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광장은 열려있는가?

코엔지역 유랑기

by 김정민

도쿄 서쪽 끝, 신주쿠에서 전철로 10 분 남짓. 코엔지(高円寺)는 도쿄 한복판의 고층 빌딩이나 화려한 상업지구와는 결이 다른 동네다. 레트로한 상점가와 중고 레코드 가게, 헌 옷가게, 소극장, 이름 모를 바들이 골목마다 얽히고설켜 있다. 관광객보다 동네 사람들이 더 많고, 정돈된 대신 흐트러져 있지만 그 흐트러짐 속에는 ‘허용된 자유’의 공기가 감돈다. 코엔지는 늘 약간 덜 정리된 곳, 그래서 더 살아 있는 동네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나는 이곳에 숙소를 잡았다. 코엔지역과 붙어 있는 내 호텔 방에서는 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광장이라기보다 공터에 가깝지만, 밤이면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고, 맥주를 마시고, 노래하며 웃고 떠든다. 처음 묵었을 땐 자정 넘도록 이어지는 고성방가가 불만이었다. 다음날 아침이면 빈 캔이며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일본스러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왜 나는 다시 이곳을 선택했을까.


한국엔 '태생적 광장'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드물다. 서울은 종로나 시청 앞 도로가 경찰에 의해 막혀야 비로소 광장이 생긴다. 그것은 사전에 '신고'된, '목적'을 가진 광장이다. 때론 공연으로, 때론 집회로, 때론 투쟁으로. 그저 '머무름'이나 순수한 '카타르시스'의 공간은 아니다. 나는 한국의 광장 문화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그 공간에 꾸준히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그저 작은 아쉬움을 말하고 싶다. 한국의 광장은 정치적으로는 성숙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피곤하고 긴장된 공간이다. ‘성숙한', ‘민주시민다운’ 매너. 등산객에게도 행동 규범이 있듯, 광장조차 우리는 '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예의를 요구받는다. 물론 고성을 지르거나 돌출행동을 하는 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우리의 광장이 누구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성과 사회적인 감각이 광장까지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여전히 광장을 허가 받아 ‘사용’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한, 그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코엔지역 앞의 공터는 다르다. 목적도, 방향성도 없다. 존재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의미 없음’이 허용된 공간이다. 낮에는 서툰 공연과 춤이 펼쳐지고, 어떤 날은 신진 정치인이 가두연설을 하기도 한다. 밤이 깊어지면 청년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한다. 누군가는 삼삼오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떤다. 그 사이엔 제재도 룰도 없다. 그저 공존하는 사람들이 밤의 광장을 채울 뿐이다. 한국과는 다른, 일상의 난장성이 허락된 공간.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존재해도 괜찮다’는 감각이 주는 부러움. 어찌 보면 서울 홍대나 연남동 근처 어디와 닮았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곳은 관광지의 북적임과 정돈된 버스킹, SNS에 박제될 예쁜 공간이라는 이미지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문화가 한국에 없었던 건 아니다. 90년대 대학은 학문이나 취업의 공간이기 이전에, 젊음을 향유하는 장소였다. 동아리방 앞이나 그 어느 곳이라도 우리의 광장이었다. 누군가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무대였고, 밤공기 속에서 깡소주와 새우깡만으로 세상을 논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스펙이었다. 도서관 앞은 집회가 시작되는 곳이었고 학생회관 앞은 서툰 길거리 공연으로 항상 시끌벅적 했다. 그곳엔 허가도, 통제도, 목적도 없었다. 그저 넘치는 시간과 서툰 자유가 광장을 채울 뿐이었다. 하지만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경쟁적으로 돈 들인 건물들과 그럴듯한 광장이 조성되면서 그 흥청거림의 자유는 사라졌다. 스팩과 경쟁이 캠퍼스의 공기를 지배하면서 학생들은 더 이상 광장의 주인이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예비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이제 학교의 광장은 스터디 카페와 다르지 않다. 돈을 내거나 허락을 받아 ‘대여’하는 사설 공간이 되었고, 그 안엔 대여와 사용의 룰이 있다.


물론, 이 풍경이 일본 전역의 문화라고 단정할 순 없다. 또 한국에도 예외적인 공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예외를 따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광장’을 어떻게 인식하는 가다. 우리의 광장은 '문화'를 자생시키는 토양이 되고 있는지. '문화'는 질서 정연하고 단정하며 정돈된 무언가여야 한다는 인식, '광장'은 공공의 질서가 유지되고, 깨끗한 시민의식이 지켜져야 한다는 인식. 그런 빡빡한 사고들이 광장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결국 우리가 넘지 못하는 것은 물리적인 울타리가 아니라, '정상성'과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경계다. 이 경계 안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은 '무질서'로 낙인 찍히기 쉽다. ‘문화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으려면 광장은 단정함과 질서의 상징만이 아니라 자생적인 문화가 싹트는 토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도쿄는 관광 회복과 내수 소비 확대 등으로 활기찬 분위기다 경제 회복, 사회적 허용, 시민 감각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물론,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더 ‘빡빡한’ 면도 분명히 있다. 어쩌면 그 빡빡함이, 밤이면 청년들을 거리로 광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의 광장에서 우리의 청년들이 조금 더 자연스러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무질서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난장의 광장’을 기꺼이 허락하는 열린 사회를 조심스래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