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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P 2부. 착각이 사라져야 길이 보인다.

1. 세상의 물건은 언제나 '복리'로 비싸졌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하나의 신화를 믿어왔습니다. 바로 "복리(Compound Interest)의 마법"입니다. 은행 창구 직원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고객님, 72를 이자율로 나누면 원금이 두 배가 되는 시간이 나옵니다. 만약 수익률 6% 상품에 가입하시면, 12년(72÷6) 뒤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돈이 정확히 두 배가 됩니다. 1억을 넣으면 2억이 되는 거죠. 이게 바로 아인슈타인이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극찬한 복리의 마법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칭송했다는 것인 사실인지는 몰라도 얼마나 명쾌하고 과학적입니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만 내편으로 만들면 부자가 되는 건 수학적으로 증명된 미래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 말에 안도하며 통장을 개설합니다. 12년 뒤 두 배가 될 내 자산을 상상하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이 완벽해 보이는 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하나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찬양해 온 복리의 마법이, 내 통장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격표는 태초부터, 아주 강력한 '복리'로 움직여왔습니다.


어릴 적 500원 하던 짜장면이 600원이 되고, 800원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가격이 오를 때, 500원을 기준으로 매번 100원씩 오르는 '단리' 상승은 세상에 없습니다. 500원에서 10%가 올라 550원이 되면, 다음 상승은 50원이 아니라 '직전 가격'인 550원을 기준으로 오릅니다. 그래서 605원이 되고, 그다음엔 665원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은행에서 '복리 상품'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우리가 사야 할 아파트, 우리가 먹어야 할 밥값, 우리가 입어야 할 옷값은 이미 훨씬 더 가파른 속도의 복리로 몸집을 불려왔습니다.

짜장면 값이 500원에서 8,000원이 되는 데 걸린 시간과 속도를 보십시오. 우리의 500원이 은행에서 복리로 굴러서 8,000원이 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했습니다.


금융 상품에서 말하는 '복리의 마법'은 사실 마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돈이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가치의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입니다. 만약 이자에 이자를 주지 않는다면(단리),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가치를 갉아먹는 '저금통의 저주'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냉정하게 말해봅시다. 복리는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붙잡아야 할 최소한의 구명조끼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착각해 온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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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실함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시대

그래서 "아끼고 저축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미덕으로 삼는 것은 이제 위험합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인 문제입니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은행 금리가 물가 상승률을 압도했습니다. 그때는 저축이 미덕이 맞았습니다. 저축만 해도 물가 상승을 이기고 '구매력'이 커졌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경제 성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사회일수록, 물가를 상쇄하는 이자 수익을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우리는 옛날 월급 50만 원 받던 시절보다 지금 200만 원, 300만 원 받는다고 훨씬 부자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50만원 받던 시절부터 모은돈이 30년이 지나서 4배, 6배가 되면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돈의 '흐름(Flow)'과 '축적(Stock)'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 해의 수입'으로 '그 해의 물가'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의 8,000원짜리 짜장면은 2024년의 월급으로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소득도 물가(복리)를 따라 어느 정도 상승해 왔으니까요.

문제는 '과거에 축적해 둔 돈'입니다. 20년 전, 피땀 흘려 모은 1,000만 원을 생각해 봅시다. 그 시절 1,000만 원은 엄청난 가치였습니다. 우리는 그 돈을 소중히 저축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 1,000만 원의 가치는 어떻습니까? 숫자는 조금 불어났을지 몰라도,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초라할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모은 돈은 현재의 물가를 상쇄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장기 저축'의 배신입니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라던 격언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가만히 있는 현금의 가장 큰 적입니다.

따라서 "젊을 때 쥐어짜서 모으면 노후가 편안할 것"이라는 기대는, "내가 모은 돈의 가치가 3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을 것"이라는 위험한 전제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입니다.


3. 새로운 길은 왜 항상 위험해 보이는가

저축의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다른 길을 찾습니다. 서점에는 "월급쟁이 부자 되기", "퇴사하고 월 1,000만 원 벌기" 같은 책들이 넘쳐납니다. 투자나 자영업(사업)을 통해 물가를 뛰어넘는 소득을 만들라고 합니다.

생각을 해보면 추가의 수입을 만들어야 하니까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직장에서 받는 월급 300만 원을 생각해 봅시다. 이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부했고,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뚫었으며, 매일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습니까? 소득의 크기는 의례 그 난이도와 비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투자'나 '부업'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주식 좀 공부하면 월급만큼 벌겠지"

"유튜브 좀 하면 부수입 생기겠지"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낙관 편향(Optimism Bias)'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 확률을 과대평가하고 실패 가능성은 축소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의 노동으로 얻는 소득 정도의 '추가 소득'을 얻으려면, 지금 하는 일만큼 혹은 그 이상의 노력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재테크 콘텐츠들은 이런 현실적인 고민은 외면한 채,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 고문만을 팝니다.

저축은 가치를 갉아먹고, 투자는 불확실하며, 사업은 위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진짜 현실입니다.


4. 낡은 지도를 찢고 현실을 마주하다

이제 2부에서는 제가 금융 전문가로서, 자영업자로서, 그리고 투자자로서 직접 겪고 목격한 수많은 사례 중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눠보려 합니다.

오랜 시간 가져왔던 선입견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익숙한 믿음이 깨질 때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것을 '인지 부조화'라고 하죠.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불과 수백 년 전까지 인류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산성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고 믿었고, 음이온 팔찌를 차면 건강해진다는 것이 상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들으면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진리'였고 '과학'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붙잡고 있는 "아껴서 저축하면 복리의 마법이 해결해 준다"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진실이었을지 모릅니다. 집값이 오르고 금리가 높았던 그 시절에는 유효한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게임의 룰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대륙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요. 이 '착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우리는 계획의 모든 오류를 수정하고, 진짜 나를 위한 'DMP(디폴트 머니 플랜)'를 세울 수 있습니다.


2부는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믿었던 희망을 부수고, 외면하고 싶었던 불안한 현실을 들춰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려면 먼저 환부를 정확히 봐야 합니다.

성실함이 배신당하는 이유, 전문가의 예측이 틀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막연한 기대로 인생을 베팅하고 있는 이유. 이제 그 진짜 이유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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