이 비춘 하늘빛 아래, 오롯이 철로만 만들어진 이 경이로운 조형물은 정말 그 자체로 유명해진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앞에서 K와 저는 쉼 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눈에 온전히 담지 못한 시간만큼, 훗날 사진을 보며 오늘을 곱씹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 터질 만큼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한국과 다를 바 없는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그 붉은 기를 그대로 머금은 에펠탑 앞 공원은 한 겨울의 유럽 치고 삽상해서 걷기가 좋았습니다.


눈에 담긴 에펠탑 사이로, K가 말을 건넸습니다.


“근데 이 에펠탑. 이 세상에 없을 뻔한 거 알아요?”


“왜요?”


    K의 말로는,

   에펠이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 조형물의 설계도를 구상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흉측한 조형물이다. 한 번도 지어진 적 없는 모양이다. 파리의 수치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2배나 높은 흉물스러운 검은 조형물을 파리 한가운데에 올릴 수는 없다고요.

심지어 어느 한 예술가는 에펠탑이 세워지면 그쪽을 향해서 밥도 먹지 않을 거라고 했답니다. 그럼에도 에펠은 꿋꿋이 이 에펠탑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아. 역시 뭐하나 그냥 이루어지는 건 없네요."


"그럼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에펠도 모르지 않았을까요? 에펠탑이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될 줄은?"
"아마도 몰랐겠죠? 그랬을 것 같아요.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멀어지는 에펠탑과 그 이야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옆으로 놓인 센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멀어진 에펠탑이 파리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때 즈음. 그제야 우리는 사진 찍느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K는 학교를 졸업하고 몰타섬으로 어학연수를 와 있다고 했습니다. 벌써 한국을 떠난 지 3개월이 지났다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어학원 방학을 맞아 유럽을 여행 중이라고요. 어쩐지 아무렇지 않게 뽈뽈 잘 돌아다니더니. 저보다 유럽에 한참 먼저 온 선배였네요.

   어학연수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뭐 할 거냐는 저의 질문에, K는 잠깐의 침묵과 함께 꿈을 찾고 있는 중이라 말했습니다. 전공은 호텔경영학과이고, 졸업 후 잠깐 호텔에서도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잘 맞지 않아 지배인의 권유로 호텔을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곤 잠시 몰타섬에 와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행여나 괜한 말을 꺼냈나 싶어 어떤 적절한 대답을 돌려줄지 고민하던 찰나, K의 상기된 표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각만큼 썩 슬픈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갈 걱정하는 눈빛도 아니었고요. 오히려 그 커다란 눈망울엔 기대가 가득 차 보였습니다.


“그런 것치곤 되게 행복해 보이는데요?”
“당연하죠. 아직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언젠간 찾겠죠. 제가 하고 싶은 걸. 그때가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르지만요.”


   음. 듣고 보니 K의 말대로, 굳이 우울해할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꽤나 걸었는지, 이제는 멀어져서 아득히 보이는 저 에펠탑만 봐도 그런듯 싶습니다. 그 누구도 처음엔 이 거무튀튀한 철제 조형물이 파리의 랜드마크가 될지 몰랐을 테니까요.


   에펠탑처럼, 저도 언제 어떤 사람이 될지. 옆에 있는 K도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막연함에 열정을 불태우려는 K의 생각이 꽤나 신선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는, 그 묘한 호기심을 갖고 사는 것은 재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항상 그 기대감과 가능성을 품고 사는 건, 매사에 열정을 기울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저는 과연 제가 원하는 사람이 될까요? 아무도 모르겠죠?


   상기된 대화에 삽상하기 걷기 좋은 거리. 파리 여행 중 처음으로 맑았던 날과, 오늘의 대화는 한쪽 서랍에 고이 모셔 두겠습니다.


기억에 선명한 자국을 남겨준 하루가 되지 않을까요?


Paris, France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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