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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제니 Feb 15. 2024

고양이한테 책을 읽어주라고요?

미국의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배우고 느낀 것 #2

   이 동물 보호소에 처음 갔던 건 작년 10월 말이었다. 아직 정규 봉사자가 되기 전, 1일 봉사를 하러 갔었다. 그날 참여한 건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30분 동안 고양이 옆에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거였다. 이름하여 "Read to Pets".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보호소에 갔다. 첫 방문이었던 터라 보호소 분위기나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시간 맞춰 가면 직원들이 봉사자를 두 팔 벌려 반겨주고 친절히 안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다들 자기 할 일 하느라 바빴고 내겐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쭈뼛쭈뼛 카운터로 가서 "저.. 고양이한테 책 읽어주러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다. 고양이에게 책을 읽어주다니...


   그러자 직원이 활짝 웃으면서 따라오라며 고양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줬다. 이 보호소의 고양이들은 각기 다른 세 종류의 공간에서 머무는데, 흔히 떠올릴리는 닭장 스타일의 케이지(물론 닭장보단 훨씬 크다), 이동식 공중화장실 크기의 작은 방 한 칸, 그리고 사람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큰 방, 이렇게 세 곳에 나눠져 있다. 나는 아주 순한 고양이가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들어가란다. 30분 동안 고양이한테 책 읽어주고 나와서 집에 가면 된단다.


   '으???'


   홈페이지에 'Read to Pets'는 사전 교육이나 경험이 전혀 필요 없는 활동이라고 나와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긴 했지만.. 이게 뭐람? 그게 다예요? 너무 황당해서 재차 물었다. "제가 이 안에서 고양이한테 진짜로 책을 읽어주는 거예요? 어린아이한테 읽어주듯이요??" 그렇단다. 아마도 내 벙 찐 표정에서 드러난 당혹감을 직원이 읽은 모양이다. 몇 마디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여기 있는 고양이들은 최종적으로 입양되어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화를 하는 시간이 필수적이에요. 그 사회화 과정에는 껴안고 만지고 비비고 하는 등의 접촉도 있지만 사람의 제스처, 행동, 목소리를 고양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부분도 포함돼요. 그래서 이렇게 책을 읽어줌으로써 고양이에게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지도록 들려주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그래서 그냥 놀아주는 것 말고 이렇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이 있는 거랍니다."


   아하..!!


  그렇게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양이들은 여러 경로로 이 보호소에 도착하는데 특히 구조된 길고양이의 경우엔 사람과의 사회화가 필수적이고 그중에서도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스톨(stall)에 들어가서 안쪽에서 문을 잠근 후 작은 의자에 앉아서 책을 꺼냈다. 이런 1일 봉사에 할당(?)되는 고양이들은 주의할 점이 거의 없는 유순한 고양이들이다. 내가 그 날 만난 아이는 Roo였다. 루는 엄청나게 큰 고양이였다. 여태껏 본 고양이 중에 단연코 가장 큰 녀석이었다. 살이 많이 찐 뚱냥이는 더러 봤지만 이렇게 기골이 장대한 녀석은 처음 봤다.


   루는 내가 스톨 안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부터 이미 온몸으로 나를 반겼다. 의자에 앉아서 루의 코 끝에 내 주먹을 대고 손인사를 하고 등덜미를 스윽 훑자 바로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손으론 책을 들고 중얼중얼 읽으면서 한 손으론 계속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도 보고 책도 읽으려고 했는데 정작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활자가 내 눈과 입을 거쳐 소리로 나오긴 했지만 다른 모든 신경은 루를 향해 있었다.


   내 목소리가 루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루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 옆에 있는 방석에 온 힘을 다해 정성껏 꾹꾹이도 하고, 슬로우 피더에 남아있는 건사료 몇 알을 꺼내 먹으려고 아등바등 애도 쓰고, 그러다 내 발치에 벌러덩 드러눕기도 했다. 루는 끊임없이 나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냄새를 맡고 머리로 박치기를 하고 골골거리고 제 몸으로 내 몸을 쓸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생각보다 좁은 스톨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을 때는 여기서 30분이나 있으라니 답답해서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온 정신을 루에게 뺏긴 채로 책을 읽어주다 보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조금만 더.. 하며 5분 정도 눌러앉아 있다가 이러단 영영 못 떠날 것 같아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일어섰다. 처음 만난 내게도 너무 다정했던 빅보이 루. 가장 흔한 작별인사인 '다음에 또 보자' 대신 "루야,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염원을 담아 인사하고 떠났다.


나의 첫 번째 보호소 냥, 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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