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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윤 Oct 30. 2022

상담사를 꿈꾸다

롤모델을 발견하다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단 하나의 계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을 크게 동요시켰던 사건은 있다. 재수 실패 후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로 몸살을 앓던 때, 주전공도 아닌 아동학과에 개설된 상담심리 과목을 수강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수님과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데.. 일단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쉽게 배울 수 없었던, 더 정확히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주변 어른들과 사회의 요구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관계, 사랑, 감정 등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수업이었다. 그 후 교수님의 수업을 늘 최우선 순위에 올려두며 개설된 모든 과목을 수강했다.


한 번은 매주 성찰 보고서를 내야 하는 과목을 수강했다. 지금은 기억도 흐릿하지만 당시 나를 붙잡고 있던 고민을 진솔하게 적어서 내면, 다정하신 교수님은 매번 보고서 끝자락에 짤막한 코멘트를 적어 되돌려주셨다. 그런데 그 문장들이 어찌나 내 마음 깊숙이 들어오던지. 어느 날엔가는 방안 침대 위에서 교수님의 코멘트를 읽으며 끄엉 끄엉 오열을 한 적도 있다. 그때 생각한 것 같다. 나도 교수님처럼 투명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후로 아무런 갈등 없이 상담사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섣부른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공기업과 비영리기관에서 인턴도 해보고, 어린이집으로 보육실습을 나갔다가, 통번역가가 되겠다고 수업을 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상담에 대한 끈을 놓고 있지는 않았는데, 수업이나 강연을 적극적으로 찾아들었고,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받으며 개인적 이슈를 직면하고 풀어내는 시간을 가졌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결국 상담만큼 나를 충만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충만함을 느꼈다는 건, 상담이 나의 어떤 욕구들을 충족시켜주었음을 의미한다. 대학원 준비할 때부터 주구장창 들었던 질문이 '상담사가 되려는 동기(즉, 욕구)가 무엇인가요?'이다. 그만큼 상담사가 되기 전 자신과 미래의 내담자를 위해 동기를 점검해보는 건 중요하다. 상담사로 이끄게 된 여러 동기들은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건, 욕구를 부정하거나 인식조차 못하는 것이다.


1) 영향력에 대한 욕구: 다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주고자 함. 다른 사람을 잠재력을 발현시키도록 돕는 과정 속에서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욕구.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구가 큰 경우, 내담자가 변화하지 않거나 도움을 원하지 않을 때 쉽게 실망하고 좌절할 수 있다.

2) 보답 욕구: 자신의 인생에서 특별한 영향을 주었던 롤모델(상담사, 교수님 등)을 닮고자 하는 욕구.

3) 돌봄 욕구: 다른 사람을 돌보고자 하는 욕구. 어린 시절부터 가족 내 돌봄자 역할을 해온 경우 돌보는 역할과 관련한 자신의 재능을 향상하기 위해 전문 교육에 입문할 수 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을 걱정하고 돌보는 돌보미/평화유지군의 역할을 맡았는가? 친구들은 나에게 쉽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는가? 개인 분석 등을 통해 자신의 역동이 개인의 삶과 전문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4) 자가 치유의 욕구: 자신의 심리적 이슈를 이해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욕구.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했을 경우,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는 내담자들을 알아보고 공감할 수 있다. 다만 스스로가 치유의 길 위에 있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돕기 어렵다. 내담자와의 정서적 작업이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건드릴 수도 있고, 내담자를 통해 자신의 미해결된 과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도 있다.

5)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 내담자가 나로 인해 나아졌으며, 희망을 찾게 되었다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상담사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보상 중 하나이다. 인정받고 감사받고 싶은 욕구를 부정할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나, 상담사로서 이러한 욕구가 지속적으로 최전선에 있으면 상담자의 욕구를 위해 내담자의 의존성을 키울 수 있다.

6) 특권, 지위, 힘에 대한 욕구: 일정 수준의 명성과 경제적 보상에 대한 욕구. 그러나 상담 일은 당신이 생각한 경제적 보상, 명성, 지위를 가져다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꾸준히 교육받고 훈련받으며 자신의 실력을 키워온 사람들에게는 여러 기회가 주어진다.

7) 답을 제공하려는 욕구: 타인에게 조언과 '정답'을 제공하려는 욕구.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해야만 하는 일(조언)'에 대해 듣는 것보다 경청하고 돌보아지는 걸 선호한다. 나에게 정답이 다른 사람에게 정답은 아닐 수 있으며, '정답'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

8) 통제 욕구: 조언과 정답을 제공하려고 하는 건, 타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된다. 통제하는 욕구가 큰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넘겨준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것 같은지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상담사의 역할은 다른 사람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Corey, M. S. & Corey, G., 2010)



교수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로하고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상담사가 되고자 했던 주요 동기였지만 유일한 동기는 아니었다.


처음 상담이라는 학문을 접하고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나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동기가 컸기 때문이다. 왜 나는 재수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눈물은 멈추지 않고 나오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상담사가 되길 주저했던 마음도 내 상처와 맞닿아 있었다.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으면 상담을 할 수 있어?' 내 대답은 그럴 수 없어. 자신 없어.로 귀결되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살아내니 결국 삶이 해답을 가져다주었다. 전에는 미워했던 내 민감성을 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과도 묵은 감정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길 반복하며 나는 사랑받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자라났다. 그 믿음을 토대로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마음 안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뿐이었다.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는 나처럼 상담사로 적합한 사람은 없다고, 이제 방황은 끝났다고 자신만만해했다. 물론 순진한 생각이었다.


참고문헌

Corey, M. S., & Corey, G. (2010). Becoming a helper.  Pacific Grove, CA: Brooks/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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