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른 인간을 설득시킬 수 없다. 그저 제안할 뿐이고 공유할 뿐이고 서로 다른 의견을 확인할 뿐이다. 설득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저 그렇다고 해'라고 상대방의 의사대로 행하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당신의 다른 생각과 나의 다른 생각은 각자의 환경과 상처 속에서 만들어져 공고히 지탱해 온 이념과 가치관이 되었으며,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생각과 행동을 바꿀 만한 증거나 나타나지 않는 한,
아! 내가 잘못생각했네요 바꿔야겠어요 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합의는 나는 짬뽕 너도 중국집 이런 일상적 언어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예술적인 소신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걸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혹은 상대의 이야기를 호응하는 것 정도이다. 당신의 의견을 인정하고 나의 의견을 인정하며 그것으로 끝. 협상으로 서로의 삶이 존중되며 가야한다. 서로의 생각과 사고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떤 순간에도 놓쳐서는 안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자신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가치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세상에 완전한 진리도 정의도 없다.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사회구조와 경제를 바라보고 판단할 뿐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환경에서 입장이란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만남을 유지해 나갈 수가 없다.
특히 혼삶을 살아온 인간은 혼자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왔기에, 독립적이면서 독선적일 수 있다는 경우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도 또한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인간과 인간이 만남이 매우 잘 합의되는 상황이 가능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렇다면 굉장한 행운을 만난 것일 뿐, 그것은 일반적이지 않고 평범한 상황이 아니며 굉장히 특별한 경우이다. 또한 평생 합의가 잘 될 것이라는 환상도 가져서는 안된다. 연애할때는 서로가 맞춰주는 것이 어렵지 않기에 합의가 쉬울 수 있지만 사랑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너무 좋아서 시작한 성향이 너무 싫은 성향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인간의 성향은 늘 동전의 양면을 갖는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합의되고 통일되고 일치되는 관계를 꿈꾸었던 환상을 깨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서로의 의견을 공유할 뿐이라는 것을 계속 주입시키고 있다. 상대의 의견에 대하여 나와 똑같기를 바라는 환상을 깨끗이 단념해야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라고 물으신다면 더 큰 것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소유하고 향유하는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무섭지도 않다. 세상이 아무리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살만해지는 마법이 일어나게 된다.
상대의 생각을 들을 때 상대의 입장을 들으며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자신의 생각의 지평을 확대하는 의미로 가져가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이해의 폭은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을 함으로써 더 훌륭해지는 이유는 사랑함으로써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한다는 것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화를 참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탄생할 때부터 사라지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 인간에게 가장 큰 주도권을 지고 지속되어 온 촌스러운 겨우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라는 기가 막힌 사실이다.
나는 계속 '우리는 공유할 뿐이다'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인간은 한 번의 생각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지금 이 순간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각자의 생각보다 사랑하는 이 특별한 관계유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한 작업이라고나 할까.
잘못된 나의 생각을 깨고 있는 중인 것이다.
심지어 내가 적대시했던 이념의 반대급부조차도 나는 게의치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염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나는 오류를 자주 범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에 돌아보니 그동안 어이없이 가치관과 사고방식, 행동양식과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정말 많은 사람과 이별을 하고 살아왔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관계보다 나의 생각, 내 고집, 아집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간들이 흐르고 흘러, 죽을 것만 같은 외로움을 겪고 나서야 인간에게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비로소 자각한다.
나는 풍부한 자기 개방성을 가진 인간이기를 소망한다. 편협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더욱더 훌륭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것은 신께서 정확히 내게 원하는 나의 차원이기도 하다. 더 이상 어떤 것들에 연연해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성실히 살아가는 인간이길 소망하고 있다.
성격을 바꾸기에 절대 안 되는 것은 없다. 인간은 다양하게 사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단지 서로 사랑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사랑은 정말 크고 위대함이 숨어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두려움엔 형벌이 있음이라"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사랑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위대하다. 고전스럽고 촌스럽지만 그 진부한 아날로그적 사랑이 인간이 가장 아끼는 목숨을 아깝지 않게 한다.
난 이 사랑이 매우 그리웠던 것이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 그를 위해 무엇도 아깝지 않는 내가 그리웠다. 나를 위해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사람의 그런 류의 사랑. 그를 위해 나의 자존심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랑을 나는 하고 싶었다.
그때에야 나는 비로소 인생의 아주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있는 아늑한 안정감을 소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런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사랑을 나는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 속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견디고,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들은 바로 그런 사랑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혼삶의 생이 아주 자유롭고 멋질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이런 사랑을 하며 혼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 삶을 위해 우리가 노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