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윤 Oct 30. 2022

(잠수) 이별 후유증

정상 종결과 조기종결에 관하여

시기가 겹쳐 여러 명의 내담자들과 동시에 종결했던 적이 있다. 상담은 결국 이별을 향해 간다. 예정된 이별이었음에도 아쉽고 헛헛한 마음은 피할 수 없었다. 자녀가 독립할 때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부모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내담자들의 성장이 자랑스럽고 반가우면서도 떠나보는 게 못내 아쉽고 서운한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내담자들과 이별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여러 명을 동시에 종결한 것 그리고 1년 가까이 만난 장기 내담자와 종결한 것은 처음이었다. 종결의 슬픔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센터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 떠나보낸 인원수만큼의 새로운 내담자들이 금세 배정되었다.


새로운 내담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기존 내담자들에 대한 상실감에 젖어 있는 상태에서 쉽지는 않았다. 새로운 내담자들을 맞이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는 '진짜' 나의 내담자들을 그리워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새로운 내담자들과 만남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나는 상담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잇따른 조기 종결을 경험했다. 


조기 종결은 상담 진행 회기 기준으로 5회기 미만의 상태에서 상담자와 합의 없이 내담자가 일방적으로 상담에 오지 않아 종결되는 경우를 말한다. 작별 인사 하나 없이 떠나버린 것이다. 내담자의 일방적인 통보로 끝나버린 상담을 마주하며, 상담사로서 했던 의 노력이 '무'로 돌아가는 것 같은 허탈감을 느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조기 종결의 의사는 존중하지만, 종결 회기는 갖고 끝내자고 내담자를 설득했다. 여러 번 전화하고 문자를 남기는 질척임도 감수했다. 헤어진 연인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붙잡아야 하는가 소위 현타가 올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종결 회기는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에게 유익하다. 


상담자는 내담자들이 상담을 중단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고, 내담자는 상담 성과나 불만족했던 점을  나누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힘에 기대어 상담자도 내담자도 그간 침묵했던 진솔한 감정과 생각을 나누게 될 때가 있고, 예상치 못한 큰 울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상적인 종결은 아닐지라도 서로의 마음 안에 소중한 교훈을 남긴 채 관계를 매듭지을 수 있다.


가장 속이 타는 경우는 내담자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이다. 종결 회기를 갖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내담자. 상담사 입장에서는 이별 중 최악이라는 잠수 이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자의 독백은 추측과 후회를 동반하곤 한다. 왜 오지 않았을까? 지난 회기에 어떤 이야기를 했었지? 뭐가 불편했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말 걸..  상담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상담사로서 내가 부족해서 상담이 중단된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상담자 자신을 상하게 만든다. 분명한 사실은 조기 종결은 평균 20% 정도의 비율로 발생하는 흔한 현상이며(윤정숙 & 유성경, 2016), 조기 종결처럼 일을 완수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황은 상담자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어 소진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상담사는 내담자를 만나 관계를 맺고, 개입하고, 결국 떠나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상담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완결 짓고 내담자와 잘 분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Skovoholt, 2001).   


<내담자와 잘 이별하는 법>
1) 종결 시점을 반복해서 알리고 상기시키기
나는 약속된 회기가 끝나기 최소 5회기 전부터 종결에 대해 언급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15회기를 기준으로 하면, 오늘이 10회기이고 앞으로 5회기가 남았다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 다가오는 종결을 마음속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된다.

2) 종결 회기는 꼭 갖기

상담 관계를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것은 진행된 회기수와 관계없이 매우 중요하다. 그간 상담 성과와 향후 과제, 종결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넉넉히 확보한다.

3) 만남과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절 인연이란 불가 용어가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서로에게 삶의 성숙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 만났고, 인연이 다해 헤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오는 내담자도 있을 것이고, 영영 이별하게 되는 내담자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내담자들은 내 마음속에 늘 살아있다. 나 역시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느낌으로, 단어로, 문장으로, 이야기로 살아있기를, 그 기억이 삶의 작은 위안과 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4) 상담사 개인의 의식 갖기

어느 상담자는 모든 내담자와의 상담한 것을 마치 위대한 소설인 것처럼, 주인공의 삶에 빠져들면서 읽어 내려가기가 재미있는 소설인 것처럼 상상한다고 한다. 종결할 때가 되면 내담자의 삶에 다가가는 것을 끝마치고, 마침내 그 책을 내 마음의 중요한 선반 위에 올려놓는 장면을 마음에 그려본다고 한다. 이보다는 덜 낭만적이지만, 나는 수련 수첩에 종결 사례를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간 상담 내용을 정리하면서 돌아보고 음미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내 마음 안에 내담자와의 기억과 경험을 저장해두는 일련의 과정이다.



참고 문헌

윤정숙, 유성경. (2016). 내담자의 일방적 상담종결 영향 변인 검증: 비연속시간 생존분석 적용.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28(1), 1-31.

Skovholt, T. M. (2001). The resilient practitioner:  Burnout prevention and self-care strategies for  counselors, therapists, teachers, and health  professional. Boston MA: Allyn and Bacon.


이전 04화 수련생이 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