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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삶의 사랑의 형태

by miel





사랑은 서로를 소유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가 어렵다. 물론 어느 족속은 일처 다부제와 일부다처제가 있다고 하지만 인권이 어느 정도 인식된 여느 나라에서나 통상적인 사회적 기준이 되었다. 또한 여전히 음지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애초에 나는 사랑에 대하여 연애에 대하여 환상적인 아름다운 내용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란 것은 없었다. 사랑도 결국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힘이 없기에 처음엔 호르몬에 의한 콩깍지의 지대한 역할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현실이 콩깍지를 이기게 된다. 단지 시간이 좀 더 가고 빨리 오고의 문제이다.






혼삶의 사랑의 형태는 어떻게 될까. 먼저는 결혼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이며 서로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특히 중년 혼삶러에게는 이 결혼은 감격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불가능한 어쩌면 포기했을 가정을 이루는 것과 자녀를 준비할 수 있는 데까지, 그야말로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혼은 수많은 어려움의 난관을 헤쳐나갈 각오를 해야 하므로 사랑의 힘이 굉장히 쎄야만 승리한다. 적당히 사랑해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한 형태이다. 먼저는 양가의 부모가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이과정이 생각보다 쉬울 수도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서로의 상황이 비슷하게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중년의 만남이다 보니 아무리 내려놓았다고 한들, 조금이라도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각오해야 한다. 또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경제적인 안정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사실 혼자 살 때는 대충 살 수 있다. 밥에 물 말아 김치만 먹고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귀찮아서기도 하지만 긴축재정으로 지낼 때는 그럴 때가 다반사이지 않는가. 그러나 사랑하는 서로가 앉아서 밥에 물 말아 김치만 먹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서로가 존재하므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자녀계획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서로의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한다. 그뿐인가 종교와 정치와 많은 각자의 가치관이 연애만 할 때는 상관없던 것이, 같은 집에서 살아가는 가정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것은 가정이라는 단위가 탄생되는 중차대한 사안인 것이다.


또한 결혼은 이별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서류와 재산분할 등등의 많은 문제가 올 수 있는 위험성 또한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미쳤네 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의 사랑과 그 상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왜 헌신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신다면 공동의 노동의 내용들이 있다.






서로의 부모들에게 어느 정도의 궁색한 효라도 행해야 하고, 제사나 행사에는 가사노동이 들어가며, 둘이 신혼살림을 산다고 하더라도 혼자 살 때 대충 살았던 스타일 데로 살 수는 없다. 또한 2세는 거의 여성이 많은 부분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으니 어찌 헌신하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심사숙고하고 마음의 결정과 현실적 대안이 어느 정도는 준비된 후에 결혼을 결정해야 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동거라는 편리한 형태로 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요즘은 살아보고 결혼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동거를 하다가 결혼하여 잘 사는 부부도 많이 보아왔다.






동거는 결혼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무게감은 덜하다. 평생 동거만 하고 살 수도 있을 것이고, 동거하면서 지내다가 결혼에 대한 준비가 되면 결혼까지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살다가 이혼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단지 동거에 대한 마음 자세, 계획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평생 동거만 하고 살겠다고 계획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경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동거 후 결혼을 계획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동거만 하고 살 것인지의 계획이 서로 맞아야 한다. 그렇다. 연애관계는 서로의 계획이 하나가 되어야 지속되는 것이다.






서로가 다르면 그 다름으로 서로가 갈등을 끊임없이 만들며 가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또한 동거는 결혼이 아니라서 상대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을 경우에 문제가 심각해진다. 결혼도 요즘에는 외도에 대한 특별한 법제도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합법적인 테두리에 있는 결혼상태에서는 사회적 통념상 인간인 이상 죄책감 때문에 라도 쉽게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동거는 어느 정도의 불안적 요소가 늘 작용하므로 완전한 안정감과 충만한 행복감이 조금 약한 편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온전한 내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누군가에게서 맘 편히 쉬며 고단함을 녹이고 재충전하고 싶어서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나는 동거라는 문화가 혼자라는 불안감을 종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각자 혼삶을 지속하면서 연애하는 삶의 형태가 있다. 이 경우는 서로 결혼할 수 없는 처지인 경우가 많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거나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이들이 혼삶러이지는 않지만 심리상태는 혼삶러와 같은 상태로 작용될 것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더욱 정서적 쉴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혼삶의 방식이 좋아서 연애만 하고 사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 든다. 가장 자기 성장을 극대화하면서, 더 이상 진지하거나 현실적이지 않는 판타지 같은 연애만 하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면에서 비현실적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일 것도 같다. 또한 그만큼 안정감은 약하고, 언제라도 양다리와 어장관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약한 지점이 있다.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여러분의 자유의지이다. 또한 자유의지에는 책임이 따른다. 각자의 상황과 조건이 있고 그 사람의 때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갖는 것에 대하여 나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평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의리를 지키기 위한 사랑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좋은 날만 있겠는가.


배신의 고통은 그 어떤 고통보다 더 타격감이 크다. 물론 사랑하다가 헤어짐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르다. 연애나 사랑에 대하여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만나야 한다. 나는 널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아 라는 말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거짓된 사랑이 넘쳐 나는 세상에 내 이 얄팍한 글이 무슨 힘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거짓된 사랑을 하는 사람 중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불쌍한 존재다. 또한 사랑을 할때 그 사람의 진실함은 반드시 검토하여야 한다. 아주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다가 콩깍지가 씌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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