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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Sep 18. 2024

아버지의 버킷리스트

-빠라빠라 빠라 빠!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을 짐작하고 계시는 것일까? 


아직 살아있는 동안 당신께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지막 숙제처럼 해내시려 애를 태우시는 것 같다. 

젊은 시절이야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사람을 좋아하셨으니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나이가 들어 그것도 삶과 죽음이 고비를 몇 번이나 넘나 드느라 기운도 빠지고, 지갑도 얇아지는데 아버지의 탐심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 만큼 어머니의 근심은 늘어나고 있다.     


오랜 투병으로 귀가 얇아져 몸에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온갖 약을 다 드시고 싶어 하시고, 신장 투석도 병원의 권유에 앞서 친구분께서 투석하니 좋아지는 것 같다며, 당신께서 의사에게 먼저 물어 시작되었다. 

집에 할 일이 없으시니 홈쇼핑을 열심히 시청하시다가 장뇌삼 판매를 보시고 그날로 장뇌삼을 사드신 게 벌써 6년째다. 매번 장뇌삼 배송이 올 때마다 어머니랑 다툼도 잦아진다. 아이들 몫의 영양제까지 꿍쳐 드시는 걸 보면 노망이 드셨나 걱정할 지경이다. 


그래 다 좋다. 몸이 불편하시니 몸에 좋은 것에 집착하실 수도 있고, 아직은 외출하시니 옷에 대한 욕심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79세에 뇌졸중을 살짝 앓으시고,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 신장 투석까지 하시는 할아버지가 왜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하시는 애를 태우시는 걸까?     



아버지께서 퇴근 시간 무렵 전화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툼이 있어 불리해지면 내게 전화하신다….)

며칠 전에 시골집의 경계측량을 하라고 시킨 게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차라 도둑이 제 발 저린 다고 얼른 지금 신청하겠노라고 했더니 

 그에 대한 대답은 없으시고 대뜸 

 “니 옴마 좀 찾아봐라.” 이러셨다. 

 이런~ 또 무슨 일이 있으셨구나….

 “엄마는 왜?” 이랬더니만

 “그냥….”

 짧고도 명료한 말씀 끝에 벌써 전화는 끊기고 난 후였다. 


 또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기함할 무슨 일을 치셨구나! 짐작이 갔다. 어머니부터 찾아야 한다 싶어 핸드폰으로 전화해도 안 받으셨다. 그렇다고 포기할 나도 아니고. 연속으로 대여섯 번을 했을 쯤에야 퉁명스러운 어머니의 목소리에 한숨이 딸려 나온다.


왜 집을 나왔냐는 물음에 아버지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나서 집에 있을 수가 없어 나오셨다고 한다. 막상 가출은 했다 만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우리 집에 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과 아버지께는 말하지 말라는 입단속까지 시키셨다.     

 서둘러 퇴근을 한 후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낮에 아버지는 밖에 가시고 혼자 집에서 쉬고 계시는데 경비실 아저씨가 전화해 아버지를 찾으시더란다. 외출하셨다고 하니, 어제 아버지께서 오토바이를 사 오셨던데 아침부터 할아버지도, 오토바이도 안 보여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며 끊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2년쯤 전부터 오토바이 사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계셨다. 그럴 때마다 다들 턱도 없는 소리 하신다고 지청구만 했지. 설마 저 몸을 하시고서야 가능하겠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다. 우리 가족 누구도 그게 현실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다들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기경 씨(우리 아버지)는 우리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실천하셨고, 다들 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허둥지둥 난리가 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어제 낮에 오토바이 가게에 들러 120만 원을 주고 오토바이를 사셨고, 그걸 어찌어찌 끌고 집까지는 오셨는데 아파트에 들어오셔서는 주차할 수 없으셨나 보다. 하기야 당신 걸음조차 시원찮으시니 무거운 오토바이를 어떻게 맘대로 움직이겠는가?

 오토바이는 넘어졌고 같이 넘어진 아버지께서는 오토바이 밑에서 간신히 몸은 빼 경비실까지 가셔서 아저씨를 불러 같이 세우셨다. 경비실로 찾아온 아버지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바지는 바느질 선을 따라 쭈~욱 찢어져 민망하게 속옷이 다 보이고, 그 사이로 보이는 다리는 긁혀서 피가 나고 팔에도 온 데가 상처였다고 했다. 아저씨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아버지께서는 집으로 올라가셨는데 집에 오신 아버지는 어머니께 한마디도 안 하시고 딴 곳에서 다친 것처럼 둘러대곤 점심을 서둘러 드시고는 몸살 난 사람처럼 오후 내내 주무셨다.     

 날이 바뀌고 경비실 아저씨가 출근해 이곳저곳 손을 보고 오니 오토바이가 안 보이더라나? 불안 불안하던 아저씨는 두어 시간을 그대로 기다리다 도저히 못 참고 어머니께 전화하셔서 아버지를 찾으신 것이다. 


 그제야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오토바이를 사셨고, 어제의 상처가 오토바이에 의해서 일어난 것도 아셨다. 그리고 지금은 어디서 엎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하니 좀 있다가 집에 간다고 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리시더라는 것이다. 생사를 확인한 어머니께서는 그제야 갑자기 화가 나고, 가슴이 벌렁거려 집에 있을 수가 없어 꼭 지옥에 와 있는 것 같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한 시간쯤 뒤 집에 오신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했고, 웃음기까지 띄며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하셨다는데 부아가 치민 엄마는 오토바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당신 맘대로 사시라고 하고는 집을 나오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집을 나오신 후 아버지께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심을 챙겨 드셨고, 피곤하셨을 터이니 낮잠도 한잠 주무셨을 것이다. 그런데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도 성질을 내고 나간 어머니께서 안 오시니 내게 전화하신 것이다. 이미 큰언니한테 전화해서 밥을 어떻게 하면 되냐고 전기밥솥 쓰는 방법을 물으시는 바람에 언니도 엄마가 집을 나오신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그토록 갖고 싶던 오토바이도 생겼겠다 잔소리하는 할멈 없이 혼자 살아가실 궁리를 하신 건지 모를 일이다.  사건 대충 듣고 나서도 사실 믿기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연세가 일흔아홉이다. 물론 나이 일흔아홉에 오토바이 타실 수도 있지만 그건 남의 아버지 이야기이고, 우리 아버지는 안 되는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온몸에 병을 안고 사시는 중이라 일주일에 세 번은 A 병원에서 투석을, 뇌전이 시시때때로 아버지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 B 병원에서는 뇌졸중 치료를. 그리고 암 수술 후유증으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또 대학병원을 드나드신다. 그러니 내가 사는 작은 도시의 종합병원 3곳의 우수회원이고, 긴급 회원이시다. 요즘에는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시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다니셔서 아파트 내 할머니들께서 엄마를 붙잡고 ‘집에 영감님 오늘 술 많이 드신 갑 더 마’하는 소리를 할 때도 자주 있다. 그런 영감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신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아버지께 보다는 그 물건을 아버지한테 판 장사치 놈한테 화가 먼저 났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당신 몸 하나 어쩌지 못하는 영감님한테 오토바이를 판다라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멀리서 사는 언니한테 전화했더니 펄쩍 뛰면서, 요즘은 애도 한둘밖에 없는데 그 귀한 애들이라도 쳐 사고가 나모 어쩌려고 그래 있나는 야단이 돌아왔다.      

 아이고 나는 생각까지는 못 했건만….

 아이고 머리야~ 비틀비틀 타고, 다니다가 놀고 있는 애한테라도, 민첩하지 못한 노인네를 다치게 하면 또 어쩔 것이며,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는 차에라도 넘어져 사고라도 나면 그나마 노후의 마지막 보류로 남겨둔 얼마 안 되는 시골 밭떼기라도 팔아서 한입에 털어 넣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차피 큰언니나 나는 우리 아버지 이겨 먹지도 못할 것이고 가까이 계시는 막내 고모한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우리 아버지가 원래 남의 말을 참 안 듣는데 그나마 당신 막냇동생한테는 좀 약한 구석이 있다. 그것도 막내 고모가 나이 들어 큰오빠를 아버지 대하듯 살뜰하게 챙기시니 그에 대한 답이 아닐지 싶다만 그래도 고모가 제일 센 약발이다.


 늦은 시간 나는 어머니와 우리 집에 있고, 고모네 부부와 언니네 부부가 아버지를 찾아갔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어 주시면 왜 왔냐고 물으시더란다. 엄마 어디 갔냐고, 왜 일을 쳐서 이런 사단을 만드냐고 야단하는 고모한테 아버지께서는 자기는 엄마 없어도 잘 살 수 있고, 오토바이도 잘 타고 다닐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마라시며, 되레 큰소리를 치셨단다. 그러니 당연히 오토바이 열쇠는 내놓을 생각이 없으셨고, 마침 우리 집 일이 궁금하셨던 경비실 아저씨까지 집으로 오시고 해서 어제 오토바이 세우시다 엎어져 옷 찢어진 일들의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다 까발리셨고,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시니 어르신은 오토바이 타시면 안 된다고 거들어도 당최 끄떡도 않으시더란다. 결국 경비실 아저씨께서 아버지를 완력으로 끌어안고, 고모부께서 주머니를 털다시피 해서 오토바이 키를 뺏을 수 있었다.     

 대충 이렇게 아버지는 그렇게 갖고 싶은 오토바이를 겨우 이틀 만에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고모는 일을 정리하시고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사건 종말을 알리셨고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셨다.      



 뒷날 큰언니 부부가 오토바이 환급할 겸 가게 사장을 혼을 내겠다고 벼르고 가셨는데 그 사장님이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보면서 돌아가신 조상을 만난 것보다 더 반갑게 맞더란다. 

사장님 말에 따르면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그 가게를 일 년이 넘게 드나드시면서 오토바이를 만져보고 사겠다고 떼를 쓰셨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애를 먹이니 이 가게 사장님이 아버지께 각서를 한 장 써 주시면 팔겠다고 했더니 선뜻 각서를 써 주시고는 주머니에서 오래 들고 다녀 다 찢어져 가는 돈 봉투를 내밀고는 오토바이를 가져가셨다며 그 각서를 언니 손에 돌려보냈다.      

오토바이점 사장님을 혼내겠다고 분기탱천해 갔던 언니도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그냥 오토바이나 몰러 달라고 하고 말았다고…. 어쨌든 오토바이는 24시간 만에 반 토막 난 값으로 환급되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진양호 둘레길을 멋지게 돌아 고향마을까지 다녀오고 싶었던 이기경 씨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도 아쉬움 가득한 결말을 맞고 말았다.     



 지금 칠암동에서 아버지와 엄마는 어떤 모습으로 불편한 동거를 하고 계신 줄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사기 전날보다 훨씬 더 미움받는 영감으로 지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더구나 안 쓰던 근육을 움직여 오토바이를 끌고 다닌 탓에 몸살까지 앓고 계시니 몸과 맘이 얼마나 고단하실까?     

 남편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아버지 약간의 치매기도 있는데 경제권을 좀 통제할 필요가 있지 않냐고 한다만 주무시면서도 카드와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 주무실 정도로 당신 것에 집착하시는 아버지께 그걸 뺏으라는 건 아버지의 삶을 너무 허탈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마지막 희망이었던 오토바이와의 여행을 정리하신 아버지는 또 무엇을 대상으로 남은 애정을 쏟으실지 알 수는 없지만 어째 내 생각에는 다시 애정을 가질 물건은 더 없지 싶다. 오토바이 열쇠를 빼앗기던 그날 아버지의 허탈한 표정이 그랬고, 전화기 너머 오늘 목소리는 더욱 그렇다. 

 힘 빠져 계신 아버지가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더 이상 당신께서 젊은 시절에 누렸던 것들을 정리하고 이젠 조용히 엄마랑 나눌 수 있는 것들에 의미를 두면서 일상을 지내다 가셨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런 내 희망에 무색하게도 또 내일 무슨 일을 내서 엄마의 억장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놀래주실지 아직도 이기경 씨는 시간은 유한하다.                     

※ 몸과 맘이 상하셨는지 그 해 가을 아버지께서는 여러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모이면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참 재밌게 사시다 가신 분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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