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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윤 Oct 30. 2022

상담사로 살면 돈 때문에 힘들지 않나요?

빨리 망하려면 도박을 하고 천천히 망하려면 상담을 하라는 자조 섞인 상담계 농담이 있다.    


상담사는 업무 강도는 높고 경제적 보상은 적은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사는 어느 ‘사’ 자 직업 못지않게 고학력 집단이다. 석사는 기본이고 박사도 흔하다. 물론 학력과 연봉이 비례해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석사도 경력으로 인정받곤 하는 다른 업계와 비교하면 상담계의 처우는 아쉬운 점이 많다.


석사 졸업 후 청소년기관이나 대학센터 전임으로 들어가게 되면 월급은 100만 원 후반에서 200만 원 초반대로 형성된다. 그마저도 계약직이 대부분이고, 서울권은 일자리 경쟁률이 치열해 합격하기도 쉽지 않다. 수련생 사정은 더 열악하다. 대학교 수련 기관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면 월급은 없다. 월급은 교육과 수퍼비전을 무료로 받는 것으로 대체된다. (사설 수련 기관은 돈을 내고 수련을 받아야 한다.) 레지던트 때는 월급 40만 원을 고정적으로, 집단 운영비와 종합검사실시비를 간헐적으로 받았다.


낮은 보수는 수련 생활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주변 친구들이 번듯한 직장에서 여유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전에는 온몸으로 거부했던,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결혼을 하는 소위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이 부러웠다. '나만의 속도가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30대 초반의 나이에 삶의 시계가 여전히 학생 신분에서 멈춰 있음에 내심 조급했다. 워라벨은 진작에 포기하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건 왜 그렇게 적을까? 상담계의 현실에 대한 부당함을 느끼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수련 기관에서 보낸 2년간의 시간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우선 상담사로서 사례를 이해하고 진행하는 실무 능력이 실감될 정도로 향상되었으며, 한 사람으로서도 분명한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1급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련내용을 거진 다 채울 수 있었다. 상담심리사 1급은 업계에서 인정하는 최상위 자격증으로, 취득하면 일자리의 선택 폭은 넓어지고 보수는 높아진다. 자격증의 명성(?)에 걸맞게 꽤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데, 1급 자격시험을 치르기 위해 충족해야 할 수련내용에서 수퍼비전은 크나큰 비중을 차지한다. 약 70회의 수퍼비전 받아야 하고 개인적으로 이를 채워나가는 일은 만만치 않다. 나는 의지력을 시험하기보다 환경의 힘을 빌려 1급을 빨리 취득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수퍼비전은 무료(라고 적지만 사실상 월급)로 받았지만 배움을 위한 투자는 수퍼비전에서 끝나지 않았다. 상담사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진리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직업이다. 타인의 삶과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쉽게 숙달될 리 없다. 상담사로서 자기 이해를 위해 개인/집단 상담을 받고 각종 교육과 워크숍을 들었다. 보통 수퍼비전과 개인상담 비용은 1회당 8만 원~15만 원 선으로 책정되며, 집단/교육/워크숍은 한 번에 10~30만 원 정도이다. 


버는 돈은 적고 나가는 돈은 많은 불균형의 상황이 해소되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니 저러니 석사를 졸업한 후 2~4년까지는 돈을 못 번다 생각하고 실질적 대비를 해두는 현명하다는 것이 지금 나의 결론이다. 부업의 파이프라인은 가능한 최대로 확보해두면 좋다. 보통 과외, 조교 등으로 학비나 생활비를 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할 정도의 비용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어, 부모님, 배우자 혹은 은행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학업과 수련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안타까운 현실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상담사는 나이가 연륜으로 해석되어 스펙이 될 수 있는 직업이다. 지금도 60~80대 원로 선생님들이 그 어떤 젊은이들(?)보다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고령화 시대에 얼마나 복된 직업인가! 너무 멀리 가지 않더라도 경력과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면 상담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대다수 상담사들의 최종 꿈인 '개업'을 하여 흥하게 되면 연 1억을 번다는 소식도 풍문으로 들은 바 있다. 상담계에서 연 1억은 극소수가 누리는 굉장한 경제적 성공인 데 반해, 대기업은 평균 연봉이 1억이라는 소식에 또 한 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긴 했지만..


상담으로 큰돈을 벌기 어려운 것은 일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상담사라는 업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높은 연봉이나 사회적 인정과 같은 외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진실된 감정을 나누고, 개방적이고 정직한 삶의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과 타인의 성장에 헌신하는,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느끼고 싶다는 바람은 분명히 내적 충만감을 향해있었다. 일하며 얻는 외적 보상이 크지 않은 건, 겉보기에 화려한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를 실현시키도록 돕기 위한 신의 뜻은 아닐까 (물론 지금보다 처우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에게, 삶에게 묻곤 한다.
'왜 나에게는 이것밖에 주지 않는 거지?'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답한다.
'이것이 너를 네가 원하는 것에게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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