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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고 출근을 안했습니다.

※ 본 글은 고민이 있는 직장인을 위한 글입니다. 필자가 회사를 다니며 직접 겪거나 주위에서 바라본 사례들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또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봤을법한 사례들을 떠올리며 작성하였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했거나 하고 있는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저는 직장생활 18년 차인 여성입니다. 미디어 관련 중견 기업의 부서장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일이 주는 성취감에서 희열을 느낄 정도로 제가 하는 일에 만족했습니다. 일에 몰두하다보니,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이 나이에 아직 결혼도 안 했습니다. 남자보다는 일이 더 좋았고, 그래서 결혼하라는 부모님 성화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난 일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서너 달 전부터 제가 이상해졌습니다. 워낙 타고나기를 건강하게 태어났고, 평소 운동이나 등산을 하며 건강관리를 잘 해서, 어지간하면 한겨울에도 감기 한 번 안 걸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매일매일 온몸에 힘이 없고 늘 피곤을 느낍니다. 또한, 전과 다르게 일이 재미도 없고, 내가 왜 이렇게 일만 하고 살아왔나,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도 들고 무기력합니다. 자꾸만 허기가 느껴져 밥도 평소보다 거의 두배를 먹어요. 이러다 비만이 될까 두렵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에서 실수를 절대 안 하던 제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까먹기도 하고, 하는 일에 집중도 안 됩니다. 밤에는 잠도 잘 못 들고, 겨우겨우 잠이 들었더라도 선잠 상태가 지속되고 꿈도 자주 꾸고, 새벽에 몇 번이나 깹니다.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몰라 답답한 터에 오늘, 드디어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잠에서 깨 세수를 한 뒤 화장대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 제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습니다. 순간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며, 제 속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회사에 가기 싫다, 격렬히 가기 싫다는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직장생활 18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부장님께 문자를 드렸습니다. 출근을 못할 것 같다고요. 제 문제로 결근을 하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멀쩡한 어머니를 환자로 둔갑시켰네요. 어머니가 욕실에서 미끄러져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고.

이렇게 거짓말까지 하고 나니,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창피합니다. 저 왜 이러는 걸까요? 저에게 속 시원한 답 좀 주세요. 예전의 의욕적이고 진취적이었던, 일을 사랑하고 일을 능력 있던 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A. 화장대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을 고민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직장생활 18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왔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시는 것 같아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해 달려오신 분 같은데 말이죠.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희열감을 주었던 일이 이제는 허무함을 주는 일로 바뀌고요. 일만 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부질없이 느껴지시는 것 같네요. 그 마음을 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민님보다 직장생활을 약간 덜 하긴 했지만 저 역시 회사 일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며 산적이 있었거든요. 그땐 저도 정말 일밖에 몰랐습니다. 출근하는 날 아침 샤워를 할 때부터 그날 할 일 들에 대해 생각을 했지요 ‘이따 미팅에 필요한 자료를 출력해두었었나’, ‘재무팀 사람도 한명 부를껄 그랬나’, ‘오후에 있을 매니저 간담회에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그래서 샤워를 하다가도 까먹기 전에 물 묻은 손으로 휴대폰에 메모를 하곤 했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퇴근을 해도 머릿속엔 끝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근무한 경험이 있는 유통업은 밤늦게까지 운영되었습니다. 그래서 퇴근을 하더라도 매장의 운영상황에 대해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했죠. 그런데 그렇게 2,3년 정도 근무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해서 뭐하나’, ‘이 삶이 나를 위한 삶인가, 회사를 위한 삶인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렇지. 나는 성공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했지. 그런데 그 다음은?’ 성공을 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또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공을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기도 하고’
그 다음읃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늘어난 시간과 돈을 가지고 가족들과 여유롭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결국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저는 이토록 성공에 매달렸던 것이었습니다. 성공하기 위 회사일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지금 당장 보낼 수는 없는 것인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저는 지금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고 있던 거였어요.



그 순간 가족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졌습니다. 더욱이 지금의 어린 아이들이 크게 되면 아빠인 나를 더 이상 지금처럼 찾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서글퍼지고 아쉬움이 밀려왔죠.
그 이후로는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아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회사일을 우선에 두던 습관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일과 집안일이 겹치면 열에 여덟은 집안일을 우선으로 처리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에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해도 생각보다는 큰 일이 발생하지 않더군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는 일과 삶을 정확히 5:5로 맞추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저는 자신의 삶에 8, 일에 2를 맞추는 것이 워라밸의 황금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내 삷 자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내 삶안에서 녹아있어야 진정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일을 일로서 별도의 ‘일거리’로서만 대한다면 우린 일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근에는 번 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습니다. 번 아웃 증후군이란 의욕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던 사람이 갑작스런 극도의 신체적, 심리적인 무기력감을 겪는 증상을 말합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직장인 10명중 8명이 이러한 번 아웃 증후군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일로부터의 성취감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사람,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하는 사람,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남과의 경쟁을 당연시하는 환경속에서 자라온 우리들의 슬픈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좀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고민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고민님도 이런 번 아웃 증후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고민님이 현재 느끼시는 무기력감과 허무함이 일시적인것일 수도 있지만 그대로 두면 잘 낫지 않은 감기처럼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은 고민님의 현재 기분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일에만 몰두해온 당신이 어느날 말할 수 없는 극도의 무기력감을 느끼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저도 그랬고 많은 직장인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문제예요. 그러므로 현재 당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라요.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 당황활 수도 있겠지만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당황스러움을 느끼시는 것 역시 정상입니다. 고민님도 모르게 상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출근도 안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지금 너무 힘이 들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출근하기 어럽다고 상사 분에게 말하는 것이 그 상사 분에게도 더 안좋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상사분 역시 더 난처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오히려 그렇게 적당히 핑계를 대준 것을 그 상사 분은 더 고마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한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만약 갖는다면 그럴 필요 전혀 없습니다. 잘 하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는 거예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심취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무엇을 할 때 보람을 느끼고 희열을 느끼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을 살며 궁극적으로 찾고 싶은 삶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일을 바라보세요. 삶에 대한 목적과 의미 없이 무조건 일만 열심히 해서는 곤란합니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일이 당신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어요. 일만하며 달려가는 것은 아무런 목적지 없이 시속 200km로 사막을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속도의 쾌감을 즐길 수 있을지언정 질주 후에 남는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걷고 뛰고 때론 쉬어가며 천천히 자신의 목적지로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서 당신은 당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자 아들러(Adler)는 우리가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세 가지 인생과제를 달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의 과제, 친구의 과제, 사랑의 과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의 과제는 세가지 인생의 행복 과제중 하나일 뿐입니다. 친구와 사랑의 과제마저 해결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한 인간관계에도 소흘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민님의 힘든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나 동료를 만나보세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단 한명이라도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다 보면 당신 스스로 마음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예기치 못한 그 사람의 경험과 조언을 들으며 갑작스런 활력감과 용기가 당신의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항상 열려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으로 인해 폭식을 하기보단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단 하나의 음식도 맛있게 나누어 먹는 당신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혼자서 배터지게 먹는 것보단 조금의 평범한 음식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을 때 저는 더 행복을 느꼈거든요.


마지막으로 신체의 건강도 좀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몸을 움직임으로서 우리는 신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까지도 챙길 수 있습니다. 퇴근후 저녁이나 주말 오후의 따사로운 햇빛아래 음악을 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는 즐거움은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시간을 내어 보고 싶었던 책 한권과 빨강색 보자기로 쌓인 도시락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열심히 달려온 당신에게 당신이 건네는 따뜻하고 다정한 선물입니다.


언젠가 유행했던 한 TV 광고 멘트가 생각나네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저는 이걸 당신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열심히 일한 당신, 당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라’
당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예전의 활력 넘치는 당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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