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브랜딩 007
몇 달간 한국에 있다가 중국으로 돌아가니 울적해졌다. 텅 빈 집에서 나 자신도 텅 비어가는 듯한 시간.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처음인 나에게 나는 너무 가혹하게 대했었다. 뭐든지 잘해내고 싶었다. 육아도, 가정도, 살림도, 모임도 뭐든지 전부다.
삶의 기준은 모두 남을 위해_로 맞춰놨는데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않고 갈아넣었던 시간. 나는 점점 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외면했었다. 미안해. 넌 좀 기다려. 다른 것부터 좀 챙겨야 돼.
그러다 병이 난 것 같다. 나는 2-3주를 끙끙 앓아 누웠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지인분이 오셔서 아이를 봐주고, 병원가서 링겔을 맞고 약을 먹어도 침을 맞아도 도통 몸이 낫지 않았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는걸까..머리가 아득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아파 힘이 빠지니까,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으니까 그제서야 내가 보였다. 너덜너덜하게 말라 파삭해져서 스러져있는 나.
그 기간, 중국 오기 전 한국에서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은게 있었는데, 전화로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암세포로 추정되는 결과의 내용이었다.
담담하게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사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내 짐은 어떻게 하고, 정리해야할 것들을 어떤 순서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
그러다 문득, 어떤 사실 하나를 마주했다. 내가 죽고 50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내 이름도 기억 못할 것이고, 100년이 지나면 내 존자 자체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들을 우선 순위로 삼고 살고 있었다. 세상의 눈치를 보며, 아둥바둥 애쓰며 말이다.
잠든 아이쪽으로 고개 돌릴 힘도 없어, 아기의 발을 잡고 울었다. 그동안 뭘 했던 거지.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에 신경썼던 시간까지 자책하다, 내가 내 딸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했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아이와 가정을 위해 살 수는 없었을거야. 지금까지 버틴게 기적이고 놀라운거야. 네가 잘못한건 단 하나야. 네 한계를 모르고 스스로를 몰아부친 것, 힘든만큼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혼자 다 해내려고 한 것. 너는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했어야 해.'
나는 남은 시간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을 산다해도, 가장 재미있고 신나게 일주일을 살다 죽어야겠다고.
얼마 뒤 병원을 통해 다시 듣게된 사실은, 용어를 잘못 말해서 검사 결과를 잘못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와..내가 암이 아니다? 나는 암이 아니었다!! 오해의 상황보다 기쁨이 훨씬 더 컸다. 나는 암이 아니었다!!
죽음을 가까이하면 역설적으로 하루가 충만해진다_는 원리를 온 몸으로 깨닫고 난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한번씩 바라보기로 했다. 모든 일상의 순간은 당연하지 않았고, 하루를 행복하게 충만하게 사는게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숨쉬며 사는 것,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것, 노래할 수 있는 것,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 아이와 웃는 모든 순간.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날은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이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은 매일이 기적같은 소풍이고 여행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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