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 되지 마세요." 대학원을 준비하던 때 입시 강의를 해주시던 현업 상담사 분이 말했다. 당시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저 말이 뇌리에 박혀있다. 상담사가 걷는 길은 꽃길이 아니니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의도는 이해했지만 기분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할 일인가?'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진 자의 배부른 투정처럼 들리기도 해 왠지 얄밉기도 했다. 말 한마디가 마음속을 어지럽힐 만큼, 나는 상담사가 되어가는 길 위에 간절히 서고 싶었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설령 후회하게 된다고 해도 상담사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하게 될 후회가 더 두려웠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돈까지 버는 직업. 나에게는 그 어떤 직업보다 근사해 보였다.
그러나 삶은 꿈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법이다. 그토록 바라던 상담사의 삶을 직접 살아보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예를 들면 오랜 기간 학업(수련)과 낮은 보수는 예상보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상담을 하며 보람도 컸지만 그보다 크고 작은 좌절과 씨름하는 나날이 더 잦았다. 상담에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더 늦기 전에 상담을 그만둬야 하나 싶을 때 상담의 신이 보우하사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잠시 잠깐 주어졌다.
누구보다 활활 타오르던 열정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소진에 이르렀다. 걷잡을 수 없이 피로했고 마음 안에는 분노의 용암이 들끓었다. 그때쯤이었을까. 상담사를 하겠다는 사람을 보면 말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말을 내가 했다. "누구나 상담사가 될 필요는 없어."
알고 있다. 포기하고 싶던 사람은 나라는 걸. 그러나 순간의 감정으로 상담을 포기하기에, 상담은 나의 청춘이며 여러 고비를 함께 넘긴 전우이다. 앞으로도 나는 오래오래, 가늘고 길게, 상담사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담사로서 소진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한,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다. 타인을 돌보는데 쓰였던 에너지의 일부를 거두고 내 마음을 가꿨다. 가볍게 움직이고 느긋하게 성찰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생각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느라 놓쳐온 나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들어주고 싶어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번 브런치 북에서는 초심상담사가 수련생이 되어 상담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때로 소진의 늪에서 허덕이면서도, 어엿한 상담사로 성장해나가는 꿋꿋한 고군분투기를 담고자 한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상담사가 되는 것에 관심 있는 분에게는 작은 참고 사항이, 유사한 고민을 하고 계신 수련생 및 상담사 분들에게는 작은 공감과 위안이 된다면 기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