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끼고 배운 것 #8
8주 동안의 임시보호가 끝났다. 태어난 지 딱 하루 된 땅콩같은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와 젖이 퉁퉁 불어있던 어미 고양이. 이 여섯 마리 고양이들과 작은 방에서 울고 웃으며 두 달을 보냈다.
지금 키우고 있는 두 마리는 모두 성묘일 때 입양을 했던 터라 늘 아기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셋째 고양이를 입양할 형편은 못 되어 임시보호를 해보기로 결정한 거였다. 다분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동물보호소에서는 임보가 필요한 동물들을 임보 봉사자들에게 위탁하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막 출산한 어미 고양이와 다섯 마리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아기 고양이 양육은 전적으로 어미 고양이가 다 했다. (아기 고양이들이 뛰기 시작한 후부터는 내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임보 초반에 나와 남편의 역할은 단 하나, 매일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 고양이를 건강히 잘 키우는 거여서 밥을 항상 산더미 같이 쌓아 두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과는 접촉하면 안 되기에, 이 여섯 마리는 남편과 내 책상이 있는 작은 방에서만 지냈다.
어미와 아기 고양이 여섯 마리를 임보 한다고 하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지인들이 모두 물었다. 그 중 누구를 입양할 거냐고.
"아무도 안 할 건데?"
모두들 놀랐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두고 보라고. 두 달 후에는 맘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작은 천사 다섯 마리와 헌신적인 모성애를 보여준 어미 고양이와 함께 보낸 두 달은 도저히 글 하나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우린 정말이지, 울고 웃으며 그리고 함께 성장하며 8주를 보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8주가 흐른 뒤 나와 남편은 여섯 마리 모두 보호소에 돌려보냈다. 처음부터 보호소에서 위탁받아 임보를 한 거였기 때문에 임보 기간이 끝난 후에는 보호소로 돌아가 중성화 수술을 받고, 다른 고양이들처럼 입양 공고를 내고 입양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물론 개중에 두고 두고 눈에 밟힌 녀석이 있었고 친구들을 만나면 "나 정말 얘 하나만 입양할까?" 라면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평생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으나 진짜로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별이 가까워질수록 지인들도 그 아이를 정말 입양할 거냐고 물었고, 그때부터는 아쉽지만 형편상 안 되겠노라고 대답했다.
임시보호 기록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시간 차는 있었지만 랜선으로 애정을 담아 아기 고양이들을 함께 키워주신 구독자들이 '그 아이는 데리고 가셔야죠~'라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임보를 결정했던 순간부터, 눈물 콧물 줄줄 흘리고 오열하면서 아이들과 이별할 때까지 '내가 입양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단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다들 어쩜 그리 단호할 수가 있냐고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목적과 경계가 뚜렷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단호한 건가?)
한때는 나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는데 어떻게 그냥 보낼 수가 있지?' 인터넷을 통해 사비를 털어 구조 활동을 하고 동물권 증진을 위해 온몸을 던져 운동하는 활동가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나는 동물을 덜 사랑하는 사람인가? 고양이를 자식처럼 키우고 온갖 크고 작은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여전히 육식을 하는 나는 위선적인 사람인가??
아니다.
나는 나의 한계 안에서 내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고 다양한 사람과 동물들을 만나면서 여러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내 나름의 중심이 확립되었다.
내가 모든 동물을 구할 수는 없다.
이건 내 개인적인 신념이기도 하고, 봉사활동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배운 것의 연장이기도 하다. 오리엔테이션을 해 준 코디네이터가 '연민 피로'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봉사자들에게 부디 자신을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 했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동물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리면 더 이상 내어줄 에너지가 남지 않게 된다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계속 관찰하면서 힘들거나 좌절했을 때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고. 그래야 더 오래 동물을 돌볼 수 있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인류애가 파사삭 박살나는 상황도 많이 겪지만, 반대로 인류애가 차오르다 못해 콸콸 넘쳐나는 장면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나 말고도 이 작은 생명를 사랑으로 돌봐 줄 사람이 많다는 믿음이 생긴다. 내가 적당히 하고 남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후에 다음 사람에게 사랑을 이어주는 것이다. 서로를 믿으며 바톤을 주고 받는 계주 주자들처럼.
인연이 닿은 모든 동물들의 평생을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그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은 책임지고 좋은 경험으로 남게 해주겠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역할이다.
임보가 끝난 지도 벌써 다섯 달이 지났지만 내 무릎 위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천사들과 지쳐서 누워 있다가도 내게 다가와 치대면서 애정을 표했던 예쁜 엄마 고양이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입양하지 않기로 했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역할은 그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다음에 만날 사람에게 무한히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믿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