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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킴 Oct 26. 2024

동물 보호소에서 그리는 큰 그림, 지역 사회와의 상생

미국의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끼고 배운 것 #5

내가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보호소는 사실 동물 보호소의 끝판왕 같은 곳이다. 직접 가 본 보호소가 많지도 않고, 심지어 제대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여기가 처음이라 경험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동물 보호소의 이상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여기다!! 물론 동물 보호소의 가장 이상적은 모습은 역설적으로 모든 동물 보호소가 없어지는 것이겠지만.

선한 마음과 곧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있어도 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보호소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나는 일개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이 동물보호소의 예산이라든가, 운영 내역이라든가 하는 건 전혀 모르지만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들만 봐도 이 보호소는 보호소 계의 금수저 같은 느낌이다. 한국 또는 미국에 있는 다른 보호소와 비교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고, 이런 곳도 있다- 정도로 소개하고 싶다.

일단 건물부터 너무 좋다. 꽤 넓은 부지에 2021년에 준공된 새 건물인데, 가장 큰 특징은 고양이 보호실과 강아지 보호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가까이 붙어 있는 경우에 강아지가 짖는 소리 때문에 고양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모든 고양이, 모든 강아지가 개별 케이지에서 지낸다. 지인이 이 보호소 사진을 보더니 "여긴 보호소가 아니라 호텔이네요~"라고 할 정도로 시설이 넓고 좋다. 고양이, 강아지 뿐만 아니라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쥐 등의 소동물을 위한 방도 따로 구분되어 있다.

게다가 무려! 클리닉이 있다. 보호소 내에 기본적인 치료와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실이 있다! 그래서 중성화 수술도 보호소에 계신 수의사 선생님이 다 한다.

물적 자원도 정말 풍부하다. 세탁실에 가 보면 기부받은 헌 수건들이 산처럼 쌓여있는데 (정말로 내 키보다 높이 쌓여 있다!) 세탁실에서 일을 여러 번 해 보니, 말이 헌 수건이지 내가 집에 가져와서 쓰고 싶을 정도로 깨끗한 수건이 많았다.
사료나 간식, 그릇, 장난감, 세제, 소독약, 장갑 등등 오만 가지 용품도 언제나 그득 그득 쌓여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이렇게 여유가 있으니 주변의 다른 보호소들에 부족한 물품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리고 타 보호소에 동물이 너무 많아질 경우 이 보호소로 이송되는 경우도 자주 봤다.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인적 자원. 상주 직원이 내가 만나본 이들만 해도 20명이 족히 넘고, 이 보호소에서 나처럼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봉사자가 약 2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동물 보호소 운영이 지역 사회의 일이라고 여긴다는 걸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실히 느낀다. 동물 보호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단순히 동물을 한 마리 한 마리를 구조하고 입양보내고 이런 차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동물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저렇게 풍부한 물적, 인적 자원을 단순히 보호소 안에 있는 동물에게만 쓰지 않고 지역 사회와의 동반 발전을 위해 적극 활용한다.

단적인 예로 (물론 이 보호소 규모가 커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곳에는 자원봉사 교육 및 관리를 전담하는 코디네이터가 한 명 따로 있고, 지역 행사 프로그램을 맡아서 관리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 인력이 풍부하지 않은 곳에서는 한 사람이 멀티플레이어로 다 할 법한 일을, 여기서는 한명 한명이 심도 있게 관리한다.

자원봉사자는 단순히 '와서 청소하고 동물들과 놀아주고 가세요~' 가 아니라 고양이, 강아지, 그리고 소동물 모두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단계별로 상세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고, 교육을 받은 단계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나눠진다. 어린이 봉사자도 굉장히 많은데, 미성년 봉사자의 경우에는 부모님과 함께 교육을 받고 봉사활동을 한다.

대외적으로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가 정말 많다. 나는 몇 달 전에 임시보호를 하고 있던 아기 고양이들을 데리고 '키튼 샤워 Kitten Shower'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 날 어린이를 100명은 족히 넘게 만났고 아이들의 몰아치는 질문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대답해주었다. 부활절에는 토끼에 대해 알아보는 행사를 하고, 강아지나 다른 소동물에 관련된 행사도 많이 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동물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고, 동물 보호에 대한 개념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만든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일종의 기초 교육을 하는 셈이다.

교육적인 행사 외에도, 무료로 마이크로칩을 삽입해주는 이벤트, 무료 백신 이벤트, 그리고 저소득층에게 반려동물 사료를 배분해주는 이벤트 등도 자주 열린다. '키울 돈이 없으면 애당초 동물을 데려오면 안 됐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지금 키우는 동물을 경제적인 이유로 파양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사료를 나눠준다고 한다.

당연히 보호소 안에 있는 동물들의 복지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모든 걸 지역 사회 구성원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 구축에 큰 힘을 쏟는 느낌이다.




키튼 샤워 행사 때 진이 빠진 내 모습.


이런 창문 데코레이션도 어린이 봉사자들이 많이 한다.


오랫동안 입양이 안 되는 아이들은 이렇게 특별 홍보 혜택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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