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 100일 백수일지 ep 01. 나는 계획을 짠다.
정신없이 퇴사를 하고,
퇴직금이 들어오고 나서야
이제 나에게는 아무런 적이 없는
홀로 망망대해에서 항해를 시작해야 함을 실감한다.
퇴사를 결심하고 한 동안은
퇴사를 준비하고, 퇴사를 하는 '퇴사'와 '정리'라는 부분으로
모든 감각이 직결되어 있었고,
퇴사를 하고 나서도, 한 동안은 전 직장 동료를 만나거나
못 만났던 지인과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며
모든 것에는 wrap up이 필요하듯
지난 과거를 회자하는 시간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며칠을 보냈다.
마지막 급여와 상여, 퇴직금이 들어오고 나서야
온전히 제출기한이 없는 숙제를 받아 든 느낌처럼
기약 없지만, 무엇인가를 결과론적으로 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긴다.
나 자신이 보낸 시그널로 인해 '잠시 쉼'이라는 결정이
나의 세 번째 백수 생활의 시작이다.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 위해
'잠시 쉼'을 택한 이 시간을 '백수'라고 지칭하기에는
다소 주저하게 된다.
이 결정이 사회에서의 '위치'와 '나이'라는 장벽에 2-3년을 고민했고,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SNS와 자기 계발서에서는 '버텨라' '준비해라' 다양한 사례들의
이직과 창업, 여러 삶의 변수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주옥같은 말들이
때로는 퇴사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때론 좀 더 버티게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온전히 '(아무것도 안 하는) 백수'라는 단어가 유독 인정하기 싫은
시기이기도 하다. 백수는 왠지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느낌, 아무것도 안 하는 느낌.
물론 삶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시 멈춤을 하는 게 뭐가 나쁠까만은.
그리고 백수가 누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기라고 하겠냐만은.
왠지 '이제 뭐 하시게요?'라고 하면 '저 아무것도 안 해요. 백수예요'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 준비되지 않은 퇴직은 나에게 백지상태의
A4용지를 주고 빨리 채워야 할 것 만 같은 부담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파워 J까지는 아니지만 쉼의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
목표와 스케줄을 짜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의 시간을
충분히 충전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 시점이 되지 않을까.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불확실성에 대한
기약 없는 이 시간들이 내 미래가
불안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잠시의 '쉼'이 의도치 않게 6개월 이상이 되어 '경단녀'가 되지 않기 위함이
나의 1차 목표이긴 하다.
그래서 좀 더 짧게는 3개월, <100일 백수일지>라는 이 글을 쓰며 마음과
매일 마주치는 삶을 부여잡아보기로 했다.
'한 달은 푹 쉬어'
'지금은 쉬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있지만
퇴사할 때 너무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잘했어'라고 말해 준 동일 인물이지만
우리 언니처럼 불안함을 못 견뎌하는 사람은 바로 몇 칠이 지나면
'면접 연락은 와?' '어떡하려고 그래?'라는 질문을 한다. 물론 걱정이겠지만.
이 시간 동안 최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싶지 않다.
이 나이에 어떤 위치까지 가 있어야 하고,
이 나이에 얼마만큼의 자산을 보유해야 하고,
이 나이에 얼마만큼 노후를 준비했는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이 삶이,
현실에서 나를 돌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이 '쉼'의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안다.
아이러니하게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된 순간
휴가 시즌이기 겹치기도 했지만
휴가가 끝나고 나니, 생각보다 헤드헌터도 연락이 없기도 하고
생각만큼 지원할 만한 포지션이 많지 않기도 하다.
휴가 전에 지원했던 곳의 합격통보를 뒤로 하고,
휴가 후에 보낸 곳에서는 한 곳이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지원 요건과 다소 맞지 않는다'는 판단.
헤드헌터의 에둘러 말하는 의견은 그냥 'no'라는 것을 안다.
100곳은 지원하는 마음으로 (6년 전에도 한 50여 곳에 지원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업종이나 다른 직종도 생각해 보면서
불안하면 불안할 수도 있지만, 우선 8월은 건강 회복에 집중하고자 한다.
백수일상
1. 건강 챙기기
각종 예방 접종 맞기 - a형 간염 예방접종 맞기
지난번 건강 검진에서 음성으로 나온 a형 간염 예방접종을 맞아보기로 했다.
백수가 되니, 지출만 남아있지만, 그래도 건강에 투자는 해야 하고,
b형 간염음 보건소에서도 접종을 하는데, a형은 일반 내과 등에서 해야 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하는 센터가 좀 싸긴 했다. 58,000원.
동네 의원에서는 70,000원이라고 한다.
광화문에 위치한 ㅎ 건강검진센터에서 전화를 해보니, 50,000원이라고 한다!
바로 가서 접종을 했다. (뿌듯하다) 이제 6개월 후에 2차를 맞으면 항체가 생긴다고 한다.
매일 기초체력/스트레칭
(= 피트니스 센터냐 필라테스냐 수영이냐 등록하고 안 다닐까 봐 두렵다고 선택한 홈트...)
아침 공복 운동이 제일 좋다고 하여, 아침에 유튜브를 틀고, 아침 스트레칭 20분,
승모근 스트레칭 20분, 골반 스트레칭 20분을 했다.
심각하게 뻣뻣하여 내가 순간 로봇인가? 싶기도 했고,
왼쪽 골반이 특히 틀어져 있어, 오른쪽과 비대칭이 되어 있었지만
필라테스 등록을 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매일 스트레칭을 해보면 좀 나아질까.
작심삼일이라도 일주일에 서너 번 하면 칭찬할 만하겠지.
기타 병원 다니기
개인적으로 8월 말에 수술이 하나 잡혀있고, 8월 중순에는 추적 관찰이 필요한 정기 검진이 있는 달이다.
수술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줘서 하는 수술이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래도 짧게나마 전신 마취를 한다니 다소 떨린다. 내일은 사전 검사가 있는 날.
비급여로 다소 지출이 클 예정인데, 예정되어 있던 것이니 이것도 해야 하는 투자이다 싶다.
2.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신청하기
5년 동안 300만 원 정도 고용노동부 인정 취업훈련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국민내일배움카드.
나는 45세 이상이라서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신청했어도 되는데, (슬프다)
그때는 아직 필요 없다는 생각도 했고, 삶 속에서 배움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미뤘다.
지금에서야 신청하고자 하니 실직자로서 HRDnet에 등록하려고 하니 구직 활동을 등록해야 한다고 나온다. 다행히(?) 2017년에도 이 카드를 등록해서 발급받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기록이 나왔고, 그때 등록했던 이력서 내용이 있어 조금 업데이틀 했다. (바로 구직활동 사이트에 등록하면 연락이 오지 않을까 희망도 품었지만,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하하)
카드가 언제쯤 올까. 뭘 등록해서 재취업에 도움이 될지 가슴이 두근거려야 하는 건지, 우울해해야 하는 건지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3. 개인 프로젝트 - 100권의 책 읽기
나의 유일한 취미는 '책 사기' '책 읽기' '책 되팔기'라고 해야 할까.
집에는 정말 많이 샀던 안 읽은 책들이 쌓여있다.
그래서 최대한 서브 테마로 이 시간들을 계기로 <하루에 1권> 또는 <100권의 책 읽기>를 도전하기로 했다.
(약 3개월이라는 시간을 두고 짧고 굵게 해보려고 한다)
어딘가에서 봤을 때, 주차별로 테마를 잡아서 몰아서 비슷한 책들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 적이 있다.
내 거실에 있는 책장을 둘러본다. 책을 다 꺼내서 주제/분야별로 바닥에 나열해 본다.
100권을 거뜬히 채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책의 두께에 따라 하루에 1권은
무리이기도 하고, 두꺼운 벽돌 책들이 여러 권 있어, 우선은 엑셀을 열어 분류를 해보았다.
주 부류는 경영/ 마케팅 & 브랜딩 / 에세이/ 심리학 / 자기 계발 /외국어 / 소설 순이다.
(책장 앞줄에 있는 책들이어서 거의 산책 위주이고, 그 뒷줄에는 더 많은 책들이 있는데 우선 앞줄만 클리어해 보자는 마음으로.)
우선은 88권의 책만 리스팅을 하고, 그중에 상/중/하로 상 중심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그중에 원서는 딱 2권만 넣었다. 원서는 보통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물론 중간에 이 리스트는 내 욕심이나 관심도에 따라 달라지겠지)
읽고 있었던 책들 연하늘색, 두께가 읽는 책들은 주황색. 중간에 새로 구입하게 될 책? 또는 집으로 입고될 책 (도서관 활용 등)은 초록색으로 구분해 볼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은근 J. 실행에 스트레스도 받겠지만.
오늘의 백수일지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