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내가 사는 곳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만 키워보고 강아지는 경험이 없어서 일단 고양이 담당으로 시작했고, 최근에는 소동물(토끼, 기니피그, 각종 설치류 등등) 케어에 대한 오리엔테이션도 받았다. 나중엔 강아지도 케어하고 싶어서 교육 일정이 잡히길 기다리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동물을 키워보지도 않았고 보호소에 가본 적도 없어서한국의 보호소 환경이 어떤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한국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미국의 보호소에서 느낀 것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미국 내에서도 물론 보호소마다 환경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내가 다니는 보호소는 상대적으로 재정 상황이 좋고 동물들도 입양이 꽤 잘 되는 편이다. 다른 보호소에 가보지 않았어도 이걸 알 수가 있었던 게, 실제로 셸터 창고에 가 보면 양질의 사료가 정말 많이 보관되어 있고 외부로 전달-저소득층에게 기부 또는 다른 지역의 셸터로 전달-되는 양도 많다고 했다. 보호소 건물 자체도 굉장히 큰 편이고 개와 고양이 구역이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등 여러모로 신경써서 지어진 건물인 게 느껴진다. 보호소에 상주하는 수의사가 한 분 계실 뿐더러 중성화 수술을 포함해 간단한 수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이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입양이 될 때까지 데리고 있으며 안락사는 하지 않는다. 최장기간을 기록한 동물은 200일을 넘겨 입양된 고양이라고 했다.
맨 처음 봉사자 교육을 받은 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를 각별히 주의하란 거였다. 단어에서 바로 딱 어떤 개념인지 알 수 있었다. 보호소의 동물들을 돌보면서 느끼는 연민과 동정심이 쌓여서 생기는 피로감, 우울감, 무력감 등을 뜻하는 말이다.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매일같이 새로 들어오는 버려지고 다친 동물, 그들을 정말 별 거 아닌 이유로 파양하는 인간, 그 가운데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도 궁극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마리가 나가면 한 마리가 들어오는- 환경. 봉사자 코디네이터 본인도 이 연민 피로 때문에 거의 3년을 일을 못하고 쉬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특히 아무런 댓가 없이 동물에 대한 사랑과 열정 하나로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연민 피로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 쉽다고 했다. 모든 동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마음을 많이 내어주는만큼 그에 상응하는 좌절감도 너무 크다는 거다.
연민 피로의 단계를 이렇게 소개했다. 열정열정!!! → 과민해짐 → 물러나기 → 좀비!!!
풀어서 말하자면, 처음에 풀 파워로 공감하고 흥분하고 모든 일을 다 해내려고 달려들었다가, 아 이거 내가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른데? 하면서 이게 맞아? 하면서 좀 시니컬해지고, 그 다음에는 점점 실망과 좌절이 커지고 내가 제대로 안 해서 이런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 단계를 지나서는 더 이상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며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분노, 후회, 등의 부정적 감정에 빠져버린다. 요즘 흔히 말하는 '번아웃' 증상과 비슷하다. 이 증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유도 모른 채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받을 수 있다면서 연민 피로가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러려면 동물들과의 경계가 확실해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봐야한다고도 했다. 보호소의 동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되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과하게 몰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계속 관찰하라고.
코디네이터가 그날 함께 교육받던 예비 봉사자들 모두에게 물었다. 평소에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때 뭘 하냐고.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대답을 받아냈다. 그게 뭐가 됐든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꼭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쓰라고 했다. 또 한 가지 당부했던 것은, 한 달치 봉사계획을 미리 잡아주지 말라는 거였다. (봉사 예약을 모바일 앱으로 한다.) 처음 온 봉사자들은 대개 의욕에 넘쳐서 일주일에 몇 번씩 봉사 일정을 잡곤 하는데 그게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봉사 일정은 매번 그때 그때, 그날의 봉사활동이 다 끝나고 나서 천천히 잡으라고. 그래야 그 사이에 자신이 괜찮은지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아직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슴 아픈 일을 별로 겪지 않기도 했지만 초반에 중요한 얘기를 잘 들은덕분에,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잘 쉬고 또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