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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eon Apr 03. 2020

해외취업 제로(Zero)부터 시작하기

이것은 모험 이야기입니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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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스타트업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 시장 담당 Business development / Marketer, 외국 생활 3년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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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나라, 대만

나는 2016년에 대만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절친이 대만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고, 비자가 끝나는 1년이 다가오고 있어 이때 아니면 대만에 갈 일이 없겠다 싶어, 친구 얼굴 보려고 대만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이 좋게도 해외를 구경할 기회가 많았다. 고등학교 때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2주간 여행을 하기도 했고, 대학생 교환학생으로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한 학기를 다녀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쉴 틈 없이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녔다.  인도, 네팔, 모로코, 서유럽지역, 터키, 호주, 중국, 일본까지 세상 구경을 나름 해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과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중화권 국가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다.  유럽의 화려하고 우아한 건축물도 없을 것이고, 모로코나 인도처럼 나를 놀라게 해 줄 이국적인 문화도 없으니까.  


그런데 웬걸 나는 대만에 2박 3일 여행을 가서 그곳에 빠져들고 말았다. 대만 사람들은 외형과 내형면에서 동아시아인들만이 가지는 동질감이 있었다. 나와 아주 비슷해 보였는데, 사람들은 더 나이스하고 여유 있으며 순박했다.  이 곳에서는 타인과 다르다는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대만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당시에 여름인지라 짧은 바지와 민소매를 입고 다녔지만 아무도 내 옷차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같은 옷차림으로 인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무례한 눈빛들이 나를 쫒았다니는 것을 보고, '음 한국에 왔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아쉬움과 씁쓸함을 느꼈다.




한국에 돌아와 바로 중국어 학원을 끊었다.

한국에 돌아와 나는 무턱대고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조, 병음 읽는 방법부터 시작했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도 대만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만에서 생활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대만이 좋고, 중국어를 잘하고 싶어서 당시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나를 당시 원어민 선생님이 알아보았다.


그 원어민 선생님은 중국 사람이었는데,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한국 유학을 오고 한국 기업에 취업까지 했다가 중국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말도 배우고 일도 하고 있는 원어민 선생님이라 그런지 같은 처지의 나의 열정을 알아보고 터무니없이 용감한 도전을 선생님은 응원해주었다.  선생님의 응원을 받아가며, 점점 나도 대만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대만 기업에서 한국인 인턴을 찾는다는 공고를 발견하고 나는 무턱대고 지원하게 되었다.




시급 6800원짜리 인턴을 구하다.

타이베이 사무실 풍경

찾고 있는 한국인 인턴 포지션은 다행히도 영어로 근무하면 되었다. 나는 영어 cv와 내 이력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여 지원을 했다.  운이 좋게도 서류가 합격을 하게 되었고, 나는 뭐에 홀린 듯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다시 대만 땅을 밟았다.  정직원도 아니고 인턴직이고, 면접이 붙을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가족들한테도 3개월 뒤에 올 수도 있다며 작별 인사를 청했다. 그때는 1년이 지나서야 한국에 돌아가게 될 줄 몰랐다.


글로벌 팀 인턴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 & 홍콩 & 일본 & 한국이 하나의 팀이었다.


면접을 본 회사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 회사였다. 대표도 30대 초반이었고, 직원들도 모두 젊어서 회사보다는 캠퍼스 느낌이 나는 회사였다. 나를 면접 본 글로벌팀 팀장은 미국인이었는데, 약 20분 정도 영어면접을 보았고 면접이 끝날 때 붙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새벽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무모하지만 익사이팅한 나의 대만 생활이 시작되었다. 시급이 180대만 달러( 한국 돈 6800원) 였는데, 놀랍게도 이 돈으로 월세도 내고 생활비까지 충족했다. 이때, 위기 속에서는 이가 아닌 잇몸으로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 천천히 3년간의 대만 취업 도전기를 기록해나갈 계획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는 단지 취업을 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한계를 깨고 도전을 해본 모험기라고 생각한다.  이 기록을 본 사람들이 우리는 사실 모든지 할 수 있고,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새로운 모험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니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모험을 권한다.



https://brunch.co.kr/@emmaminjujeon/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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