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보호소 자원봉사를 다녀온 어느 날이었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커피를 마시려는데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내가 입고 있던 LCAS (내가 다니는 지역 동물 보호소) 자원봉사자 티셔츠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나도 예전에 여기 잠깐 다녔어요"
잠깐? 다'녔'어요?
"지금은 여기서 봉사활동 안 하시나요?" "네.. 저랑 안 맞더라고요" "실례가 안 된다면 왜 안 맞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거기는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았어요. 나는 오랫동안 강아지를 키워서 잘 아는데도 강아지 축사 청소부터 교육 받아야 하고, 단계 별로 봉사 시간도 채워야 하고, 게다가 상위 레벨 트레이닝은 자주 하지도 않는데 평일에 하니까 제가 회사를 빼먹고 그걸 가기도 어렵고.. 그래서 결국 그만뒀어요"
아.. 기분이 좀 묘했다. '나는 이미 다 아는 건데' 라는 건방진 태도가 맘에 안 들면서도, 동시에 그의 말이 나도 한번쯤 똑같이 생각해본 적 있는 것이라서 미묘한 양가감정이 스쳐갔다.
다른 동물보호소에서는 봉사자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무척이나 궁금한데, 일단 이 보호소의 자원봉사자 교육은 놀랍도록 체계적이다. 일단 정규 자원봉사자로 등록하는 것부터 약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데, 아무 때나 등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매월 1일에만 자원봉사자 신청을 받는다. (간단한 1일 봉사는 예외이나 1일 봉사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날짜를 기다렸다가 자원봉사자 등록을 하면 첫 오리엔테이션 날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를 만나서 보호소 시설 및 일반 잡무에 대한 교육(세탁, 설거지 등)을 받고 고양이를 맡을지, 강아지를 맡을지 선택한다. 그때부터 고양이 팀, 강아지 팀 따로 나뉘어서 교육을 받게 된다. 나는 자랑스러운 고양이 집사로서(?) 고양이를 택했다. 나중에 강아지 교육도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먼저 선택한 고양이로 몇 시간 채우고 나면 강아지 파트도 교차 교육(cross-training)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좀 지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뭐가 이리 복잡해??
난 제가 봉사활동을 하러 왔습니다~~ 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바로 일거리를 막 던져줄 줄 알았다. 말하자면 '즉시 현장 투입'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책상에 앉아서 파워포인트 자료 보면서 수업부터 들었다! 게다가 수업도 어찌나 철저한지! 코디네이터가 10명이 채 안 되는 봉사자들 눈을 하나하나 다 마주치면서 수업 내내 계속 질문을 했다.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지금 이 고양이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누군가 뭐라고 대답하면) "왜 그렇게 생각했죠?"
(봉사자들을 쭉 둘러보며) "다른 의견은 없나요? 또 어떤 점이 눈에 띄나요?"
(나의 자신있는 대답이 틀렸을 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고양이는 지금 약간 불편한 상태죠"
... 5년차 두 마리 냥집사의 자존심과 함께 깊이 숨겨뒀던 나의 자만심이 무너졌다. 고양이에 대한 기초 교육을 받는다고 했을 때 내심 '나는 이미 고양이에 대해 너무 잘 아는데? 고양이 키우면서 공부도 많이 했는데?' 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기초 교육인만큼 대체로 내가 이미 경험을 통해 아는 내용이 많았고 그래서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정도는 고양이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만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안 되나?' 라고 생각하던 차에 대차게 틀린 대답을 했던 것이다. 아무도 신경 안 썼겠지만 나는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사람들 앞에서 틀리게 대답한 게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모르는 게 많으면서 그것도 모르고 고양이에 대해 다 안다고 뻐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후로는 정말 겸손하게..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봉사활동을 하고, 여러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내가 집에서 고양이를 혹은 강아지를 10년을 키웠다 해도 동물 보호소 안에 있는 동물들의 행동과 마음에 대해서는 새로 공부해야 하는구나- 라는 거였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과 동물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심리 상태도 천지 차이이고 그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도 무척이나 다르다. 그런 걸 깨닫고 나니 초반에 내가 얼마나 오만했던지 알 수 있었다.
고양이 마지막 레벨 트레이닝을 받을 때에도 동물 행동 전문가 선생님이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한평생 고양이를 키웠다고 해도,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보호소 안에서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배우는 중이고 공부해야 합니다. 저 또한 계속 배우는 중이고요."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알기 힘든 게 동물의 마음 같지만 실은 배울수록 그저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동물을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동물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