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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선인장 Jul 15. 2023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퇴사 전 마지막 일주일

40대 후반 여자 팀장으로 살아남기

D-10 건강검진 결과를 받다.

건강검진 결과는 예상했던 데로 2년 정도 추적관찰 한 곳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됐다. 퇴사 전까지 수술을 하게 된 다면 사상병가도 전환도 가능하기에 실장님은 계석 미리 사직원을 올리라고 하셨지만 아직 7월 말 연차 소진으로 퇴사로 합의하기도 했고, 검사가 더 급하니 우선 당일검사가 가능항 곳에서 조직검사를 했다. 안 좋아 보이는 곳이 두 군데 있고, CT촬영과 초음파가 매칭이 안 되면 그 후에도 또 추가 조직 검사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암진단 없이는 상급병원에 가기가 힘든지라 고민이 된다. 회사에서 병명에 따라 보험 혜택과 지원이 나올 수 있어, 이럴 때는 퇴사보다는 재직 기간 중에 치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D-5 떠나는 자 vs 남는 자의 태도

월요일 아침부터 실장님과 회의가 있었지만, 지난주 대행사 미팅이 어그러지고, 잘 준비되지 못한 미팅 시 팀원들에게 별다른 지시를 안 한 게 팀장 잘못이라고 화를 내며 들이박은 그 팀원 덕에, 그리고 양해도 없이 연차를 내고 사라진 또 다른 팀원 덕에, 이 회의는 제대로 진행될 턱이 없었다.


주말 내내 불편한 나의 마음과 한 편으로는 나 또한 일주일 후면 나가는 판에, 업무 인수 인계서를 실장님께 제출하고 회의에 들어갔다. 팀 내에서 회의를 해도 논의 자체가 안 되고 나보고 정해달라고만 하는 팀원들 (근데 시니어다) 이런 상황에서 실장님은 그나마 준비했던 아이템도 다 날라시고 팀장님이 대책 없이 회의 주관을 한다며 나를 또 팀원들 앞에서 몰아세우셨다. 그 와중에 그 팀원은 나에게 또 결정해 달라는 듯이 기획 아이템을 어떻게 하실 거냐며 실장님 앞에서 질문한다. 본인들도 없는 의견을 질문으로 나에게 토스하는 그 팀원은 도대체 무슨 태도인가. 끝없는 적막과 함께 그래도 나의 의견을 말씀드렸지만, 실장님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실장님은 나와 별도로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했고, 두 팀원을 내보내셨다. 나가고 나니 실장님은 나에게 남은 한 주 어떻게 업무를 정리했으면 좋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실장님이 두 실무자와 앞으로 직접 이야기하시고 업무를 진행해 달라고 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그 안을 먼저 언급하시기도 했다.)


나는 지쳤다. 그 업무에 대해서 몇 차례 반대되는 의견을 말씀드렸고, 의견 차이가 있었다. 내가 근무 마지막 주인데, 팀원들을 위해 업무 참관형태로 모든 업무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불필요해 보였다. 중간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그들이 더 빠르게 실장님에게 직보고 하고 직답을 얻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했다. 팀장 단톡방에서도 실장님은 한 번도 내 5년 근속포상에 대해 축하 인사도 해 주거나,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 팀원은 내 근속포상에 한 턱 쏘라는 말만 할 뿐 축하한다고 하지 않았다. 뭔가 비정상적인 대화들. 투명인간 같은 느낌.  오히려 다른 팀원들과 팀장들을 불편하지 않냐고 챙겨주지만 팀원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적막이 흐르는 팀. 아무렇지 않게 팀원들만 리딩하는 그 팀원. 그래 이제 4일만 버티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D-4 마지막 주간회의 그리고 평가결과

사직원을 임시저장함에 작성했다. 서약서. 인수인계확인서, 동의서, 퇴직금수령 관련 서류에 체크를 하고 서명을 한다. 수요일에 검진 결과를 보고 혹시라도 사상병가 또는 휴직처리가 될지에 따라 수정해서 상신 예정이다. 노트북 내 자료들은 거의 다 백업 정리가 되었고, 이제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불편하다. 가는 자는 불편하고 남는 자들도 불편한 그런 시간. 내가 팀원들에게 느끼는 불편함과 서운함. 그리고 많은 상처. 조용히 집에 가는 것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일찍 송별 점심을 먹긴 했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 나에게 별도로 밥을 먹자고 하는 팀원은 없다. (그들은 내가 먼저 다시 밥을 먹자고 해주길 바랄까?)


오후에 팀원 평가 결과가 나왔다. 본인이 평가 항목도 바꾸지 않았던 그 팀원은 팀에서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았다.  본인은 말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겠지만 막상 결과를 받고서인지, 월요일 회의 때문인지, 나에게 사전 보고도 없이 내일 연차 등록을 온라인에만 하고 간 걸 발견했다. 퇴근 후라, 그리고 나도 마지막까지 그녀의 이런 무분별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이 태도를 떠나는 팀장이기에 잘못된 행동을 화를 내거나 지적하지 못했다.  나에게 팀장 리스펙트가 없는 팀원. 아마도 월요일 회의에서 내가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거다. 내가 살기 위해 나 자신을 더 희생시킬 수 없다. 지금 일주일 방패 막이를 안 하고 그들과 연이 끊어져도 그게 더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또 착한 팀장처럼 방패 막이를 해 준다고 그들이 나를 영웅으로 생각하거나 고마워할까. 그냥 마땅히 해줘야 한다고만 여겼을 것이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의 희생.


마지막에 여기에서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팀장이어도 내 인생과 나 자신이 실패자는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 그리고 그들이 나에 대한 평가는 온전한 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시니어급 팀원들이 팀장에게 태도의 문제가 있고 팀장과 막말을 하며 마찰이 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처럼 서로 칭찬하고 격려한다. 어찌 보면 나보다 나은 건가 그들의 리더십이라고 말하는 것이? 맘이 혼란스럽지만,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며 평가 코멘트 창을 닫아버린다.  


D-3 마지막 오전 반차 그리고 사직원 제출

오전에 마지막 반차를 쓰고 병원에 다녀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고, 의심되는 것들 중 하나는 양성종양이지민 필히 제거해야 하는 수술이 필요하고, 나머지 하나는 추가 조직 검시를 헤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수술 방식이나 비용, 향후 장기적인 관점을 고려하면 상급병원을 가고 싶지만 몇 군데 전화를 돌렸지만 다 내년 1-2월이다. 고민이다.


오후에 돌아온 사무실에서 남음 팀원들과 마지막 주간회의를 했다. 감사하게도 퇴사 선물과 (알 수 있지만) 익명인 롤링페이퍼도 건네받았다. 물론 그 안에 명 수를 보면 그녀는 적지 않은 듯했다. 일부러 마지막에 나를 피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내가 먼저 다 가거나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우리 서로 타이밍을 너무 놓쳐버렸다. 회의 후, 사직원을 올렸다. 다음 주에 수술을 하게 되면 그만큼 휴직원을 쓰고 나머지 연차를 수급하면 된다는 인사팀 설명을 들었다.  한 시간 뒤, 조용히 실장님 결재가 났다.


이제 다 정리가 되어간다. 이제 끝인가.


D-2 실장님과의 마지막 티타임

실장님이 출근길에 티타임을 요청하셨다. 앞으로 퇴사하고 뭐 할 건지, 병원은 잘 다녀왔는지, 지난 1년간 팀원들 평가나 성장 가능성 등을 여쭤보셨고, 차주 부문장님 업무 보고용 겸 인수인계 자료를 내일 오전 10시 전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양이 얼마 안 되지 않냐고 하시면서...) 마지막 업무 지시려니 하며 마지막 업무를 하며 오후를 보냈다.


차를 마시며 지난 2주 동안 여러 가지 마음과 불편함에서도 실장님이 나에게 직접 미안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자기와 함께 일화면서 아프게 되어 자기 잘못이라고. (맞기는 하는데 왜 나는 거기에서 약간 주춤했을까…100프로 다 실장님이 아니라 팀원의 부분도 있다는 부분의 나의 반응이었지만, 실장님이 느끼시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내 잘못도 있다는 반응으로 보였을 까 사뭇 걱정도 되었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실장님과 마지막 티타임은 나도 더 이상 남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지 최근 들어서 제일 편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해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서로 엮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어서였을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팀이나 업무, 팀원들에 대한 소견을 드렸다. 그리고 별도로 작성했던 그녀의 태도적 문제 들에 대한 추가 문서를 실장님에게 전달드려야 할지는 아직도 고민이 된다.  


저녁에는 이전 팀 팀원들과 팀장과 작은 환송회를 해 주었다. 감사하다.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도외준 사람들. (이상하게 아직 눈물은 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나에게, 지난 시간 동안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거나, 말동무를 해주거나, 같이 업무를 하면서 지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특정 팀원과의 못 풀어낸 감정의 시간들이 맘을 무겁게 한다. 막상 풀어야 할 숙제들을 끝내 풀지 못하고, 그럼에도 다시 그 시도에서 다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임에 애써 그 마음은 외면해 본다. 나 자신을 위해.


실장님도 별도 환송회를 말씀하시긴 했는데 나보고 결정하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불편해하실까 봐 그러 신 듯하다. 생각해 봐야지.


D-Day, my last day. 마지막 인사

비거 너무 많이 왔던 어제보다 나의 마지막 출근길은 비가 소강상태. 아침까지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만 그 후에는 노트북과 짐 정리를 끝으로 내가 할 일은 없다.


팀에서는 차주 월요일에 생일인 팀원과 단출한 생일파티를 했다. 함께 해 주지 못할까 미리 준비한 생일카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지시 사항들과 서면 인사를 적어 팀원들에게 보내고, 몇몇 팀장님들과 마지막 점심 식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역시나, 그 팀원은 말도 안 하고, 이번에는 온라인에 등록도 안 하고 집에 가버렸다. 아마 내 서면 인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싫다는 건지, 대면적으로 서로 다가갈 수 없는 불편한 그 마지막 순간을 이제는 그 팀원이 열심히 피하고 있다. 화를 내야 할지, 별도로 차를 마실 수도 있었겠지만, 다가오지 않는 팀원을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나의 힘든 몸과 마음을, 그녀는 한 번도 헤아리지 않았다. 서로 오롯이 서로의 상처만 보이는 상태. 다른 팀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별도로 밥을 먹자는 팀원도 있지만, 그녀는 어떠한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예전에 그녀를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두 차례의 회의에서 그녀가 나에게 갈기갈기 휘두른 감정의 날로 우리는 서로 너무 멀어졌다. 내가 그녀에게 받는 상처는 너무 컸고, 팀원의 잡도리에 당하는 팀장이 되었던 지난 몇 개월이 너무 힘들었고, 그 부분에서 누구의 잘못과 탓을 하려는 것도 아닌 이 상태와 감정. 해결하지 못한 이 마음이, 관계가 아쉽기는 하지만, 떠나야 하는 이유임에 마음을 다잡는다.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것이 때론 사람과의 관계이므로. 지금은 서로에게 헤어지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다.


오전에는 대표님과 부분장님과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대표님과 보낸 지난 5년이 넘는 시간. 뭐라고 더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이 조직에서 마케팅을 하기 힘들었다고 말씀드렸다. 외부 경력자에 의존하는 시스템, 그럼에도 마케팅 조직에 팀원은 많지만, 전문가가 많지 않은 부분. 대행사를 난무하게 쓰는 부분. 온라인 마케팅에서 그 퍼널을 다 볼 수 있는 시스템/인프라가 갖춰지기 어려운 부분. 실무적으로 여러 가지를 같이 마케팅하기 어려운 현장과 본사 구조. 이 모든 걸 깔끔하고 원활하게 전달드리지 못한 아쉬움. 다른 부분에서는 실장님의 마이크로매니징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말씀드리지 않았다.  


마지막 자리 정리와 함께 저녁 식사를 가기 전에 반 정도 남아있는 팀원들이 깜짝 꽃다발을 준비해 주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너무 감사했다. 지난 2-3주 그리고 일주일 동안도 불편했던 이 사무실에서의 시간들. 차마 팀원들과 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한 시간들일 수밖에 없는 헤어짐의 시간들, 떠나는 자의 외로움과 불편함 등이 공존했다. 그럼에도 좀 더 내 마음이 단단했다면, 더 버틴다고 무엇이 달라지고 내 삶이 행복했을까? 답은 아니었다. 이렇게 헤어져도 만날 인연은 만날 것이다. 고마웠다.


저녁에는 또 다른 미니 환송회에, 실장님이 초대되었다. 실장님은 내가 오전에 말한 저녁 약속에 본인을 초대하지 않아서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불편해할까 봐. 팀장들의 적극적인 초대로, 어색하지만, 그래도 실장님이 마지막 저녁을 함께 해 주시면서, 최대한 풀려고 하는 마음과 지금까지의 고생했던 시간들에 대해서, 금요일 저녁의 시간까지 내주시면서, 저녁과 차를 마시면서 함께 해주셔서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미운 정이던 고은 정이던 말이다.




비 오는 저녁. 버스를 타고 양손에는 사무실에서 정리한 짐을 싸들고, 마지막 몇 안 되는 팀원들에게 받은 꽃다발을 보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사를 드리지 못한 많은 사람들, 또 감사의 인사나 풀지 못한 애증의 팀원이 자꾸 머릿속에 남았다. 주말 동안 좀 더 정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7월 말까지는 퇴사가 아닌 상태이고, 팀원들의 결재도 해줘야 하니, 7월 말까지는 아직 오롯이 해방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몇 장의 사진과 멘트로 나의 5년 7개월간의 회사 생활을 페이스북에 올려보며 잠을 청해 보지만 뭔가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는 한 챕터를 또 마무리하려 한다.


낭중지추. 올해 일하면서 나를 표현한다며 실장님이 붙여주신 사자성어. 이 단어로 나의 언 1여 년간의 이 팀장 시간을 정리해 본다.


안녕, 나의 길고 길었던 퇴사 결정과 마지막 근무를 마치며. 매일 감사하고, 매일 행복하고, 매일 새로운 것, 안 해 본 것들을 해 보며 나를 위한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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