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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선인장 Sep 20. 2023

퇴사 50일째

“통제할 수 있는 자유”

“단지 길이 좁아 보일 뿐 존재하지 없는 것은 아니다”

-<퇴사학교> 중


퇴사를 하고 나서야 <퇴사학교>를 읽었다.

회사 도서관에서도 본 기억이 나지만,

그때는 약간 금서 같은 느낌이었다.

지나쳐 다닐 때는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 책을 읽으면 퇴사를 망설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분명히 퇴사 전 준비하고 나가라고 할 것이고,

내가 매일 겪는 가스라이팅을 막아주지는 못할 것이고)

더군다나 팀장으로서 대놓고 퇴사를 맘에 두고 있다는

약한 티를 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었다.




퇴사 후 일상, 나의 선택적 자유의 시간들.


"그 맘 너무 잘 알지. 그 상황 너무 잘 알지"

"너 거기 나온 건 정말, 정말 잘한 거 같아"


나를 오래 알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나의 퇴사 소식에,

그 간의 힘듦을 빙산의 일각이지만 보아왔기에,

내용을 깊이 알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너무 축하한다"

"너무너무 잘한 일이다"라고 칭찬한다. 아니 응원한다.

나의 힒듬 시간과 결정에 대해 공감을 받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느낌과 내가 그곳에서

비정상이 아니었음을, 그들의 심한 가스라이팅이 있던

환경에 물들었던 내 감정이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야 나는 무덤덤하게 그들의 말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나를 위해 정말 잘한 것 같아"

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간의 감정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내가 한 선택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이제는 그들과 함께 다시 한번 확인받고 있다.

물론 내가 타인의 인정이, 그들의 응원이, 여태 나의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후회하고 있었다는 뜻도 아니다.

단 내가 겪었던 경험과, 내가 겪었던 시간이, 그 힘든 시간이, 그 힘든 시간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지금에 와서는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점차 겹겹이 쌓이는 만큼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을 만드는 것 같다.


퇴사를 하고 나서 겪는 불안함과 고민에는 "너무 잘 알지, 그 마음 너무 잘 알지" 라며 격하게 공감해 주는 반응만으로도, 이런 만남만으로도, 내가 지금 무슨 마음이 생겨나고,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것이 긍정만은 아니고, 현실에서 오는 불안감이어도 다 괜찮다고 말해준다.


퇴사 -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잊힌다는 느낌.


나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을 만나면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내가 겪었던 일들의 한 에피소드만 들어도 "너무 힘들었겠다" "어떻게 5년을 넘게 버텼니" "너는 정말 할 만큼 했어"라는 말들과 "거기서 나올 수 있었던 게 너무너무 잘한 선택이다"라는 말이 지금의 선택에 힘을 실어주지만, 한 편으로는 매일 봐았던, 함께 일하며 믿었던 직장 동료들에게, 또는 그때는 나름 가까웠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잊혀간다는 외로움이 공존한다.


그들은 조직에 남아있고,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이제 그들과의 어떠한 접점도 없고, 그들을 만나게 돼도, 회사의 이야기를 해야 하거나, 묻게 되는 게 싫다. 만나고는 싶지만 한 편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래서 나도 먼저 연락하지 못하게 되는, 그리고 그들도 내가 회사를 왜 떠나게 됐는지 아는 상황에서 그때의 일들을 연상하거나 떠오르는 게 나한테도 원치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막상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 내가 먼저 연락을 안 하면 자연그럽게 그들의 일상에서도 내가 서서히 잊힌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나의 회사 일상은 퇴사를 한 시점에서 끊겼고, 그들은 지금의 회사 일상에 몰입되어 있을 테니까.


내가 후회 없이 일한 만큼.

그들의 바쁜 일상이 그립지는 않다.

사람이 그립긴 하다.


내가 그들을 그리워하듯, 그들도 나를 조금은 생각해 주길. 내 빈자리가 티가 나길 약간은 기대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퇴사 후 느끼는 선택적 자유와 거기서 오는 삶의 여유에서 나는 이런 이중적인 잣대의 마음들이 공존했고, 그래도 그럼에도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응원을 받으며 지금, 오늘이 나에게는 더 나은 하루임을 위로받는 듯한 하루였다




물론 책에서든, 먼저 퇴사한 친구던, 퇴사 후 해야 하는 공통적인 이야기는 하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생각과 준비가 되면 시작하려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버려야 한다" "시도를 해 보지 않고 실행을 해 보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열리기 힘들 수 있다"라는 것.


지금은 그들은 나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다.

퇴사도 내가 한 선택이 듯, 쉼의 시간과 기간, 그리고 그 안에서 다음 스텝으로의 결정 또한 나의 선택이다.

지금, 오늘, 시간을 갖고 내가 쉬어야 하는 건 맞다.

아직 병원에서의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이고, 10월까지 이어질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조금이라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마음을 내려놓되, 내 삶을 모두 스톱하지는 말아야 하는, 일상 루틴에서 최대한 멀어지지 않는 긴장감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당장 일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한 들, 내 체력은 아직 출발선에 다시 설 정도의 준비도 하지 못했으니,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는 없다. 이제 다시 장기전으로 (이직 준비던, 다른 길이던) 기초 체력을 다시 길러야 하는 건 기본 숙제이자 큰 숙제이다. 지금 한 달 안에 두 개의 수술을 해서 몸이 더 지쳐있긴 한데, 갑자기 체력을 구축해 본다고 근처 동네 산에 올랐다가 8천 보를 걷고, 한 건의 시내 약속을 다녀온 후로,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퇴사 50일째, 나는 그저 일상의 출퇴근처럼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 반씩 총 3시간을 이동하는 것 자체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휩쓸려 다녔던 그 공간이, 이렇게 힘을 빠지게 하다니, 반성하게 된다.


이제 점점 뚜렷해지는 것은 체력을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면서 행복하게, 조금은 덜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나만의 선호하는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깊게 해야 한다는 것, 남이 아닌 나를 돌봐야 한다는 것, 나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게 지금 내가 단기적으로, 퇴사 3개월 안에 답을 찾고 싶은 희망 사항이긴 하다.




퇴사 한 첫 달에는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감에 열 군데 정도 이력서를 냈었다. 그 기준은 '어떻게 서든지 전 상사나 직장 동료들에게 '보란 듯이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다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일까 라는 자아성찰을 한다. 그들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맞지만, 내가 왜 그들의 "인정"받는 이직을 하거나, 조건만 가지고 "부러움"을 유발하는 이직을 하는 게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진심 나를 위한 다고 한 선택들은 아니었던 것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내가 그런 조건만 보고, 다시 가서 행복하게 일하지 못하고 힘들다고 그들을 원망할 것인가? 그건 아니지 않나. 그러기엔 내 인생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다.


오늘은 다짐한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던 퇴사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말자는.

나를 위한 이 과정과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이 시간이 물론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바로 이직을 택하지 않는다면 6개월에서 1년이 될 수도 있다.  6개월 이내에 이직을 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불확실한 언젠가는 해야 하는 '졸업'같은 퇴사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한 미래를 위해 눈을 낮출 것인지 , 아니면 조금 더 도전적이어도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임원으로 도약할 것인지는 매일 고민한다. 하지만 그것도 생각하는 이직 방향과 회사, 포지션, 이직 제안 조건에 따라 성공하면 그때 가서 고민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이렇게 소소한 감정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만, 다양한 새로운 길과 새로운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을 계속 찾아 나가며 나를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기로 굳게 다짐해 본다.


체력이 경쟁력이다.

-나만의 백수 50일째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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