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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Sep 25. 2024

아버지의 병실

- 아버지의 병실에 갇히다.

지금 내 아버지는 서너 살 정도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치매에 걸리셨거나 기억을 잃으신 게 아니라 행동만 그렇다는 것이다.   

   


투석 중 쇼크를 일으키셨고, 종합병원이긴 해도 작은 병원이었으니, 급히 구급차에 아버지를 태워 대학병원으로 옮겨놓으신 상태다. 아버지께서 응급실로 실려가는 순간 ‘아~ 이대로 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맘은 피붙이와의 이별을 준비할 때 만 겪을 수 있는 종류의 아픔이었다. 가까이 계시는 고모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알리면서 목이 메어와 전화기를 잡고 통곡했는데 그게 벌써 보름 전의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아버지께서는 다시 깨어나셨고, 지금 병실에 누워 계신다. 

 응급실에서 사흘 그리고 중환자관리실에서 오늘로 열이틀째를 맞았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까지 더 이곳에 계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인공호흡기만 꽂지 않았을 뿐 거의 모든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들이 하는 절차를 밟으셨고 그때마다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형제들은 이제는 +아버지께서 정말 가시려나 보다 하는 아픈 마음과 드디어 긴 간병의 시간이 끝이 나려나 싶은 안도감 사이를 살짝살짝 넘나들었다.

중환자관리실에서 간병인에게 당신 몸에 손도 못 대게 하시는 바람에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이 이젠 당번을 정해서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다. 평일에는 가까이 사는 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돌아가면서 하고, 멀리 있는 형제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조를 짜서 아버지를 지키고 있다. (길게 가면 정말 큰 일이다.)     

내가 아버지 당번을 서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누워계시고 나는 그 병상 옆 간이의자에 앉아서 손을 주물러 드리면서 마지막 대화처럼 이런저런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눴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사람도 없고, 억울해할 것도 없다는 아버지와 아버지랑 고향마을에서 고기 잡으러 간 기억이 참 좋았었다며 지금까지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도 했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도 나도 눈물도 살짝 흘렸다. 내심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께서는 예전의 이기경씨로 거의 회복하고 계신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부활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빠르게 기력을 회복하셨다. 출근길 병원에 들러보면 기침 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다음날 가면 혼자서 돌아 누워 욕창이 나아 있고, 다시 침대에 벌떡 일어나 계시는 아버지를 대할 때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회복이 아버지에게는 삶의 기적이 되겠지만 어머니나 우리에게는 고단한 삶을 장기전으로 전환해야 함을 의미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간병은 어머니에게 두려움이 되는 듯했다. 아버지의 유병장수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머니는 어금니를 깨물었고, 말에는 가시가 돋아났다. 우리 형제들에게는 물론 당신의 시누, 시동생에게도 숨기지 않으니 난감할 때도 있다. 



3번의 암 수술과 고혈압 당뇨까지 있어 지난해부터 투석까지 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간병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으니 그간 어머니의 고단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아버지를 우리가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이니 그 몫은 또 오롯이 어머니의 차지다.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생하시라 하고 돌아선다. 그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미쳐버리겠다고 하셨다. 왜 나한테 다들 고생하라고 하냐고….     

이젠 어머니도 곧 팔순이다. 그러니 당신 몸이 얼마나 고단하실까. 당신 몸만으로도 천근만근일 텐데 찾아오는 사람마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어머니의 고생을 당연시하니 그 사람들까지 엮어 미우신 듯하다.      

예전의 어머니는 분명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집안 어른이 되고 싶어 당신 속을 다 숨기고 사셨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당신도 환자 축에 들고, 노인인데 이 사람 저 사람 사정을 봐줄 형편이 안 되시는 것이다. 이런 어머니를 곁에서 봐야 하는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 언니는 지금 어머니의 태도로 인해 나중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삼촌이나 고모들이 행여 원망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지만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것조차 못하게 할 수 있겠나. 아버지의 저 빠른 회복이 어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무섭고 두려우니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을 완벽하게 거꾸로 재연하는 것 같다. 처음 태어나서 열 달을 넘도록 먹고, 자고, 싸는 과정을 오롯이 누군가의 손에 신세를 져야 가능했듯 아버지는 먼저 걷는 걸 접으셨고, 말을 잃어가고, 이젠 혼자서 밥을 드실 수 없고, 배변할 수 없다.      

영화 “벤자민 버턴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처럼 말이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밤낮이 바뀌어 생활하신다. 낮에는 투석실이며, 촬영실이다. 여러 병동을 침대에 타고, 다니시며 유모차를 탄 아이처럼 주무시고 밤만 되면 눈을 말똥말똥 뜨고 간병하는 사람을 괴롭히신다. 내가 농담 삼아

‘3개월짜리 아가도 아닌 양반이 밤낮이 와 바뀌어서는 애를 먹인대요?’ 했더니 들은 척도 않으신다. 지난주에 내가 당번을 서러 갔더니 전날 큰 언니가 당번을 서면서 아버지랑 엄청나게 싸웠다고 나 더러 아버지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싫은 소리도 좀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버지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하셨고, 큰딸이랑 엄청난 전쟁을 하셨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아이고 이건 내가 진짜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였다. 

밤 9시를 넘기기가 무섭게 발딱 일어나 침대에 앉아서는 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누가 저 영감님을 며칠 전에 사경을 헤매시던 그 영감님이라 할지 싶다. 처음에는 물을 달라고 하시고, 조금 있으면 요구르트를 달라고 하시고, 당뇨 때문에 설탕이 들어간 음료를 드릴 수 없음에도 팔순 노인네의 떼를 쓰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다. 결국엔 편의점에 파는 저당 요구르트 열 개에 빨대를 다 꽂아 드리고는 더는 없다고 냉장고 문을 열어 확인해 드리고서야 조용해졌다.      

그렇게 당신이 필요한 게 있을 때는 잘도 일어나 앉고 눕고 하시는 양반이 또 기저귀를 갈아야 하거나, 옷을 갈아입어야 할 때면 빳빳하게 누워서 꼼짝을 안 하신다. 당신께서도 자식들에게 온몸을 다 내놓으셔야 하니 창피해서 그러시나 싶다가도 꼭 그렇게 체면을 차리시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닿는다. 그렇게 새벽을 맞고 나면 몇 번의 기저귀를 갈면서 내 몸 구석구석에 베인 아버지의 속 냄새와 시큼한 병원 냄새 그리고 땀 냄새 등이 뒤덮여 다시는 병원에 오고 싶지 않다는 차가운 맘이 남는다.      

내 이 맘을 이렇게 구질구질한데 어머니는 오죽하실까. 그리고 이렇게 하루하루의 삶을 어머니와 언니들과 오빠와 나의 수고로움을 발판으로 연장해 가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끼리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으면 하는 맘이 먼저다. 



아버지는 당신의 몸의 병을 앓고 계시고,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로 인해 또 다른 고단함의 병을 앓고 있다. 누가 더하고 덜하고도 없이 아버지의 병실에 들어서는 그 순간 복불복 게임에 발목이 잡히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많이 잡히는 발목이 어머니 발목이란 게 참 슬프다. 


긴 병에 효자도 없고 효녀도 없지만 열녀도 더욱 없음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부부금슬이 좋아 서로의 늙음을 안쓰러워하겠는가? 그러니 공동의 업이라 생각하고 우리끼리는 이 상황을 공유하고, 위안했으면 한다. 나도 아버지의 돌봄이 이렇게 힘에 부치는데 노구(老軀)의 어머니께서는 나보다 천배 만배 더 힘들 것이고, 또 그 힘듦을 우리에게 들키지 않으시려 무진 애를 쓰고 계실 것이다.      

요새 어머니를 보면 차라리 치매라도 걸려 아버지보다 먼저 병상에 누워 계셨다면 지금보다는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어머니가 악을 쓰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어머니를 이해하고 감싸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가당찮은 생각을 한다.     

오늘도 무지막지하게 덥다.      

신용카드를 들고 원무과에 가서 병원비를 계산하는 것도 두려운 팔순의 우리 어머니는 또 당신 젖가슴만큼이나 늘어진 가방을 등에 메고 영감님과 세트로 된 아주 큰 환자용 침대를 밀어 가면서 투석실로, 병실로 쫓아다니느라 혼을 빼고 계실 것이다. 그러다 틈이 나면 식어 빠진 밥을 마른반찬들과 함께 뜨는 둥 마는 둥 그야말로 점심을 때우고 계실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다른 세상으로 가시려는 아버지보다 고단함을 견디고 계실 어머니가 훨씬 더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가끔은 아버지도 아프다.               


ps) 아버지는 그해 가을에 세상을 달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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