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다크 투어

섬의 기억을 걷다.

by 김정민

몇 년 전, 갑상선암이 재발해 전절제 수술을 받은 뒤,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마치고 미량이지만 몸에 남은 방사선을 우려해 며칠 격리된 생활을 권고 받았고, 곧장 제주도로 향했다. 10 여 년 전 처음 갑상선 암 반절제 수술을 받았고, 완치됐다고 믿던 무렵 재발된 것이었다. 처음 진단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질문은 오래 머물렀다. 첫 수술에서 성대신경이 손상됐는지, 좋아하던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것도, 한때 갑상선암 수술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가 다시 줄었다는 뉴스를 볼 때도, 설명할 수 없는 의문과 좌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 제주도 방문은 세 번 째였다. 앞선 여행들이 인기 관광지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로 하기 위해 올레길과 오름 위주로 걸을 생각이었다.


4·3 평화공원


그러던 중, 4·3 평화공원을 찾았다. 4·3 사건의 개요는 알고 있었지만, 단지 ‘근대사 속의 안타까운 비극’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역사를 제대로 마음에 담아보고 싶었다. 어쩌면 내 안의 어둠이 또 다른 어둠의 기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4·3 평화기념관에서 전시물과 상영물을 관람하고, 위령탑과 묘역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낭만적인 휴양지’라는 이미지 아래 제주 전체가 피와 억압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 제주도민 10명 중 1명이 정부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다. ‘빨갱이 척결’이라는 이름아래, 그 진실은 오랫동안 왜곡되고 억눌렸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복권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그 사건을 북한과 연결 지어 폄훼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제주도는 그렇게, 반세기 넘게 눈물조차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섬이었다. 그 위에 덧씌워진 낭만은, 슬픔을 감추려는 화장처럼 보였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본격적인 다크 투어에 나서게 되었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와 평화의 소녀상


‘알뜨르’는 제주어로 ‘아래 벌판’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이곳을 중일전쟁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고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해 군용 비행장을 건설했다. 지금은 농지가 된 그 비행장 한편에, 격납고들이 유적처럼 서 있다. 그 풍경 앞에서, 해군기지 건설 등으로 제주도를 반복해서 군사 요충지로 삼아온 현대사까지 자연스레 떠올랐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그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반복의 고통 또한 되풀이된다. 위정자들은, 그 무게를 알고는 있을까.


격납고를 지나쳐 멀리 거대한 소녀상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이끌리듯 그 앞으로 향했다. 대나무로 만든 그 소녀의 어깨 위에는 파랑새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거창한 구호로의 ‘평화’가 아닌, 그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자유일 것이다. 그 단순한 삶마저 빼앗기는 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송악산 외륜 동굴진지 / 섯알오름 고사포진지

송악산은 제주도 서남쪽에 위치한 올레길 코스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산책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깊숙이 숨어있는 동굴 진지를 찾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거의 길도 없는 숲을 지나자, 일제가 미국 침공에 대비해 역시 제주도민을 동원해 만든 땅굴 진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4·3 사건 당시엔 이곳에 숨어든 도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참을 더 걷다 보면 고사포 진지가 나온다. 근처에는 6·25 전쟁 때 ‘예비검속’으로 양민이 학살, 매장된 자리도 있다. 당시 252 명이 두 차례에 걸쳐 학살당했다고 한다. 이처럼 어두운 역사가 반복된 현장에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자신의 땅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했을 뿐인 사람들에게 역사는, 공권력, 그리고 우리의 무지는 얼마나 잔혹했던가.


사실, 비단 제주만이 아니다. 한반도 전체가 이런 비극과 치욕을 되풀이해 왔다. 눈이 덮이고, 단풍이 물들 때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곳곳에서, 누군가는 쓰러지고, 누군가는 그 이름을 지우려 했으리라.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수술의 상처는 곧 아물었고, 감정의 동요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만난 오름과 한라산보다 더 오래 남은 건, 내 작은 상처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그리고 아직도 기억되기를 기다리는 어떤 상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