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달라는 말은 초라하지 않아요.
분명 상추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 하였다. 그래서 혜림보다 수학을 훨씬 잘하는 경미가 집에 불러줘서 상추쌈에 저녁을 먹자 하였을 때 옳거니 하고 냉큼 따라갔다. 이후 푸릇푸릇한 상추쌈에 고기를 동그랗게 감싸 푸짐하게 먹고 왔는데, 이렇게 잠이 오지 않다니!
'잘 자야 하는데... 잘 자야 하는데... '
혜림은 불안과 싸우며 계속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혜림의 간절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만 갔다. 이대로라면 수능시험은 끝이다. 그렇다면 나의 그다음 행보는? 고졸로 취업을? 직업계고로 진학한 것도 아닌데 무얼 가지고 사회에 얼굴을 내민단 말인가. 아님 재수를? 학원비는 꿈도 꾸지 못하는데 무슨 돈으로? 혜림은 눈앞이 절로 깜깜해졌다. 이렇게 꼴딱 밤을 새면 정말 낙방인데... 혜림은 자신의 호흡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심장도 같이 조여 오는 듯했다. 참다못한 혜림은 안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엄마와 살을 맞대니 잠시 마음이 안정된 듯했다. 그러나 불안의 고통은 이내 다시 점화되었다. 고통은 오로지 혜림의 몫이었다.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 혜림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벽빛을 뚫고 집 앞의 작은 교회를 찾아갔다. 나무 의자가 몹시 차가웠고 머리는 희미한 안갯속을 걷는 듯했다. 고개를 떨군 채 '살려 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혜림의 입에서 가느다란 숨을 토해내듯 연신 나오고 있었다.
수능을 보는 날은 으레 껏 춥다 했지만 매서운 찬바람은 혜림의 몽롱한 의식은 뚫지 못했다. 혜림은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바로 세수를 하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었다. 몸이 무거웠기에 이젠 거꾸로 눈꺼풀조차 뜰 힘이 없었지만 버스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회복되기를 바랬다. 혜림은 그렇게 시험장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행히 플랭카드와 피켓을 들고 여기저기서 응원해 주는 후배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날개를 달았다. 이는 혜림의 마음을 따듯이 감싸 주었다.
예비 종이 울리고, 다시 종이 울리고 시험지와 OMR 답안지가 배부되었다. 사방에 깔린 긴장감이 혜림의 몸을 자동으로 얼어붙게 했다. 평소 제일 잘하는 과목인 언어영역이었는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읽어 내려가는 지문은 모두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했다. 그래도 중간중간 정신을 차려가며 답을 찾고자 안간힘을 썼다. 신기하게 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혜림 자신이 제대로 풀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낙심과 좌절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건 아니야... 망쳤어! 1교시부터 망한 거야.
취약했던 수학문제를 풀 때에는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풀 수 있는 문제만 끄적거리다 이해조차 되지 않는 문제는 남들이 그렇듯 혜림도 적당히 답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과학, 사회 탐구문제마저도 알쏭달쏭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긴장 속에 먹은 점심밥은 소화불량으로 더욱 식곤증을 불러일으켜서 아침 내내 느낀 몽롱함 속으로 혜림을 다시 헤매게 만들었다. 그래도 평소 훈련되어 온 성실과 인내심은 혜림으로 하여금 마지막 영어시험까지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게 했다. 종이 울림과 동시에 혜림은 시험장을 급히 빠져나왔다. 마음을 부여잡으려 했으나 한꺼번에 달려드는 허탈함과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참담하다'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3년 내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학교에서, 도서실에서 돌아오면 정말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혼자 힘으로 그렇게 씩씩거리며 해 왔는데... 너무하다. 너무하구나....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로 혜림은 하늘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자신의 몸을 가누어야 했다.
가난과 맞물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혜림이 심정적으로, 경제적으로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없다는 불안감은 수능 당일의 시험만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짓는 최종 심판대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다른 돌파구가 없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막막함이 혜림에겐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밤새 몸을 바르르 떨었고 이가 절로 다닥다닥 부딪히는 소리를 들어야 했을 만큼.
하지만 신이 혜림을 가엾게 보았던 걸까. 그 해의 수능은 불수능으로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평소의 모의고사 수능 때보다 훨씬 낮은 성적을 받았건만 혜림은 서울 근교의 OO대학 국문학과에 합격했다. 드디어 그토록 바랬던 대학생이 된 것이다! 혜림은 추가합격자를 발표하는 전화벨 앞에서, 또 학교 앞 대자보에 적힌 최종 합격자 명단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재차 확인하고서 그제야 한 움큼 눈물을 쏟아 내었다.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어둠의 늪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심정이었다.
250여만 원의 첫 입학금과 등록금은 우선 부모님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여기고, 혜림은 당장 필요한 한 주간의 교통비와 점심값을 재빨리 계산해 보았다. 무려 2만 원이나 되었다. 생활비조차 아버지께 어렵게 타는 엄마에게 매주 2만 원을 달라 하는 말을 어떻게 하지? 앞으론 어떻게든 장학금을 타야 하고,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그때까지만 한 학기까지만, 아빠에게 늘 초라한 모습으로 엄마가 손을 벌렸듯 상황을 보아가며 힘을 키울 때까지만 잠시 손을 내밀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혜림은 중2 때 엄마에게 했던 말이 문득 기억났다.
" 엄마..., 나 전교 2등 한 기념으로... 떡볶이 해 주면 안 돼? "
혜림은 전교순위를 웃도는 성적이 부모로 하여금 떡볶이 한 그릇과는 결코 비견될 수 없는 큰 기쁨의 선물이 됨을 알지 못했다. 빨갛고 말랑말랑한 맛난 떡볶이 한 그릇조차 엄마에게 부담 지우는 것을 꺼려했던,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너무도 착한 아이였다. 혜림의 엄마는 그런 딸을 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 애쓰며 공부하는 딸의 뒷모습을 늘 안쓰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난했지만... 매일매일 갖가지 소박한 반찬들로 딸의 도시락을 정성껏 싸서 딸의 가냘픈 어깨에 지워주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삶의 질곡으로 거칠어지고 투박해진 성격 탓에 입으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눈물 어린 사랑을 혜림의 엄마는 나름 도시락 안에 꾹꾹 눌러 담아왔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혜림에게는 삶의 전부가 되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부모님께 이렇게 손을 내밀어 보겠다 하는 것은.... 혜림으로서도 대단히 큰 용기였다. 인생의 큰 전환점 앞에 혜림도 그렇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초라한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