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던지는 그물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이따금 한강을 걸어서 건너곤 한다. 한강의 녹지를 지나 용산 쪽으로 접어들고, 무채색 미군 캠프 풍경이 눈에 익을 때쯤, 길가에 ‘차별법 철폐 반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에이즈 물러가라!’
마치 문장 속 오탈자를 발견한 것처럼 그 문구가 눈에 걸렸다. 저걸 붙인 이들은 누구일까. 짐작되는 직업들을 떠올리다 그만두었다. 정작 중요한 건, 그들이 거리 한복판에서 혐오와 불편함을 대놓고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인의 정체성에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고, 난 그들이 불편했다.
"너 운동권이었지?"
군 병원에서 복무하던 시절, 오후 3시면 어디론가 사라지던 병리과장에게 자리를 지켜달라고 말했다가 들은 말이었다. 군에서 외래와 신체 검사 업무를 담당하던 나는 종종 오후 늦게 들어오는 신체검사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군의관들을 찾아다녔는데, 3시 이후면 그는 골프를 치러 나가 자리에 없곤 했다.
운동권이라는 말의 명확한 정의가 무엇이든, 나는 거기엔 속하지 않았다. 애초에 운동권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순간 ‘아니다’ 라고 말하려 했지만, 목이 막혔다.
"네 운동권이었습니다."
나는 중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는 얼굴이 붉어져 더듬거리더니,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내가 운동권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난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던진 부정적인 함의를 그대로 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그와 나의 긴장은 계속되었지만, 군대라는 곳에선 다행히 날라리 군의관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몇 년 전, 부서장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너 혹시... 그건가? 아니지?"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는 나를 향해 그는 넌지시 물었다. 평소에는 관심 없던 사적인 질문을, 면담 때가 되면 마치 서류의 빈칸을 채우듯 꺼내 놓곤 했다. 10년 넘게 함께 일한 선배였지만, 그 순간 나는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그가 말한 '그거' - 아마도 게이 - 라는 의심 자체가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그가 던진 혐오의 논리를 인정하고 누군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장의 모면을 위해 투박한 그물에서 허둥지둥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난 대답 대신 그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짧은 정적의 순간, 나의 마음은 그의 무지함에 대한 연민과 나의 존엄을 지키려는 결심 사이를 오갔다. 누군가의 정체성은 증명되거나 해명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아니 너무도 쉽게 타인의 삶에 기준을 세우고 물음을 던진다. ‘그럴 줄 알았어’ 혹은 ‘설마, 그럴 리 없어’ 같은 말들 뒤에는, 진심으로 알려고 하기보다 얼른 단정 짓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군대와 회사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누군가를 부정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그들의 수준 낮은 논리에 말려들지 않으려 어떤 선택을 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옳았던 건 아니다. 그 당시 나의 거짓말과 침묵은 그들이 던진 정체성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난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그 정체성에 해당됐다면, 군대에서 운동권이거나, 직장에서 게이였다면,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증명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을까. 어떤 사회가, 누군가를 부정하거나 나를 부정해야만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들의 조잡한 이해의 그물에 걸려 누군가 배제되는 사회라면, 잘못된 건 정체성이 아니라 그 사회와 그 구성원들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겪은 불편함의 순간들은, 단지 나의 예민함이나 사회성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미리 그어 놓은 '정상'의 경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서늘한 감 촉이었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과 차별의 감각들이 모여, 어떤 시대에는 거대한 슬픔의 지도를 그리기도 한다
나는 바래 본다. 나의 불편함이 나만의 경험에 머물지 않기를. 부정당했던 이름들이 더는 숨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 서지 않기를.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받아들여지는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