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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제니 Mar 15. 2024

책을 읽어줬던 고양이 루가 파양되어 돌아왔다.

미국의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배우고 느낀 것 #3

동물보호소에서의 첫 봉사활동으로 고양이 루에게 책을 읽어준지 세 달이 조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다정했던 빅 보이 루는 그 날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터라 좋은 집에 입양되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스톨(stall)에 붙어 있는 낯익은 이름표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보호소의 동물들 이름표에는 어떻게 보호소에 오게 되었는지 그 경위가 간단히 적혀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것은

As a RETURN : 파양
As a TRANSFER : 다른 보호소에서 이송
As a CONFISCATE : 주인에게서 몰수
As a STRAY : 길에서 구조
As a OWNER SURRENDER : 주인이 보호소에 양도

이렇게 다섯 가지였다.

다시 만난 루의 이름표에는 As a RETURN 이라고 적혀 있었다. 파양되어 돌아온 거다. 마음이 미어졌다.
왜. 도대체 왜..

스톨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루는 나를 기억이라도 하듯 정수리 박치기를 하면서 반겨주었다. 루는 그 후로 몇 주나 더 보호소에 있었다. 나이도 6살에, 덩치는 산만 해서 누가 봐도 식비가 제법 많이 들 것 같아보이는 아이.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기회가 되어 보호소 직원에게 루가 왜 파양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밥 달라고 너무 많이 울어서 돌려보냈대"라고 했다. 나는 두 가지에 충격을 받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파양했다고?' 그리고, '그걸 이렇게 발랄하게 말한다고?'.
심지어 루가 배고플 때마다 자꾸 울고 그 집에 원래부터 있던 다른 고양이랑 계속 마찰이 생겨서 한동안 화장실에 가둬놓았단다. 나는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울상이 되어 있었는데, 직원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해 보였다.
'나의 안타까움을 너도 어서 공감하란 말야!'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어떻게 그런 이유로 파양할 수가 있나요.."라고 말하자, 직원이 어깨를 으쓱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뭐..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 우리한테는 사람이 어땠는지보다 어떻게 해야 동물이 제일 행복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니까."

아.. 그렇지.
맞아.
우리가, 내가, 보호소에서 일하는 이유는 사람을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었지. 이 작은 생명체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 소중한 존재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였다.

직원이 화를 내거나 동요하지 않은 이유도 물론 여러 가지일 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세 달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파양된 케이스를 봤다. 일주일에 한 번 두어 시간 정도, 그것도 고양이만 돌보는데도. 그러니 이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 고양이, 다른 소동물까지 합치면, 그리고 수 년의 시간이 쌓이면, 파양된 동물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떠났던 아이가 보호소로 돌아올 때마다 지금의 나처럼 슬퍼하고 화를 내면 마음이 남아날 수가 없을 터였다. 감정적 거리두기가 이래서 필요하구나.

동물들에게 너무 애착을 갖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우리 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는 미국이라고 해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이상한 사람은 여기에도 많다. 그럴 환경이 안 되는데 동물을 계속 데려가서 호더하는 사람, 가볍게 입양하고 쉽게 파양하는 사람, 반려동물이랑 별개로 그냥 죄를 짓는 사람, 오만 사람이 다 있어서 보호소에서 일하면서 그 다양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미움과 분노를 느끼면 그것 또한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일 거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그 직원도 동물보호소에서 갓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이런 일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크게 마음쓰고, 그러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비슷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조금은 무뎌졌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대노하면 인류애가 금세 바닥나버릴 것 같기도 하고.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덤덤했던 직원의 태도는 아마 그런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나왔던 게 아닐까- 싶었다. 돌아온 루는 내게 안쓰러움과 연민 외에도 많은 걸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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