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닮은 마을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네. 땅을 두부 자르듯 나눠 놓은 마을이 아니라, 진짜 마을이요.
펜션마을. 오랫동안 가져온 꿈입니다.
한 동네에서 펜션을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 마음을 모았다.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펜션들을 한 울타리에 모아 「마을」을 만들고 싶어했다. 「마을」은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상상하기도 쉽다. 동네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가는 골목들과 그 사이에 교묘하게 놓아진 작은 마당들, 그리고 그 속에서 교감하는 이웃들. 여러 두리뭉실한 이미지들이 모여서 마을은 꽤 명료하게 정의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마을을 실제로 만나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고, 하물며 「펜션-마을」은 더더욱 그러하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펜션의 「마을」과 마을 안의 「펜션」을 다시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했다.
마을이 들어설 자리는 남쪽으로 북한강을 마주보고, 북쪽으로 축령산이 지나간다. 높은 언덕[大城]이라는 의미가 이어져 내려온 마을. 대성리[大成里]. 사람들에게는 MT-촌으로 더 익숙하다.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대성리역에 채 닿기 전부터 열차 바닥에 둘러앉아 마른오징어를 씹으며 소주와 맥주를 마셨던 때부터,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경춘선 전철을 타고 기타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내리는 오늘까지도 대성리는 여전히 교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설렘을 주는 곳이다.
최일남의 소설 속 『서울사람들』이 찾아갔던 그 시골 마을처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풍경을 마주한 사람들과 이 낯선 객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일을 업으로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만남은 대성리만의 또 다른 정체성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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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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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을 요구하는 일은 건축가에게 무척 당혹스럽고, 피하고 싶은 작업이다. 설계라는 직무 속의 막연한 창작 욕구를 차치하더라도, 모방이라는 단어가 벌써 품어놓은 부정적 인식이 곧바로 거부감을 일으킨다. 심지어 그 모방의 주체가 우리와 문화가 다른 외국의 어느 마을이라니.? 그 곤욕과 모면에 핑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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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먼저, 그 마을에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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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안달루시아 지역의 말라가[M?laga] 주[州]에 가면 한국에도 꽤 알려진 풍경의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얀 건물벽에 지중해를 향해 듬성듬성 박혀있는 창문들, 잘 빚어 올린 붉은색 기와, 채도 높은 원색의 대문들, 색색의 꽃을 품은 파란 화분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파란 하늘. 미하스[Mijas], 프리힐리아나[Frigiliana]. 이름도 예쁜 마을들이다. 환히 밝은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에서는 이방인들과 주민들의 경쾌하고 여유로운 동선들이 만나고 지나감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건넛집과 줄을 이어 골목 위로 널어놓은 빨래 아래, 무심하게 놓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산책한다. 산비탈을 덮은 마을 사이사이의 계단들을 오르내리며 마을의 일상이 익숙해질 즈음, 붉어진 해는 교회지붕 뒤로 넘어가고 제법 어두워진 골목에 가로등이 켜진다. 한낮에는 컴컴하게 붙어 있던 창문들에서도 노오란 조명이 은은하게 새어 나온다. 그렇게 마을은 천연덕스럽게 막을 바꾼다. 골목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공간을 간신히 만들어가며 테이블과 의자들이 부산하게 펼쳐지고, 사람들이 그 자리를 북적거리며 채워간다. 걸쭉한 술을 몇 잔 걸친 뒤 낯선 노랫가락과 기타선율을 따라 가보면 공연이 한창인 작은 공원과 이어진다. 무작정 찾아가본 그 곳의 마을은 정말 진-한 마을이었다. 답사의 목적이 무색하게 핑계가 해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스페인 마을들의 「집 밖」은 우리 스스로가 그동안 지나치게 요구된 사회성을 볼모로 무시하고
추방한,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그려내는 마을의 모습과 꼭 닮아있다. 그것은 문화적으로도, 건축적으로도 우리가 그토록 되찾고 싶어 했던 「마을의 골목들과 광장(마당)들」이고, 대성리 펜션-마을의 해답이기도 하다.
『라스블랑카스[Las_Blancas]』 는 20채 가량의 많지 않은 집들을 마을(많은 골목과 그 사이 작은 광장들)로 구성하기 위해 한 채를 여러 동으로 나누어 배치한다. 갈라진 덩어리[mass] 들 사이로 좁은 계단, 경사로, 중정[patio], 테라스들이 생기고 다시 그 위로 다리가 지나가며 마을의 흐름을 만든다. 길게 이어진 난간과 무심하게 툭툭 솟은 굴뚝들이 생기를 더하고, 바닥에 곱게 깔려진 벽돌은 따스한 하늘빛을 그대로 머금는다.
북한강 기슭이 성벽처럼 이어져 있는 대성리 깊숙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펜션들, 카페, 식당, 그리고 손바닥만한 상점들)의 파사드[Facade] 는 높게 열려있는 하늘과 만나 마을의 ‘집 밖’의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그 곳은 마을 안의 마을이고, 집 밖의 집이다. 그리고 교외로 나와 한가로이 즐기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집을 내어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을의 가장 깊고 진-한 공간이다.
Architects : 가로헌 건축사무소
Architects in Charge : Lee sangwoo
Interior : Starsis – Hwang changrog
Location : 185-1, Daeseong-ri, Cheongpyeong-myeon, Gapyeong-gun, Gyeonggi-do, Republic of Korea
Site Area : 8,300 sqm
Building Area: 1,650 sqm
Construction : Starsis
Photographer : Hong Seokgyu
Project Year : 2017
Article : Lee sang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