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광섭 Apr 28. 2019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여기 있어요.

볼리비아 우유니. 87일 세계일주 #11

   우유니 사막은 바닥이 소금 결정들로 이루어져 있어 소금 사막이라고도 불립니다. 우기(남미의 12월~3월)에 비가 거세게 쏟아지면, 차오르는 물이 소금 결정들 사이로 스며들지 못하고 그 위에 고스란히 고이게 되죠. 그렇게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날이 개었을 때, 그리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그런 맑은 날에 우유니를 찾게 되면 고여있는 물들에 의해 온 세상이 반영(reflect)되어 그 자체로 하늘을 비추는 커다란 거울이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걸 보면 알 수 있듯,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유니 사막의 절경을 보는 건 생각만큼 쉽진 않습니다. 12월~3월에 맞춰 가야 할 뿐 아니라, 비가 정말 매일같이 쏟아지는 날 중 딱 하루쯤. 맑게 개고 바람이 없는 날에 그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우유니를 찾는 여행자들 중 이곳에서 머무는 기간이 짧은 여행자들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럴 뻔했습니다. 애초에 세운 계획상으론 우유니에 2박 3일만 있을 수 있었죠. 뒤에 있는 빠듯한 일정들을 모두 소화하고 미리 끊어놓은 비행기로 뉴욕으로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리고 보란 듯이 우유니에 도착하니 3일 내내 날은 흐렸고 비만 추적추적 왔습니다. 하루에 2번씩 투어를 신청해서 지프차를 타고 우유니 사막으로 향했지만, 두터운 적란운이 낮에는 해를, 밤에는 수천 개의 빛나는 별들을 모두 가렸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제가 더 이상 그 뒤의 일정을 무리하게 소화할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제 배낭을 훔쳐간 도둑들 덕분이었죠. 빠듯한 일정은 전부 취소했고, 뉴욕행 비행기마저 취소하고 느긋한 것으로 다시 샀습니다. 여행 자금이 떨어져 가면서 돈을 아껴야 했는데,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 그만큼 돈을 절약하기도 쉽기 때문에 이런 판단을 했죠.


   남는 게 시간이겠다, 3일간 총 6번의 우유니 사막 방문을 실패한 저는 이곳에 가능한 오래 남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넷째 날, 마침내 저는 그 아름다운 우유니를 볼 수 있었죠.



   4일째 되는 날 눈을 뜨자마자 바깥을 보니 해가 떠있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볼 수 있겠지, 이곳 우유니 마을도 이렇게 화창한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금사막 역시 화창하지 않을까.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투어사 앞으로 찾아갔고 익숙하게 장화를 갈아 신은 후 지프차에 올랐습니다 같이 탄 사람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죠. 일본인 관광객 3명, 한국인 관광객 3명이 같은 차에 탔습니다. 우유니 사막까지 가는 동안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죠. 일본인들도 우리처럼 이곳 우유니에 와서 서로 알게 된 사이인 것 같았습니다.


   지프차는 울퉁불퉁한 소금 결정들 위를 한참 지나더니, 적당히 얕은 물 위에 멈춰 섰습니다. 운전을 하던 가이드는 저희에게 내리라고 말했죠.


   저는 장화를 신은 채로 소금 위를 밟으며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햇빛은 쨍했고, 주위로는 하얀색 구름들이 드문드문 진하게 떠있었습니다. 저는 그토록 바라던 맑은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본 후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습니다. 제 시선은 끝을 모르고 내려갔습니다. 하늘이 끝나는 지점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하얀 구름과 파란색 하늘은 제가 으레 알고 있던 지평선의 범주를 넘어 발 밑까지 가득 차 있었고, 주위 어느 곳을 둘러봐도 제가 하늘을 밟고 서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엔 아직 봐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걷는 경험은 어디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죠. 날씨는 우기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화창했고, 얇게 고인 물 위로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은 사막 위에 고여있는 물에 그대로 반영되어 제 눈에 들어왔고, 그 광경을 눈에 담은 저는 한동안 말을 잊은 채 멍하니 두리번거렸습니다. 숨이 멎을 듯한 경치에, 과연 제가 알고 있는 지구가 맞는 건지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정말 글자 그대로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이름 한번 대단하게 지어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울. 1년 중 우기, 그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이 우유니 소금사막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굳이’ 추천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하늘을 밟고 서서, 우리가 서있는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느끼고 싶다면 꼭 한 번쯤 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Salar de Uyuni, 2019


Salar de Uyuni, 2019
Salar de Uyuni, 2019


이전 20화 세계 일주하는데 배낭을 도둑맞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