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끼고 배운 것 #7
보호소에 있는 개와 고양이는 모두 색깔로 분류되어 있는데 (color coding), 다루기 쉬운 순서부터 초록 -> 노랑 -> 파랑 순으로 나눠진다. 쉽게 말해, 이름표에 초록색 발자국이 찍혀 있으면 동물 케어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도 돌볼 수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돌봄 난이도가 높아진다.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등의 피식자 위치에 있는 동물들은 그렇게 세부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소동물'로 묶여 한 번에 교육 받는다.
고양이에 대한 첫 트레이닝이 끝나면 초록색 스티커를 받아서 봉사자 이름표에 붙인다. 이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보호소 직원들에게 내가 어느 레벨의 동물들을 케어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초록 레벨로 봉사활동을 일정 시간 채우면 노랑 레벨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노랑 레벨부터는 트레이닝이 자주 있지 않아서 트레이닝 세션이 열릴 때까지 적잖이 기다려야 했다. 노랑 트레이닝까지 받고 (물론 이 단계의 봉사시간도 모두 채우고) 거의 반년이 지난 후에야, 1년에 두세 번 열리는 파랑 레벨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의 돌봄 단계는 고양이보다 하나가 더 있어서, 첫 번째 교육을 받으면 초록 스티커를 주는 게 아니라 이름표에 그냥 체크 표시를 해 준다. '당신은 개 축사 청소를 할 수 있습니다'.. 체크 표시를 받은 후에 초록색 트레이닝을 받으려면 축사 청소로만 봉사 시간을 8시간 넘게 채워야 한다.
이렇게 동물을 여러 레벨로 구분하고 그에 맞는 체계적인 교육을 꼼꼼히 진행하는 이유는 첫째로 사람과 동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다. 동물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은 갑자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계속 원치 않는 접촉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줄곧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동물 입장에서의'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서로 다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초록 레벨 트레이닝은 코디네이터가 진행했으나, 그 이후 노랑 레벨부터는 보호소에 계신 동물 행동 전문가가 진행했다. 이 분에게 여러 번 교육을 받았는데, 매 교육마다 크게 강조했던 점은 동물에게 부여된 색깔을 두고 그 고양이나 개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정의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즉, 파랑 레벨 개라고 해서 그 개가 '원래' 성격이 나쁘고 사나운 개가 아니라는 거다. 보호소에 들어온 상황 자체가 사람으로 따지면, 누군가 나를 납치해서 눈도 가리고 어디로 가는지 말도 안 해주고 창살 감옥에 가둔 거와 똑같다고. 그렇게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야말로 '세나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이었다.
컬러 코딩을 하는 이유는 수많은 동물과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서로 알지 못한 채로 만나기 때문에 모두의 안전을 위해 동물의 현재 상태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표시한 것일 뿐이지, 그게 그 동물의 근본적인 성격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수 차례 강조했다.
노랑과 파랑 단계로 올라가면서부터는 자원봉사자의 임무도 훨씬 막중해진다. 초록 단계에서는 밥 챙겨주고 켄넬 청소하고 개/고양이와 산책/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데에 초점을 둔다면, 노랑과 파랑 단계에서는 동물에게 '인간은 너를 해치지 않고 인간과 함께 있다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는 긍정 인식을 심어주는 걸 중요하게 교육한다. 특히, 파랑 단계의 동물들은 인간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서 그 부정적인 인식을 차차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호소 직원과 자원봉사자 모두가 그 한 마리의 궁극적인 인식과 행동 변화를 공동의 목표로 두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동물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사람 한명 한명의 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공동체로서 우리가 동물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즉, 내가 동물과 보내는 1시간 동안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자 함이 아니라 그 동물과 보내는 나의 1시간과 다른 봉사자의 1시간, 직원의 1시간들이 무수히 많이 쌓여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록 단계일 때 내가 했던 일은 축사/켄넬 청소 혹은 식사 급여 또는 한 시간 동안 어린 고양이와 놀아주기, 유순한 개 산책시키기 등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 동안 그 동물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는 것에 그쳤지만, 노랑 단계부터는 그 동물과 '1시간 놀아주기'가 아니라 '사람이 왔는데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맛있는 간식이 생겼네!' 라는 경험을 한 번씩 적립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마치 짜장면 도장 100개를 찍으면 깐풍기를 주문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1시간을 써서 그 동물의 마음 속에 '인간 = 좋은 일'이라는 도장을 하나 콩! 찍어주는 거다.
봉사자인 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초록 단계보다 더 지루할 때도 있고, 동물이 내 맘을 좀체 몰라주니 좌절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때마다 마음 속으로 교육 받을 때 들었던 말을 되새긴다.
"We are sharing the same goal. (우리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어요)"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존재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그 노력에 오늘도 내가 작은 힘을 보탰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좌절했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진다.
나와 보낸 한 시간이 네 맘의 벽에 아주 작은 금 하나라도 냈기를,
그런 금이 수없이 그어져서 마침내는 그 벽이 무너지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마침내, 사람은 나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온전히 마음을 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